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거행된 고(故)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전(前) 일본대사의 제4회 추모제에 어떤 소명의식같은 것을 가지고 참석했다. 한국 땅에 묻힌 가나야마 일본대사의 유지(遺志)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 못지않게 추모제를 지내는 분들로부터 뜻밖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제3회 추모제에서는 추모제를 주관한 K육사선배님의 간곡한 초대 때문에 대사분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모른 채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 으로 참석했다가 가나야마 일본대사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런 훌륭한 분을 모르고 있었던 내가 자못 부끄러웠었다.
가나야마 대사가 우리나라를 위해 했던 일들은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야기였다. 대사는 한·일 국교정상화 3년 후인 1968년 제2대 주한일본대사로 부임해 3년 7개월간 재직했던 분이었다. 대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외교관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침탈에 대해 심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늘 한국편에서 일했다. 그는 전례를 깨고 일본인으로서는 거북한 3.1절과 8.15광복절 행사에도 참석했었다.
하루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술이나 한잔 하자”고 관저로 불렀다. 박대통령께서는 느닷없이 가나야마 대사에게 “대한민국의 주일대사로 역할을 해줄 수 있겠소?”라며, ‘사또 에이사쿠’ 일본 수상에게 포항제철소 설립에 필요한 ‘제강기술협력’을 요청하는 친서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성사시키지 못하면 한국에 돌아오지 말라고 엄포까지 놓았다고 한다. 가나야마 대사는 사또 총리를 만나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끝장이라고 설득했고, 또 기술지원에 부정적이었던 신일본제철 회장을 집요하게 설득해 대한민국 중공업의 초석인 포항제철 설립의 길을 열어준 분이었다.
한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가나야마 대사를 일본 외무성은 유럽에 보내려 했으나 그는 바로 은퇴한 후 도쿄에서 독도와 한·일 관계를 연구하던 ‘최서면’ 한국연구원장을 찾아갔다.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한국연구원에 ‘국제관계연구소’를 만들어 초대소장을 가나야마 전 대사가 맡아 한·일 관계 발전에 헌신했다. 대사는 심지어 애지중지하던 딸을 한국 남자에게 시집을 보낼 정도로 한국을 진정 사랑했다니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대사는 최서면 원장과 형제처럼 지내다가 “죽어서 한국땅에 묻혀 두 나라가 가깝게 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고 하여 최 원장의 가족묘지에 가묘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대사는 1997년 “죽어서도 한국에 사과하고 싶다. 나의 뼈 절반은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타계했고, 그 이듬해 그의 아들이 유해를 가지고 와서 파주시 조리읍 뇌조리의 천주교 묘원의 준비된 표지에 안장되었다.
가나야마 대사의 묘비에는 “나는 죽어서도 한·일 간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고 새겨져 있다. 지금은 2020년 타계한 최서면 원장과 나란히 묻혀 가나야마 대사의 소원대로 죽어서도 영혼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현대판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할 것이다.
금년에 4회째 추모제를 주관하는 K선배는 독일 참모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파주시에서 무공수훈자회 회장직을 역임했던 분으로 몇 년 전만해도 가나야마 대사의 묘에 관한 내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4년 전 어느 날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여성단체의 회장이라는 분이 찾아와 가나야마 대사가 파주시 천주교 묘지에 묻혀있는 사연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 추모제 주관을 맡아 달라며 간곡히 요청하더라는 것이었다. 일본 여성단체가 추모제와 관련된 모든 준비에 적극 봉사하겠다는 다짐도 진심(眞心)으로 느껴졌고, K선배 자신도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의 필연성을 평소 느꼈던 터라 천주교 묘지를 찾아 현장을 확인한 후 추모제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1회, 2회 추모제는 파주시 내 애국단체들과 일본부인회 회원들 위주로 조촐하게 행사를 했지만 K선배는 파주시민들만의 추모제로서는 가나야마 대사의 유지를 실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선배는 육사 동기생들과 알고 지내는 후배들 그리고 한·일 관계 발전에 관심을 갖는 분들을 초청하게 되어 나도 제3회째인 2021년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작년에 참석하여 가나야마 대사의 재직 시 공적은 물론 죽어서도 한국땅에 묻혀 한·일 양국의 친선과 친화를 돕고 지켜보고 싶다는 한국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그보다 못지 않게 나의 호기심이랄까 궁금증이 일어난 것은 어떻게 지방 소도시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일본 여성부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일본인 부인들은 약 20여 명이 되어 보였다. 환영사를 한 일본 부인회 대표라는 분은 “우리가 한국에 시집와서 일본 조상들이 한국에 매우 큰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조상들의 죄를 사죄하기 위해 우리들은 애기를 많이 낳고 훌륭하게 키우겠으며 착한 며느리, 현명한 엄마, 좋은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치인이 아닌 일본 국민의 진실한 사과를 듣다보니 일본에 대하여 가슴 한 구석에 앙금으로 있었던 어떤 감정이 다소 수그러지는 순간을 느꼈다. 진정한 사과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과 함께 일본의 정치인들은 진솔한 사과에 대하여 파주시 한국인의 일본부인들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분의 소박한 말이었지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그분들에게 물어서 확인한 내용인데, 자기들은 통일교의 신앙적 중매를 통한 가정을 만들기 해서 한국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단다. 그 수가 파주시에만 해도 일본 부인이 40명이 넘고 전국적으로 6,000여 명(그중에는 남자도 있음)이나 된다고 했다. 이분들은 평균 애들을 3~4명씩 낳았고 지역의 사회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종교와 상관없이 일본 부인들은 한국의 오롯한 현모양처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금년 4회째는 K선배로부터 추모사를 부탁받고 “금년에 우리는 불순한 정치목적으로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세력을 응징하고, 역사를 잊지는 않지만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약속한 좋은 정권으로 드디어 교체했습니다.”라고 했더니 추모제에 어울리지 않는 제법 큰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내년에는 한·일 관계 발전과 관련한 더 좋은 소식을 갖고 가나야마 대사님과 여러분을 찾겠습니다.”라고 마무리를 했다.
행사장을 떠나려하니 일본 부인들은 잊지 않고 내년에 더 좋은 소식을 전해달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돌아오면서 곰곰이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일 갈등에는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과 강제징용의 배상문제 그리고 위안부 사과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에서는 반일정서가, 일본에서는 혐한(嫌韓)기류가 충돌하는 양상으로 상존한다.
일본은 한국의 독도영유권을 인정하고, 한국도 일본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도록 지원하는 선린관계를 보여준다면 적어도 화해의 첫 단추는 분명히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이 가나야마 대사의 유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현실화된 핵무력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한·일 안보협력은 절실하지 않은가? 고(故)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의 한국 사랑과 추모제를 지내는 분들로부터 받은 감동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