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길들인 며느리

  • 기사입력 2022.09.21 13:49
  • 기자명 이진경 교수
▲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이진경 특임교수

 며칠 전, 가족상담하는 선생님이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웃는다. 동네 까페에 앉아 있는데 추석을 보낸 여인들이 별의 별 시댁 얘기들을 다 하느라 천장이 뚫릴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렇게라도 공감과 위안을 받으며 명절 스트레스를 며느리들은 풀고 있었으리라. 물론 예나 지금이나 며느리 사랑이 유독 깊은 시어머님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시대를 초월하여 가족 내 가장 큰 갈등관계가 고부관계일 수 있다. 지난 해 MBN 프로그램 '한국에 반하다, 국제부부' 예능 편에서는 터키출신 니다가 “며느리는 꽃이고 시어머니는 뱀이라 말하는 게 다 거짓말이다”라는 속담을 소개했다. 듣기만 해도 고부 간 관계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한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유교적 특성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아들이자 남편인 한 남자를 두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정체성 쟁탈과 함께 적대적 관계로 치 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부갈등의 시작은 아들이 며느리의 남편이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한 적의를 나타내고 정신적 고통까지 주면서 발생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강자인 시어머니에 대해 현전(現傳)하는 「시어머니 길들인 며느리」 이야기가 있을까. 시부모를 공대하는 것이 부덕(婦德)중 하나로 권장되는 우리문화의 덕목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관념의 이야기가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것만 해도 30편에 달한다. 그 이야기는 많은 며느리들 또는 결혼한 아들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시아버지를 길들인 며느리’, ‘시어머니(시아버지) 도둑버릇 고친 며느리’ 등 유사한 맥락을 갖고 있는 이야기들이 함께 전해오기 때문이다.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남의 허구적’ 설화를 향유하며 대신 억눌린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던 설화의 내용이다. 

‘옛날 옛적 고약한 시어머니가 있었다. 하나 있는 아들을 장가보냈으나 며느리 세 명을 갈아 치웠다.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 세 며느리 모두 석 달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집에, 한 처자가 스스로 시집을 가겠다고 나섰으나 네 번째 며느리 역시 온갖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시아버지가 친정에 갈 것을 권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을 잘 참고 견뎌 착한 며느리라는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틈을 이용해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시어머니의 두 손을 묶고 마구 때렸다. 항상 강자였던 시어머니는 기가 막히고 억울한 그 사실을 사람마다 붙잡고 호소했으나 단 한사람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며느리는 고약한 시어머니의 버릇을 고쳤으니 착한 시어머니로 길들였다‘는 이야기다. 

이번 추석에도 다문화가정 어느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신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거짓말을 해 가족 간 갈등이 표출된 사례를 접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사랑, 결혼 후 남편사랑이 부족했던 시어머니는 낮은 자존감, 애정결핍, 열등감 등이 포함된 공상허언증인 시어머니라고 전문가는 판단했다. 공상허언증은 실제 정신과에서 관종을 포함하여 기억의 인지 오류, 인격 성향, 작화증(자기의 공상을 실제의 일처럼 말하면서 자신은 그것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병적인 증상) 등으로 구분한다. 이들은 자신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을 사로잡기 원하지만 동시에 거짓이 발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다. 큰 소리는 치지만 자신감 없고 다양한 불안감으로 인해 갈등 사건의 도화선을 늘 만들며 현실을 왜곡하여 관심을 끌고 동정심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통계에 따르면 외국출신 아내는 이혼사유에 대해 성격차이(49.9%)와 배우자 가족과의 갈등(50.1%)이 각각 주된 이유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고부갈등은 이혼의 대표적 사유 중 하나이다. 「시어머니를 길들인 며느리」민담 속에서 억압받는 위치에 있는 며느리를 승리자로 만듦으로써, 지배자인 시어머니를 누르는 며느리의 당당함을 여전히 향유할 수밖에 없겠다. 배우자와 가족들은 약자의 입장에서 고부관계를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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