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태극기를 든 어린이들이 앞장서고, 어른들은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뒤따라 들어왔다.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할 공연팀은 무대 연습을 해 보느라 행사장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다시 봄, 머내만세길에서 만나자>고 쓴 현수막이 창공에 휘날렸다. 공연팀의 북소리까지 합세하니 내 심장도 마구 뛰었다. 울컥했다.
‘머내만세운동 104주년 기념행사’가 2023년 3월 25일에 열렸다. 당시 시위 행렬의 시발점이던 고기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하여 낙생저수지를 지나 동천근린공원까지 행진하는 코스였다. 현재는 목양교회와 고층아파트로 빙 둘러싸여 있는 근린공원에서 합창과 악기 연주 등 기념 공연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작은 공원이 동막골 애국지사 4인(진암회, 남정찬, 권병선, 이희대)의 합동 기념 표지석이 있는 장소이다.
머내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에 용인 수지 고기리와 동천리 주민 400여 명이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자주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선 항일운동이다. 만세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에 일제강점기 당시 수지면의 <범죄인 명부>를 발굴해냈고, 이를 근거로 주도자 및 적극 참가자 15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미 1990년대에 건국훈장을 받은 인종각, 이덕균 선생을 포함해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이 확인된 당시 주민 모두가 표창을 받은 셈이다. 이로써 머내지역은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는 기념 공연 순서에 목양교회 합창팀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가 부른 노래는 ‘그리운 강남’이었다. 합창단원 중 1956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은 대부분 가사까지 다 외우고 있는 노래였다. 다들 이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놀이했다고 입을 모았다. 짧은 구전민요인 줄 알고 있었는데 버젓한 제목이 있고 가사도 9절이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합창단 남성들과 1959년 이후의 여성들은 멜로디조차 모르고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간에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이상하고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운 강남’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석송 김형원 작사, 안기영 작곡으로 세상에 나온 노래다. 굿거리 풍의 4분의 3박자와 전통적인 5음계를 화성화 시킨 민족적 정서가 짙은 곡이다. 일제의 억압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북부 지역인 간도나 연해주로 이주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향수를 녹여낸 노래여서 돌아갈 본향을 강남이라고 표현했다.
해방 후에 '임시 중등음악교본' 이라는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지만, 작곡자인 안기영이 월북하는 바람에 1988년 월북 문인과 예술인 작품에 대한 금지 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었다. 다만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도 아이들이 고무줄놀이할 때 불렀다는 기록이 있고, 공식적인 음악회 무대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마치 구전민요처럼 조금씩 전해지기는 했다.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인데도 나보다 조금 젊은 여성이거나 남성들이 이 노래를 모르는 이유를 알겠다. 내 나이가 한국전쟁 후에 고무줄놀이하던 아이들 속에 포함되는 마지노선인 모양이다. 당시 고무줄놀이는 여자아이들의 전유물이었으니 남자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어쨌든 까맣게 잊고 있던 노래를 근 60여 년 만에 다시 부르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는 무대에서 1절과 7절, 9절을 불렀다.
1.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 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 가세.
7. 그리운 저 강남 두고 못 감은/ 삼천리 물길이 어려움인가/ 이 발목 상한지 오램이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 가세
9. 그리운 저 강남 건너가려면/ 제비떼 뭉치듯 서로 뭉치세/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강남을 어서 가세
가사를 곱씹어보니 노래 속에 담긴 마음이 보통 절절한 게 아니다. 내게는 상처 입고 쫓겨난 사람들이 본향을 그리며 서로 독려하는 절규로 들렸다. 이 발목 상한지 오램이고, 상해도 발이니 가면 간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진심을 담아 부르는 우리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훔치는 젊은이도 있고,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는 아이들도 있었다. 노래 부르는 내내 나는 자꾸만 목이 메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벅찬 감동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수없이 되풀이해서 들려주셨다. 발이 부러지고 날개가 찢어져도 견디고 이겨낸 제비들의 생생한 경험담이었다. 이제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 누누이 들었던 이야기마저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조금 늦게 태어난 덕분에 우리는 그분들보다 고생은 훨씬 덜했고,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세상과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이 존재하도록 밑거름이 되어주신 분들께 새삼 감사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우리 세대가 걸어온 길도 머잖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내년에도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다음에는 나도 어린이들과 함께 소리 높여 만세를 부르며 마을의 이야기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