“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샤르트러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태어나서(Birth) 죽을 때까지(Death)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Choice)의 연속이 아닐까? 2013년 10월 말, 아내가 집 근처 백화점에서 1998년 필리핀에서 군사교육을 받을 때 알고 지내던 선교사 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오랜만에 한국에 일이 있어서 들어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왜 15년이 지난 지금 선교사를 만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얼마 후 초대형 태풍 ‘하이옌’ 으로 필리핀의 타클로반 일대가 폐허
재난복구를 위해 파병된 부대를 배경으로 한 ‘태양의 후예’란 드라마가 대단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막을 내렸다. 낯선 땅 재난의 극한 환경 속에서 사랑과 성공을 꿈꾸는 젊은 군인과 의사들의 휴먼 멜로드라마로 인류에 대한 희생, 봉사정신 그리고 남녀 간 애틋한 사랑의 모습을 표현하여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고 다시 한 번 한류 드라마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극중에 두 개의 러브라인이 이목을 끌었다. 하나는 여의사(송혜교)와 팀장(송중기)과의 러브라인이고, 또 하나는 여자 군의관(김지원)과 부팀장 서상사(진구)와의 러브라인
군에서 여군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해외파병 부대에서도 쉽게 여군을 볼 수 있으며 맡겨진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희생정신도 남군과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이곳 필리핀은 재난지역이라는 특성상 혼자된 노약자와 부모 잃은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보살피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여군들의 세심하고 따듯한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여군을 관리하는 것은 국내보다 더 지휘관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여 여군의 선발부터 신경을 써야 했다. 아라우부대도 많은 우수한 여군들이 지원하였지만 재난지역의 열악한 여건과 해군함정 생활환경을 고려하
처음 이곳에 도착한 직후부터 나는 떠날 때의 모습을 그리면서 “어떻게 파병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현지인들에게 아라우부대가 좋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길 원하는 것은 직접 파병에 참여한 인원이라면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더욱이 아라우부대가 필리핀 레이테주에서 1년 동안 만들어 낸 파병 역사는 참여한 장병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도 기억할 만한 의미 있는 활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이곳을 방문하면 한국군 아라우부대가 2014년 1년 동안 사상 유래 없는 태풍의 상처로 황폐해진 이 지역을 복구하고,
2월 초에 아라우부대가 복구공사를 실시한 타나완 초등학교에 필리핀 대통령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필리핀군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 학교는 학생이 1,500명이나 되고 꽤 유서가 깊은 학교로 필리핀 대통령이 재해복구 현장을 순시하면서 한국군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방문 당일 도로변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직접 그려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였다. 자기 나라 대통령이 오는데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흔든다는 것은 정말 아라우부대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기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부하들과 함께 초등학교 입구에 도열하여 있는데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해외파병 부대원들은 낯선 환경, 임무수행시의 긴장감,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 외출 금지 등 과도하게 통제된 생활들로 인하여 국내에서 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부대장의 경우 부대원의 안전과 모든 부대활동에 책임을 혼자서 져야하는 중압감, 현지와 국내와의 시각 차이에서 오는 의사결정의 어려움 등으로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따라서 부대장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품성과 자질이 필요하며 항상 안정된 심리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견디지 못하고 자주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음주, 출타 등은 심각
부대원들이 생활해야할 공간인 캠프를 건설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전과 편의성이다. 외부의 침입이나 위해 행위, 자연적 현상인 폭우와 강풍, 해일, 강한 햇빛 등으로 부터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하며 모든 활동과 의식주가 캠프 내에서 해결되어야 힘으로 병력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아라우 부대 캠프는 민가지역과는 300m 이상 이격되어 있으며 캠프 정면을 제외한 지역은 늪지대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람들의 접근이 제한되었다. 캠프공사는 부대가 도착 전에 여러 업체 중에 베트남 소재의 한인업체(EM-TEC)와 계약을 체결해
필리핀 비샤얀 제도 중심에 위치한 세부 섬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혼여행지중의 하나이며 다이빙과 골프 등의 관광지로 유명하다. 세부시는 필리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관광, 숙박, 요식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교민이 약 1만 5천명이 거주하고 있다. 아라우부대가 파병시 작전지역인 타클로반 공항에 항공기 이착륙이 제한되어 세부까지 항공기로 이동을 하고 세부에서 파병지까지는 해군 상륙지원함(LST)으로 갈아타야만 했다. 최초 우리가 설렘과 걱정스런 마음으로 항공기에서 내렸을 때 세부 한인회장(조봉환)과 교민들이 반
우리나라의 '꽃동네'는 잘 알려진 사회복지공동체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14개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는 국제적인 구호단체이다. 지금은 이렇게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는 꽃동네가 되었지만, 오웅진 신부가 1976년 11월 충북 음성에 최초의 꽃동네를 개원할 때에는 산기슭에 마련된 자그마한 판자 집에 불과했었다. 자신 또한 장애인의 몸이면서도 밥 동냥으로 자신보다 더 병든 걸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던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난 오웅진 신부가 큰 영감을 받아 세상에서 버려진 걸인들을 위해 '사랑의 집'을 만든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아라우부대 차량 중에는 5톤 적재능력의 쓰레기차가 있다. 쓰레기차를 위병소 앞 공터에 세워 놓고 병력들이 쓰레기를 버리면 거의 매일 쓰레기장 하치장으로 적재함을 비우러 가야 했다. 그런데 부대 앞 쓰레기차 주변이 적재함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거나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가로채는 주민들로 항상 붐볐고 쓰레기를 다 헤쳐 놓으니 너무 지저분해졌다. 그래서 쓰레기차에 주민들이 일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병소 근무자에게 이를 감독하도록 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아이들 두세 명이 항상 쓰레기차 적재함 안에 있었고 다가가서 소리
파병 후 약 2개월이 경과할 무렵 해안도로를 정찰 중에 부대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부욥 마을을 지나다가 군인들의 동상을 발견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시 이 지역에서 활동한 필리핀 유격대를 기념하기 위한 동상이었다. 시멘트로 만들어 금색을 칠했는데 너무 정교하여 동(브론즈)으로 만든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당시 우리가 재해복구임무 종료 후에 파병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공원 건립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에 가서 동상제작자를 수소문하여 이름(보홀)과 전화번호를 확인해 놓았다. 이후 9월에 파병기념 공원을 조성하면서 한
아라우부대 사전 협조팀이 본대 전개 10일 전에 현지에 도착해 임무수행 중에 2013년 12월 21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태풍 피해지역인 타클로반 일대에 초등학교, 해안 피해마을 등을 방문했다. 반 총장은 많은 인원이 운집한 가운데 아라우부대원들에게 다가와 친근감을 표현하고 “한국군이 재난지역으로 파병되어 대단히 자랑스럽다”라며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재해복구 지원을 당부했다. 이어서 해안가에 ‘만루립’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피해 어린이에게 유니세프 학용품을 주면서 이 학교를 UN에서 복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14년 5
2014년 3월 28일 마닐라에서 한국산産 경공격기 FA-50에 대한 한국-필리핀 수출 계약식이 있었다. 대한무역투자 진흥공사, 방위사업청, 필리핀 국방부장관, 주필리핀 한국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수출 계약 식에서 필리핀 국방참모총장(육군대장 바우티스타)은 아라우부대의 활동에 대한 칭찬과 감사에 이어 아라우부대 방문을 희망한다는 언급을 한 후 한 달 뒤인 5월 3일에 아라우부대를 방문했다. 국방참모총장 일행 방문은 태풍피해 복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라우부대에 민사작전 유공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것으로 필리핀 정부가 외국 부
‘MBC 진짜사나이’ 아라우부대 편이 방영된 이후 아라우부대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부대의 활동상을 홍보하고 부 대원 가족에게 소식을 전할 목적으로 합참에서 페이스북을 운영하였다. 이후 한국과 필리핀의 많은 사람들이 아라우 페이스북에 가입하였고,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서로 친구를 맺게 되었다. 그 중에 한 한국 남자가 타클로반의 현지 여학생과 채팅을 하게 되었다. 이 남자는 30대 중반인 것 같았고 여자는 대학생이었지만 필리핀 은 대학교에 빨리 들어가므로 미성년자인 17살이었다. 둘은 채팅으로 친해져서
필리핀의 행정단위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내려오는 Province( 주) City(시), Municipality(군/읍), Barangay 등 네 개로 구성되어 있 다. 최소 행정단위인 바랑가이는 1,000명 이상 주민이 사는 마을단위로 형성되어 우리의 리里나 동洞에 해당되며 바랑가이의 장長을 ‘바랑가이 캡틴’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촌장’이라고 불렀다. 바랑가이는 주민들에게 정부의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창구의 역할과 치안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 뿐 아니라 바랑가이 캡틴은 주민간의 분쟁을 조정하고 범죄자는 마을 감옥에
6월경 타클로반 시내, 사람이 많이 다니는 중심도로 건물 외벽에 누군가가 붉은색 락커로 ‘US troops out now! BAYAN’ 라는 ‘반미’ 구호를 써놓았다. (BAYAN는 애국자라는 의미로 제국주의로부터 국가 및 사회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반정부 조직) 필리핀은 327년간의 스페인 식민지배로부터 독립 후에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강하게 저항하며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1899~1902년 4년간의 필리핀-미국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종료되었고 이후 43년간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독립전쟁 기간 중에 사마르 주
태평양 전쟁 당시 필리핀은 비록 미국의 식민지였지만 거의 완전한 자치권을 갖고 있는 상태였는데 일본의 침공으로 필리핀 자치정부는 무너지고 약 4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수십만 명의 필리핀인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닐라 대학살’로 1945년 2월 루손섬에 상륙한 연합군을 피해 퇴각하던 일본군이 마닐라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약탈, 강간, 학살로 사망자만 약 10만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1942년에 시작된 일본의 필리핀 침공 초기에는 미국의 극동군사령부가 있는 마
작전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초등학교 벽에는 일장기가 그려져 있다. 이는 과거에 필리핀 교육부가 노후된 초등학교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위해 일본의 차관을 끌어들여 초등학교를 보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건물 전체를 보수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교실만을 보수하고 벽에 일장기를 그려놓은 것이다. 교육감 말에 의하면 필리핀 정부가 차관을 다 상환하였다는데, 기증한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 주어 복구한 건물에 빌려 준 사람의 이름을 써 넣는다’라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도 학교를 지어주거나 또
‘외인부대’는 특정국가의 군대에 그 국가의 국적을 가진 국민이 아니라 외국인을 받아 들여 구성한 부대를 말한다. 아라우부대에도 엄밀히 말하면 외인부대라고 할 수 없지만 부대원들이 ‘외인부대’라고 부르는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작업특공대가 있었다. 사실 우리 공병대원들은 대부분이 시설공사 병력이 아닌 전투공병이라 건물복구에 필요한 전문적인 목공과 미장 능력이 부족했다. 따라서 파병 초기에는 장병들이 숙련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2층 이상의 고층건물 복구는 가급적 자제했다. 그 대신 지붕트러스 작업 등 위험한 공사는
2014년 1월 2일 태풍이 발생한 지 50일이 되었지만 타클로반 일대에 아무도 건물복구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태풍의 피해에 대한 충격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지만 공사 자재와 기술자, 일꾼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라우부대는 파병시 상륙지원함(LST)으로 가져온 자재로 오퐁초등학교와 레이테 주립병원을 단 3주 만에 복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공사 자재를 다 사용하고 난 후 2월 말부터는 공사예산 사용 규정과 절차 문제로 더이상 공사하기가 어려웠다. 시설공사예산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국방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