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걱정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육부가 2022년 8월말 공개한 2025년부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할 역사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남침으로 시작된 6.25’라는 설명이 빠졌고, 근현대사의 비중도 5/6로 과도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2026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이 배울 사회과 교육과정 시안에서 ‘대한민국 건국’이 빠지고, ‘6.25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서술하라는 지침도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시안(試案)을 작성한 책임자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민중사관’으로 물든 교수와 교사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 ‘대한민국’의 시각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시각으로 작성되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 왜곡되고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역사교사(약 8천여 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민중사관’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소설 『1984』라는 극단적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작품을 쓴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 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우리나라 사학계와 교육계, 문화계의 실태를 살펴보면 ‘조지 오엘’의 경구처럼 이미 국민을 가난으로 평등하게 하고, 자유를 통제하려는 주체사상파가 지배하려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어느 할아버지가 초등학생 손녀에게 “6.25는 누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지?”라고 물으니 손녀가 “일본놈 아니에요?”라고 하더란다. 정말 이런 현상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문득 2008년도 말에 서울 시내 몇 개 고등학교에 초빙되어 순회강연 했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서울시 의회에서 특별예산을 마련하고 서울시 교육감이 후원했던 프로그램이다. 수능시험을 치룬 후 여유가 있는 시간을 활용하여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 100여명이 멘토(mentor) 역할을 하는 ‘살아있는 교육 프로그램’ 이었다.
나는 ‘안보전문가’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사명감을 갖고 해방시기부터 6.25전쟁까지 안보상황과 한미동맹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최소한 알아야 할 내용으로 나름 쉽고 재미있게 강연 준비를 했다. 강연은 모두 강당에서 진행되었는데 강연 전 학생들이 6.25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질문은 ‘6.25전쟁은? ①남침이다 ②북침이다 ③모르겠다’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눈을 감고 손을 들게 하였다. 3개 학교 학생들이 대체적으로 남침 30%, 북침30%, 모르겠다 40%로 대답했다. 나는 3번째 학교에서 ‘③모르겠다’는 학생들에게 왜 모르는지를 물었는데, 답변은 뜻 밖에도 “남침은 뭐고, 북침은 뭐예요?”라고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한자어로 된 용어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리고 ‘①남침이다’라고 정답에 손을 든 학생 중에서도 ‘남침’은 북쪽의 북한이 남쪽의 대한민국을 공격했다는 원래의 뜻이 아니라 ‘남침’은 ‘남쪽이 북쪽으로 침략한 것’으로 이해한 학생들도 많았다. 따라서 손을 들어 답한 %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다. 멘토인 나 자신도 황당했고 혼란스러웠지만 소련이 제공한 비밀문서들을 정성껏 인용하면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주었다.
강연 중 또 당황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 전쟁)말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의 한반도 전황은 미군이 오키나와까지 진출하였을 때 소련군은 북쪽 만주지역에서 한반도를 행해 너무 빨리 남진하여 남한까지 점령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설명하고 소련이 일본의 항복이전에 한반도를 완전 점령하지 못하도록 소련군의 진출한계선을 설정한 것이 38도선이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설명을 듣던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고 배운 학생들에게는 헷갈리고 받아드리기 어려운 대목 이었다. 나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직후인 1945년 8월10일 밤 자정 경 당시 미 합참의 당시 본 스틸 대령(후에 유엔군 사령관이 됨)과 딘 러스크 소령(케네디 대통령시절 미국 국무장관)이 국무부와 군의 협조회의에서 명령을 받고 38도선을 건의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군이 인천항에 도착한 날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8월15일로부터 24일이 지난 9월8일 이었으며, 소련군은 8월15일 이전에 이미 38도선 부근에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1948년 5월10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하여 유엔(UN)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최초 국회의원선거)을 실시하고자 했으나 소련군은 ‘유엔선거감시단’의 38도선 북한내 활동을 차단하였다는 점도 확인해 주었다. 그래서 최초의 민주주의 총선거를 남한만 실시하게 되어 분단의 책임이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후 6.25 전쟁 시 유엔군이 북진해 통일하기 직전에 중공군이 개입하여 우리의 소원인 통일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현 분단의 2차적 책임은 중공측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라고 말해 주었다.
내 강연으로 학생들이 자기들이 알고 있던 사실이 잘못된 내용이라는 것을 납득 시킬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다. 우리 세대의 상식(常識)이 어린 세대들에게는 지식(知識)이 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렸을 때 교육 받은 것이 평생영향을 준다는 의미로 이해하기도 했었다. 내 경우 초등학교 때 터득한 천자문, 조선조의 왕들, 태양계의 행성들, 독립선언서 등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의미는 글자 그대로 ‘교육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세우는 중요한 국가의 계획’이라는 뜻일 것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이 교육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뜻에서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국가의 교육계획은 적게는 한 인간, 크게는 한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지혜를 모아 신중하게 수립하고 자주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영토도 크지 않고, 부존자원도 부족하며, 주변 안보환경도 엄중해서 일찍이 전 국민을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교육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해 왔던 이승만 건국 대통령과 박정희 부국대통령 덕분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한강의 기적’을 창조한 위대한 나라가 되었다.
과거 1995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우리나라는 기업은 2류이고, 관료는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을 해서 세상에 회자되었듯이 근래 교육과정의 난맥상은 정치의 낙후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정치의 후진성과 교육의 폐해로 인해 지금도 가끔 내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폐에도 동전과 지폐를 보면 온통 조선시대 인물들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인물인 세종대왕과 충무공 동상이 떡 버티고 있으니 외국인들의 눈에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잘 안보이고 중국과 일본에 억눌려 지냈던 조선말기시대만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제 세계10의 경제대국인 우리나라는 잘못된 정치와 교육의 질곡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고 집요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의 간절한 노력이 공명을 일으켜 국민의 집단지성이란 큰 파도가 된다면 정치와 교육을 왜곡시키고 파괴하려는 세력을 뒤덮어 버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준다. 다시는 “남침이 뭐고, 북침이 뭐예요?”라는 황당한 질문이 청소년들로부터 나오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