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9월과 10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이지만 국내외적으로 참 번잡스럽고 걱정되며, 긴장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설악산으로부터 단풍소식이 내려오고,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면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절기가 무르익는다. 그런데 세상은 가을조차 느낄 수 없는 치열한 갈등과 분열이 오히려 계절의 향기를 빼앗아가는 불편한 뉴스가 가득하다. 10월은 1일 국군의 날이 있는 달이기에 국가안보의 소중함이 더 하는 달이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侵攻)이 국제안보 및 국제경제를 마구 흐트러 놓은 상황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뜻밖에 선전(善戰)으로 공격기세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공세종말점(攻勢終末点)을 맞고 있으며, 반전(反轉)의 계기로 몰리는 듯하다. 그런데 핵무장 강국인 러시아가 순순히 치욕을 감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외신에 더욱 걱정스럽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미국에서 수행요원과 사담(私談)한 내용을 국내 특정방송이 미국을 대상으로 비속어(卑俗語)를 사용했다며 조작선동 보도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문제의 방송국은 2008년에도 광우병(狂牛病) 날조 보도로 나라를 뒤흔든 전력이 있다. 거대야당과 언론들은 조작된 대통령발언 보도내용을 막무가내로 기정사실화하여 ‘외교참사’라고 뒤집어씌우고 있다. 온 국민의 피와 땀으로 기적을 이루어 세계사에 빛나는 선진국 대열에 막 올라선 대한민국이 하찮은 일로 나라가 둘로 쪼개져 진흙탕에서 싸우는 모습이 부끄럽고 한심스러워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그나마 비속어의 대상인 미국이 우리 대통령의 말을 믿고 전혀 신경을 쓰지않겠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최우선적으로 대비해야 할 사안은 외교참사니 발언조작 운운 할 때가 아니라 지난 9월 8일 북한이 소위 “핵무력 정책법”이란 것을 제정한 국가안보의 위기를 살펴야한다. 이 법에는 북한체제에 위협이라고 느끼면 어느 때고 대한민국을 핵으로 ‘선제공격’하겠다는 선전포고에 가까운 공갈협박을 담고있다. 그리고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준비하면서 중·단거리 미사일을 계속 쏴대고 있지 않은가?
야당은 과거 집권 당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미국과 우리국민을 기망(欺罔)한 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세계를 다니며 북한에 부과한 각종 경제제재를 풀어 달라고 호소하고 망국적인 종선선언까지 추진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북한 핵위협에 대한 국민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엉뚱한 짓들을 하였고, 결국은 북핵이 고도화되도록 방기한 안보유기(安保遺棄)를 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북한 핵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과 ‘핵확장 억제전략’을 구체화 시키고, ‘한·미’, ‘한·미·일’ 연합훈련에 여념이 없는데 거대 야당이 이렇게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있으니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억제방책이지만 우리나라가 당장 핵을 스스로 보유하는 것은 국제법과 전략환경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책으로 판단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핵확장 억제전략’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핵확장 억제전략’은 먼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방책으로서 대북 3축 체제(선제타격, 유도탄 방어, 대량보복)을 강화하고, 미국 핵무기를 어떤 형태이던 대한민국 영토, 영공, 영해 또는 주변에 배치하여 북한이 이를 인지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압도적 보복이 두려워 핵을 사용 못하게 하는 억제전략이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점은 우리국민들이 북한의 실존하는 핵위협을 꼭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는 ‘핵위협 불감증’이 도를 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은 한·미 군사적 대응만으로 대처하는 것은 절름발이 대책으로 불완전하며, 국민의 참여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마침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어 「한국 신정부 출범과 한미동맹의 변화」란 주제로 ‘한·미 국제안보 학술회의’가 9월말 경 서울에서 개최돼 큰 기대를 걸고 참석하게 되었다. 발표 주제내용은 한반도 핵관련 정책을 포함하여, 한·미 양측의 안보관련 이슈들이 망라되었고, 주제 발표자 및 토론자들도 한·미 양측의 현역 학자, 교수, 국방부 정책담당관들이 대거 참여하여 더욱 관심을 갖게 했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새로운 한반도의 안보관련 정책과 지혜를 접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게 생각되었다.
그 중 한국의 3축 체제를 담당하고 운영할 전략사령부의 창설 추진계획, 중국의 회색지대전략(전쟁없이 전략목표 달성),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사령부의 중요성 재인식과 6.25전쟁 휴전 후 파견근무 외국군을 보훈대상자로 확대하는 방안 등 새로운 국제적 보훈정책 주장은 매우 신선한 논제들이었다. 특히 핵관련 정책주제에 대하여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나의 관심사항은 발제자 누구도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노병(老兵)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우리국민의 ‘핵위협 불감증’을 지적하고 군사적 대비책만으로 국민의 생존을 보장 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야 군사적 대비책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핵 대피시설 준비’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또한 핵 대피시설 준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기존아파트의 지하차고와 지하철의 일부 공간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덧붙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핵 권위자인 발표자는 핵 대피시설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세계에서 스위스만이 핵 대피시설을 갖추고 있고, 핵 대피시설 구축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준이므로 실현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다소 소극적인 답변을 했다.
나는 그 답변에 수긍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 학술대회의 발표자 및 토론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청인들도 우리나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므로 질의자인 나에게 예외적으로 큰 박수를 보낸 것을 보면 그들에게 ‘핵 대피시설 준비’를 인지하게 한 것만으로도 1차적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위해본다. 사실 학술회의에서는 정치권이 꺼리는 문제라 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거리낌없이 개진하는 것이 올바른 학자들의 태도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일천한 경험이지만 미국 유학당시 워싱턴에서 몇 번 참석한 학술회의에서 정치권이 꺼릴 만한 문제도 서슴없이 제기되고 토론하는 선진국의 참모습을 보고 얻은 교훈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제기한 ‘핵 대피시설’ 문제도 세상에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아니고 벌써 이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어느 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도 있었다. 1996년 스위스를 공식 방문 했을 때 핵 대피시설을 방문하여 감동을 받은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도 아파트 주차장 등을 보강해 핵 대피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핵 대피시설은 30cm 이상 콘크리트나 60cm 정도 흙의 차단벽이 있고, 방사선이 1/1000로 감소되는 약 2주간 견딜 수 있는 식수, 음식, 환기시설, 용변시설, 침구류 등이 필요하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의 지하차고와 지하철을 조금만 보강하면 안성맞춤의 핵 대피시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국민들의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국가수호의지는 세계 제2위 군사강국인 러시아마저 굴복 시킬 수 있다는 실상황을 보고 있지 않은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핵 대피시설까지 갖추고 한·미 양국이 확장억제전략에 의해 군사대비책을 강화하면 결국 핵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통일의 서광이 비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교참사 따위를 조작선동 할 때가 아니라 ‘핵 대피시설 준비’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산하가 아름다운 단풍의 향연을 보이고 있으나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의 징후가 한반도에 먹구름을 뒤덮는 안타까운 10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