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가이드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학생이었다. 호리낭창 마른 몸매에 목소리도 가늘고, 왠지 불쌍해 보이는 표정에다 말투까지 맥이 없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우리가 이모처럼 느껴지는지 버스 타고 마이크만 잡으면 쉴 새 없이 종알종알 자기 이야기를 했다. 관광 안내보다 자기 하소연을 더 많이 했다. 처음 유학 왔을 때보다 러시아의 물가가 얼마나 천정부지로 올랐는지, 집세는 얼마나 비싼지, 한국 음식은 또 얼마나 먹고 싶은지 등등.
그녀와 함께 보낸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 일정이 무사히 다 끝났다. 우리는 4시 4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핀란드의 헬싱키로 가기 위해 핀란드 역으로 갔다. 여기서 헬싱키까지는 기차로 약 6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특이하게도 러시아의 기차역은 출발하는 도시가 아닌 종착역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예를 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려면 ‘모스크바 역’에서 타야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까지 가는 기차는 ‘핀란드 역’에서 출발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기차역을 찾느라 엉뚱한 곳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장거리 여행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기차 안에 커다란 가방이 산처럼 쌓였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가는 기차는 우리나라 무궁화호보다도 낡고 비좁았다. 우리 일행 말고도 한국인 단체팀이 더 있는 모양이다. 기차 안이 온통 한국말로 시끌벅적하다. 덕분에 여기가 외국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자리를 잡고 내다보니 텅 빈 플랫폼에 가이드 아가씨가 혼자 서 있다. 가면서 차에서 먹을 도시락을 직접 들고 올라와 일일이 악수까지 다 했으니 그만 가도 되는데, 그녀는 여전히 서 있다. 어쩐 일인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던 그녀가 슬그머니 돌아서서 눈물을 슬쩍 훔친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애써 웃는 표정에다 모자까지 벗어들고 두 손을 크게 흔든다. 나도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객지에다 어린 조카 혼자 두고 가는 것 같이 마음이 짠하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이란 말이 뇌리(腦裏)에서 떠나지 않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로 가는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숲이었다. 껍질이 희끗희끗하고 위로 쭉쭉 뻗은 자작나무 사이로 기차가 달려간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 속에 등장하고, 동토(凍土)의 추위와 눈에도 끄떡없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 러시아의 자작나무였다. 페치카에서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그 나무를 생각하면, 끝없이 광활한 대지와 소복이 쌓인 눈과 밤새 달리는 기차가 연상되곤 했다.
지금 비록 7월이고 눈도 내리지 않지만, 내가 오래도록 간직해 온 버킷리스트를 지우기에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이렇게 백야(白夜)에 기차를 타고 자작나무 숲 사이를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오후 3시 같다. 아직도 창밖에는 강렬한 태양이 있다. 5월부터 시작해서 6월에 절정에 이르고, 자정이 되어도 초저녁 어스름만 내린다는 백야(白夜). 그게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했다. 오래 간직했던 버킷리스트 몇 개를 이 허름한 기차 안에서 한꺼번에 지우게 될 줄 몰랐다. 내 마음이 기차보다 더 빨리 달렸다.
에어컨 시설이 아예 없는 기차 안으로 햇볕까지 쏟아져 드니 엄청 덥다. 창문조차 활짝 열 수 없는 낡은 기차가 북쪽과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달린다. 그 바람에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해가 들어서 잠을 청하기 힘들다. 어느덧 국경을 넘어 핀란드 땅에 들어섰다. 창밖에는 끝도 없는 자작나무 숲이 계속 이어진다. 러시아가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할 때 심어놓은 나무 덕분에 핀란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작나무의 나라가 되었다니, 역사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자작나무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껍질은 벗겨서 바구니나 소쿠리를 만들고, 몸통을 잘라서 곱게 다듬어 마트료시카를 비롯한 민속 공예품을 만든다. 뿌리로는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가구를 제작한다. 자일리톨이라 부르는 수액은 여러 가지 용도로 가공해서 먹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다 얼어붙는 추운 날엔 서슴없이 페치카 속에서 활활 타올라, 추위로부터 생명을 지켜주고는 한 줌 재로 사라진다. 그러니 자작나무가 없었다면 러시아 역사 자체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과언은 아니다.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자식들을 위해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 등 모질고 힘든 세월을 온몸으로 버텨내신 그분들은 나의 자작나무다. 철들고 보니 나는 염치없이 그저 받기만 했다. 받기만 하고 제대로 갚지 못했다. 그 은혜는 천상 다음 세대에게 갚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러시아의 자작나무처럼 남김없이 다 베풀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기차는 뭉게구름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진 그림 속으로 계속 달린다. 밤이 깊은 시간인데, 나는 아직껏 눈이 부셔 도저히 잠들 수 없다. 생각에 지친 몸은 주체할 수 없이 피곤하다. 한국은 지금 새벽 세 시가 넘었으니 식구들 모두 곤히 잠들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