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해의 국보와 보물 목록 ( 총 : 2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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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집 선비의 공간 ‘활래정(活來亭)’
강원도 강릉 선교장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통 한옥 건축으로서, 활래정은 풍류와 학문을 즐기기 위한 누정 건축물이다. 운정동에 위치한 선교장은 300년 동안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가옥이다. 효령대군의 11대손인 무경 이내번이 모친 안동 권씨와 함께 충주에서 강릉으로 이주하여 집터를 찾던 중 족제비 무리를 만나 이를 쫓다가 지금의 집터를 찾아 1703년에 안채인 주옥을 시작으로 활래정,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열화당, 중사랑채 등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을 거듭해 왔고 큰 대문을 비롯하여 12 대문이 그대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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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유역의 신라 축조성, ‘대전리산성’
임진강변의 호로고루, 당포성과 한탄강변의 은대리성는 평지에 성을 축성한 평지성이지만, 대전리산성은 한탄강의 지천인 신천이 합류되는 지점에 자리한 해발 140m의 성재산을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이다. 평지성은 멀리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망대를 두어 그곳에서 감시 임무를 띠지만, 대전리산성은 높은 산에서 적군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멀리 더 넓은 지역을 감시하는 임무를 띤다. 대전리 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매소성 전투로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특별한 전투라는 역사적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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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변 삼국시대의 성지(城址) ‘은대리성’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경기도와 강원도를 거쳐 임진강과 합류하는 약 136km의 하천이다. 용암지대 위를 흐르는 독특한 현무암 계곡과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고,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한탄강은 약 50만~12만 년 전 북한 평강 지역에서 발생한 화산 폭발로 인해 용암이 흘러 내려와 지금의 한탄강 일대에 현무암 협곡을 형성했다. 이에 따라 지금의 주상절리, 협곡, 폭포 등이 발달하게 되어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한탄강 일대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지역이었으며, 특히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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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 삼국시대의 성지(城址) 5
연천 지역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영토이며 당시 ‘마전천’ 또는 ‘니소파홀’이라 불렀다. 이후 신라 땅이 되면서 중국식 한문 지명은 ‘임단’으로 고쳐 불리면서 우봉군의 영현이 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넘어오면서 고구려 때 불렀던 ‘마전’으로 고쳐 현종 9년(1018년) 장단군에 예속되었다. 조선시대에 오면서 고려 태조를 모신 숭의전이 자리해 ‘마천군’으로 승격되었고 일제 강점기 행정 통폐합에 의해 연천군이 되었다.연천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삼국시대만 해도 세력다툼의 각축장이었다. 고구려는 남한강 유역 충주까지 세력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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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신라, 전운(戰雲)의 현장 ‘호로고루‘
임진강변 37번 국도를 따라 적성 교차로에 이르면 장남교가 임진강을 가로질러 있다. 그 길은 원당리 마을 안쪽으로 나 있으며 372번 도로를 만나서 옛 명성이 자자했던 고랑포구 방향으로 이어진다.옛 고랑포는 개성과 서울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 연결된 포구이다. 서해안을 따라 조강을 거쳐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는 생선과 새우젓, 소금을 실어 올라와 고랑포구에서 하역하고 상거래가 이루어졌다.고랑포는 개항기를 거쳐 상권이 형성되면서 번창한 포구가 되었다. 고종 때부터 시작된 곡물 수출이 1890년에 급격히 증가하면서 포구가 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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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 삼국시대의 성지(城址) 3...'육계토성'
우리나라의 성은 지역적 조건과 지역적 특수성에 의해 여러 가지 모양의 성곽이 발달하게 되었다. 특히 산지가 많아 산성이 발달하였으며, 네모꼴로 축성된 성곽에 비해 자연적인 지형에 따라 포곡선을 형성하여 부정원형이 많다. 축성에 필요한 각종 재료도 부근의 산돌을 깨어 이용하거나, 돌이 없는 산은 흙을 깎아 성벽을 구성하였다.평지성인 경우에는 풍납토성이나 육계토성처럼 물을 이용한 천연의 저지선을 만들었고, 산성의 경우는 숨어서 엿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산을 피하여 위에서 공격을 못 하도록 위치 선정을 하고 있다. 한강변의 평지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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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 삼국시대의 성지(城址) 2
파주의 적성 지역은 구한말까지 적성군의 중심이었다. 1914년 부근면 통폐합으로 연천군에 병합되면서 사라졌다. 1945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연천군 대부분 지역이 38선 이북에 속하게 되자 미군정의 임시 조치로 38선 이남의 연천군 지역이 파주시(당시 파주군)로 편입이 되었다.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연천군 대부분 지역을 수복했지만, 적성면은 연천군으로 반환되지 않고 그대로 파주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성 지역은 옛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백제 때는 난은 별, 고구려 때는 낭벽성 또는 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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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 삼국시대의 성지(城址) 1
[한국NGO신문=정진해 대기자] 파주 임진강을 넘기에는 쉬운 여정이 아니다. 임진강은 넘는 길은 철통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 그 절차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모처럼 통일대교를 넘어 민통선 내로 들어가 문화재인 덕진산성과 허준 선생 묘까지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몇 회 임진강 생태탐방을 하면서 임진강 건너 초평도 건너편에 자리한 옛 산성인 덕진산성의 남쪽 부분만 보면서 발걸음을 옮겨야 했었다.덕진산성은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13번지 일원에 자리한 삼국시대 고구려의 산성으로 조선시대까지 명맥이 이어져 왔던 산성이다. 해발 85m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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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8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예로부터 신산으로 알려진 원릉산은 탄현면 금송리, 월롱면 덕은리, 금촌 야동동에 걸쳐 있는 해발 246m의 월롱산이다. 두 개의 봉우리로 나누어져 있는 산은 월롱면 덕은리와 야동동 쪽은 ‘파주 월롱산’, 탄현면 금송리 쪽은 ‘교하 월롱산’이라 부른다. 월롱산 서쪽에는 해발 높이가 비슷한 기간봉이 있다. 이곳에는 늘 측량을 위한 깃대가 꽂혀 있어 깃대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곽은 월롱산 정상부의 내성과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가위 모양으로 둘린 외성으로 구성된 백제의 전형적인 태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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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7
파주 오두산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과 한강을 볼 수 있고, 두 강이 만나서 조강이란 이름으로 바다를 향해 가고 있다. 이 만나는 강안 단일 구릉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119m의 오두산은 삼국시대에 축조하여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나라의 방패가 되어 사용되었던 오두산성이 자리한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서해에서 한강 혹은 임진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하여 일찍부터 군사 · 지리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왔다. 서북쪽으로는 경기도 개풍군 임한면의 남단이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다. 한강 넘어 서쪽 방향에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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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6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행주산성에서 가장 높은 대첩비에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여 있어 어디든 눈높이까지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전쟁의 승리 조건이 갖추어진 산성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이 일어난 곳으로 권률 장군을 비롯한 의병과 승병 2,300여명이 왜군 3만 여명과 맞서 싸워 승리를 얻어낸 역사적 현장이다. 당시 승병과 의병뿐만 아니라 아낙네들이 행주치마를 이용해 돌을 나르며 싸움을 거들었다는 일화도 전해오고 있다. 1991년 서울대학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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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5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격하여 차지했다. 당시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다가 고구려군에 잡혀 아차산 아래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백제는 한성을 내어주고 옹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다. 백제가 떠난 자리는 오랜 세월의 흐름에 땅속에 묻혔다가 현대에 와서 그 사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싸웠던 그 흔적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 하나둘씩 빛을 얻어가고 있다. 한강은 어떤 강이기에 빼앗고 뺏기는 일이 계속되었을까?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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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4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몽촌토성역 1번 출구를 나서면 올림픽 세계평화의 상징인 도베르만의 평화의 문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문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 웅장하게 서 있다. 문 가운데에는 88 올림픽 당시 점화하였던 성화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세계평화의 문’ 은 한국전통건축의 둥근 곡선을 활용하고 비약과 상승의 이미지를 강조한 작품이다. 조형물의 천장 부분인 날개 하단에는 한국 전통 양식인 단정을 주조로 하여 사신도인 청룡, 주작, 백호, 현무를 양면에 단층으로 그려 넣었다. 문의 앞쪽 좌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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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3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한강 주변의 높은 곳에는 적으로부터 감시와 방어의 수단으로 성을 쌓았다면 한강 변의 평지성은 통치자 보호를 위해 축성되었다.백제시대 초기(한성백제기) 한강 변에 땅을 파고 뻘흙을 깔아 기초를 만들고 그 안팎으로 진흙과 모래흙을 다진 판축기법으로 중심 토루를 쌓았으며, 일부 구간에는 식물을 깔거나 자갈을 이용하여 토루를 보강하는 등 독특한 축성 기술로 쌓은 토성이 자리하고 있다.서쪽으로 한강에 연한 남과 북의 방향 장타원형 형태를 띠며, 북벽과 동벽, 남벽이 남아 있다. 서벽은 서남부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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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2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경기도 남양주의 수석동 하면 고산 윤선도와 겸재 정선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산 윤선도(1587~1671년)는 조선시대 문신이며 시조 작가이다.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 3대 가인으로 불린다. 고산의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시조의 최고봉으로, 장조 15년에 왕의 특명으로 발간된 가 있다. 수석동의 고산촌은 윤선도의 별서지가 있었다. 의 「시장(諡狀)」에 고산의 거쳐가 남쪽 바다에 있었고, 양주 고산에도 있었기에 ‘해옹’ 또는 ‘고산’으로 칭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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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유역의 삼국시대 축성된 옛 성곽 I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한강은 선사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에 이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전략적 수로 역할을 해오면서 조선왕조와 일제강점기 무역 활동 등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해 왔다.한강 유역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면서 농경문화의 발전이 이어졌으며, 삼국시대에 이르러 한강 유역을 점유한 국가는 영토의 확장과 더불어 국가 발전의 강력한 터전을 마련한 결과가 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지배하던 시기에는 나라가 번영하였고 상실하면 쇠퇴하였다. 한반도의 중심 무대가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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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발견된 신라비를 찾아서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몇 해 전 포항시 소재 실외 문화재를 찾은 날이 있었다. 많은 문화재가 있는 포항 전역에 있는 문화재를 하나하나 찾아서 직접 확인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안내된 설명도 빠짐없이 중요한 부분 메모도 했다.그날이 지금 와서 많은 문화재를 하나하나 정리하는데 중요 부분을 빼놓지 않고 촬영한 사진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많은 문화재 중에 포항 영일 냉수리에서 본 포항 냉수리 신라비(국보)와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본 포항 중성리 신라비(국보)가 1,500년 이상의 역사의 흐름에도 변함없이 사실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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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어사진을 최초로 찍은 장소 연경당의 ‘농수정’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창덕궁 후원 부용지, 영화당을 지나 불이문을 들어서서 우측의 애련지를 보며 걷다 보면 전통가옥인 연경당이 자리한다.장락문을 들어서면 우측에는 사랑채로 통하는 장양문(長陽門)이 있고 좌측에는 안채로 통하는 수인문(修仁門)이 있다. 장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과 사랑채 마당을 경계 짓는 담장이 있고 가운데에 통용문인 협문이 정추문(正秋門)이 있으나 건물은 하나로 연결된 구조이다. 궁궐 후원에 사랑채, 안채, 안 행랑채, 바깥 행랑채, 반 빗간, 서재, 후원, 정자 및 연못을 갖춘 사대부의 주택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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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이의 정자 ‘이노정(二老亭)’
[한국NGO신문=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고려시대의 누정 양식은 다양한 양식으로 발달되면서 조선시대로 넘어 와서는 더더욱 한국의 전통 양식 누정이 주변 환경에 걸맞는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누정은 자연 친화적 공간을 최우선의 조건을 하였다.한양 중심의 유교 문화가 사화 당쟁의 영향으로 지방으로 분파되면서 지방유교문화가 발달하였다. 다양한 계층의 선비들이 경치 좋은 곳에 누정을 지었다. 이러한 누정은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경기, 강원, 충청도 지방의 정자는 방이 없는 곳이 많고, 경상도 지방은 방을 양쪽으로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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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쏘고 심신을 단련하는 군사적 건물 ‘관덕정(觀德亭)’
[한국NGO신문=정진해 대기자] 제주의 해안에는 많은 관방 문화재가 남아 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연대와 환해장성 등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한다. 또한 섬을 둘러싸고 있는 천혜의 자연인 해안의 높고 낮은 절벽과 다양한 모양의 바위, 사철 우거져 있는 나무 등도 빼 놓을 수 없는 천혜의 자연 관방시설에 포함된다.특히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연대는 강화도의 돈대와 비교할 수 있다. 강화도의 돈대는 54곳이 일정한 거리와 규모로 병력이 화력을 무장하여 섬을 지키고자 하였던 것이라면, 제주도의 25곳의 연대는 적의 침입을 사전에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