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가 전국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세 사기는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몇 가지 요소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법 원리에 대한 국민교육이 부실했다. 법치주의가 사회 기본질서인데도, 초중고교 사회교육에서 준법정신만 강조했을 뿐, 법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국민 대부분은 지배권(물권)과 청구권(채권)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부동산 거래에서 등기한 경우와 아닌 경우의 차이를 잘 모른다. 토지등기부와 건물등기부가 따로따로 편제되는 것(아파트등기부 예외)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자기 집 부동산등기부를 직접 떼어본 국민은 몇 명일까? 한편, 법은 법의 무지를 용서하지 않는다. 법은 국민이 부동산등기를 안다고 간주한다. 등기부를 미리 살펴보지 않아서 손해를 입었다면, 그 책임은 피해자가 져야 한다고 한다. 법과 교육이 괴리되어 있다.
둘째는, 국민의 가치관 세계, 정신세계가 무너졌다. 돈이 수단이라는 생각을 잊고, 돈 자체가 가치관의 하나가 된 상태다. 돈이 삶을 편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우쭐댈 수 있으니, 좋은 것 아니냐, 그러니까 그것 자체가 가치라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면서, 돈을 버는데, 선한 방법, 나쁜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뻔뻔함까지 갖췄다.
셋째는, 법치주의 자체가 무너졌다. 법대로 한다는 뜻은 행위와 책임이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졌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팽배해 있다. ‘시카고’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영화가 현실이 되었다. 범죄‘행위’가 있어도, 재판게임을 잘하면, ‘책임’이 무죄로 귀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사죄를 구한다는 거짓 눈물을 잘 흘리면, 사랑이라는 무모함이 무죄의 횟가루를 발라준다는 생각이다.
사기범들은 이런 법치주의 현실을 즐긴다. 그들에게 돈이 최고 가치이니, 수단과 방법은 상관없다. 법과 교육이 따로 노니, 국민의 무지는 큰 횡재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들에게 등기부 내용을 에둘러 설명하고 지나간다. 이제 돈은 성공적으로 이미 사기범 손에 넘어왔고, 잘 빼돌리거나, 숨겨놓은 상태다.
앞으로 사기범에게 남은 과제는 형사재판, 민사재판을 잘 넘기는 것이다. 재판만 잘 넘어가면, 사기 쳐서 숨겨놓은 돈으로 여생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
여기에 우리 정치인들은 사기범 꿈에 실현성을 더한다. ‘공공 매입’, ‘피해자에 대한 저리 대출’, ‘경매에서 임차인 우선매수권’ 등 국민 세금으로 피해자들을 구해주자는 구호를 외친다. 이런 제도로 피해자가 구제되면, 피해자들이 사랑의 온정을 베풀 것이고, 사기범들의 형량은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사기범들이 만수무강에 이르는 길은 더 가까워진다.
이렇게 책임이 불분명한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다. 행위와 책임이 왜곡된 사회는 정의가 무너진 사회다. 나쁜 행위로 돈을 번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놓아두는 사회는 썩은 사회다. 선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악행의 피해자가 되는 사회다.
법에서 온정을 베풀 때가 있고, 엄정할 때가 있다. 한편으로 피해자 구제에 힘을 써야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기범에게 물어야 할 책임은 엄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어떤 책임이 가장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이다. 형사처벌의 강화? 현행의 손해배상?
아니다! 사기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사기를 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나쁜 행위로 돈을 벌어서 잘 살겠다는 심산이다.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책임은 사기범이 사기로 번 돈을 한 푼도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이 가졌던 돈을 더 토해내게 해야 한다. 실수로 범행에 이른 것이 아니라, 고의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제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사기범에게는 이 제도를 적용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기범의 책임을 실제로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개인정보 보호가 중시되면서, 사기범이 가진 금융정보도 개인정보로 보호되고 있다. 누구도 그의 재산을 함부로 들여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사기범은 이를 이용해서 요리조리 돈을 빼돌려서 치부하고 사용한다. 그러나 사기범이 가진 재산은 피해자들의 목숨과 눈물로 이루어진 피해자들의 재산이다. 사기범 재산에 대한 정보는 사기범의 개인정보라기보다는 피해자들의 재산정보라고 봄이 옳다. 사기범이 손해를 모두 배상할 때까지는, 그 자산 정보를 피해자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 제도와 정책이 정착되면 좋겠다. 첫째, 사기가 고소되고, 어느 정도 혐의가 인정되면, 수사기관은 신속하게 사기범의 금융과 자산에 대한 정보를 샅샅이 뒤져야 한다. 차명으로 넘긴 돈을 모두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이것을 게을리하는 수사기관이 있다면, 직무유기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둘째, 사기 범행이 밝혀지면, 법은 사기범의 금융 등 재산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적어도, 피해자들이 완전히 손해를 완전히 배상받을 때까지, 자동으로 피해자들이 사기범의 금융 등 자산 거래 중 생활비 이상의 거래사항을 즉시 통지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기범이 피해자들의 피눈물로 배부른 삶을 살게 둬서는 안 된다.
책임지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다. 사기범이 사기 친 돈을 절대로 쓸 수 없게 해야 한다. 그것이 사기 범행에 대한 정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