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총동창회는 매년 육사개교기념일(5월1일)에 즈음해 화랑연병장에서 전 사관생도 참석하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시상식을 개최한다. 이 상(賞)은 일반적으로 국가와 군은 물론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육사인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을 선정하지만 육사의 특성 때문에 영웅적 전사상자나 순직자도 선정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따라서 육사출신 전원이 수상후보의 자격이 주어지지만 아무나 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육군사관학교는 화랑대 현 위치 태릉에서 1946년 5월 1일 개교이래 79개기 졸업생 21,600여명을 배출했고,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수상한 졸업생은 평균 2개기에 1명 수준인 37명 정도로 수상자가 희귀한 편이다. 수상자 중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2기), 채명신 전 주월사령관(5기), 박태준 전 포항제철회장(6기,예비역 소장), 박정기 전 한전사장(14기,예비역 중령, 원자력발전소 한국화 유공), 고 강재구 소령(16기, 최초 월남파병시 부하를 살리고 수류탄을 덮쳐 산화), 오명 전 과기부장관(18기, 예비역 준장, 대한민국 정보화 구축)등 세상에 잘 알려진 분들이 있다.
그러나 현역시절과 전역 후 군 계급과 관계없이 국가와 군 및 사회에 묵묵히 희생적인 헌신과 봉사룰 해온 졸업생들도 있다. 반면에 고 전두환 전 대통령(11기), 고 노태우 전 대통령(11기) 같은 분들은 국가적 업적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연유(?)로 선정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28일 쾌창한 날씨 속에 개최된 육사개교 77주년 기념식장에서 제가 육사 21기 최초로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수상했다. 정말 영광스럽기 한이 없지만 솔직히 과분해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동기생들 중에는 능력이 출중하고 모교의 명예를 드높인 동기생들이 상당수 있다고 늘 생각해 왔으며 그들을 항상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더욱이 최전방과 월남전에서 장렬히 산화한 동기생들이 9분이나 된다. 제가 동기회장이나 총무직을 수행할 때도 훌륭한 동기생들을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후보로 추천하려 했지만 본인들이 완곡히 사양했다.
이번 경우도 제가 손사래를 치면서 다른 동기생을 추천했으나 동기회에서는 제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천했던 것이다. 동기생들의 동기애와 배려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자랑스러운 육사인상’ 심사는 그 절차가 매우 엄격하기로 정평이 있다고 한다. 우선 총동창회장은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심사위원들을 전 동기회를 망라해 15여명을 엄선하여 구성하고, 본인은 선정과정에 개입하지 않으며, 선정 후 이사회 및 총회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한다고 한다. 각 동기회에서 후보가 다수 추천되고 통상 선정 의결을 출석심사위원의 과반수 이상이 아니라 3/4 이상이 무기명 투표로 동의했을 때 선정된다고 하니 어려운 관문이라고 생각된다.
시상식에서 나는 총동창회장으로부터 상패와 화환을 수여받았고, 오픈카로 생도들을 열병한 후 연설까지 하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장면을 대형 전광판으로 동시에 방영되어 화랑대연병장에 도열한 사관생도들은 물론 학교 간부와 축하 초청객들에게 열병하는 중에 나의 양력과 공적까지 상세히 소개하는 학교측의 배려가 각별했다. 다시 한 번 축하 및 격려하여 주시기 위해 화랑대까지 오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그분들 덕분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받게 된 것으로 믿는다.
저의 연설문은 나름으로 육사인의 사생관(死生觀)을 진솔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며 사관생도들에게 깊이 각인되기를 기대했다.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공화주의 파수꾼’으로 살아온 군인의 길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결코 짧지않은 인생이었지만 한결같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일념으로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삶을 살아온 것을 자부한다. 제게 주어진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의 영광을 동기생들과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싶다는 진심을 전한다.
제가 연설문을 공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독자들과 교감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젊음을 푸른 군복에 보내며 지켜온 대한민국의 한 노병의 외침을 이 시대의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새삼 공감하고자 한다. 다음은 저의 연설문이다.
“오늘 저는 화랑대문을 두드린 지 62년이 지나 백발이 되어 다시 이곳 호국의 성지 화랑대를 찾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왔고 또 지켜나갈 자랑스러운 청백 대열 앞에 서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저의 생도 생활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꿈은 컸지만, 별로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암송하는 ‘사관생도 신조’인 ‘하나,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 둘, 우리는 언제나 명예와 신의 속에서 산다. 셋, 우리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만큼은 뼛속 깊이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 마디의 신조는 여러분이 어떤 군인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모든 행동과 판단의 규범을 경건하게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 마디는 자신이 나약해질 때 용기를 북돋아주며, 신념과 가치를 상실한 듯 느낄 때 다시 다잡게 하고, 안일과 불의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지켜주었습니다. 이 세 마디는 국가(Country), 명예(Honour), 의무(Duty)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으며, 항시 머리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후배들에게 사관생도신조를 심어주신 조국 대한민국과 선배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임관 이후 전쟁터를 포함하여 전역 시까지 그리고 전역한 지금까지도 모든 행동이나 판단 시에 사관생도신조가 나도 모르게 떠오르고 신조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택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던 일생이었습니다.
일생을 통하여 현역 시절 월남전에 참전했던 일, 미국방대학원에서 최초의 외국학생으로서 썼던 논문이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어 책으로 출판되었던 일, 우리 국군에 현재 합동군제 도입 시 핵심 역할을 했던 일, 한미연합 근무를 하면서 후배들을 미군 못지않은 유능한 장교로 훈련시켰던 일, 지휘관을 하면서 부대는 이겨놓고 싸울 수 있도록 했고, 부하들을 참다운 민주시민으로 육성시켰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전역 후에도 평생 익힌 외국어와 국가안보관련 전문성을 활용하여 한미동맹 및 유엔사와 관련된 일, 우리나라 내부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일, 대한민국에서 ‘문화안보’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던 일, 국가안보의식 제고를 위해 계도 하던 일, 국민이 세운 씽크탱크에 봉사하는 일, 79살에 수필가로 등단하여 불특정 다수와 소통의 길을 넓힐 수 있던 일 등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소망하는 우리 모교 육군사관학교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국가의 간성을 키우는 학교로 자리매김을 하였으면 합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은 현역 때에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주역할입니다. 그러나 전역 후에는 우리나라 내부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저는 “노병은 죽지 않고 공화주의 파수꾼이 될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중략)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멸공!”
끝으로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수상자는 육군사관학교 상징 건축물인 교훈탑(64m 육사전망대 겸 역사전시관) 내부와 육사교장실 입구에 영구 게시된다. 마지막으로 조크 한마디로 끝을 맺고자 한다. “나는 골프 칠 때도 안일한 페어웨이(fair way)보다 험난한 러프(rough)를 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