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있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공산주의)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강요다. 심지어 제대로 고르지 못한다고 '무지'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사회주의가 정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회주의 체제가 모두 독재국가로 귀결된 현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정답이라고 논리를 전개한다면, 이 또한 난센스다. 자본주의가 정답이니, 국가가 시장을 규제하는 사회정책,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사회정책을 시행하지 말자고 말한다면, 이 또한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분법이 전개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남한과 북한이 대치된 상황, 6·25전쟁으로 남북한이 서로를 살해했던 경험,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으냐’라는 장난 섞인 물음들이 그 배경이다. 이런 사회적, 정신적 배경 속에서 우리는 이분법 이론에 너무 쉽게 빠져든다.
다른 건 몰라도, 국가체제를 두고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분법은, 단호히 말할 수 있는데, 틀렸다! 그런 이론적 강요에 굴복하거나, 현혹돼서는 안 된다.
첫째, 국가의 법체계, 경제체계를 자본주의, 사회주의 둘로만 구분하는 이분법은 극히 위험하다. 위 이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소유권 인정 여부, 시장거래 자유의 인정 여부를 기준으로 경제체제를 구분하고 있는데, 그 두 기준만을 놓고서도 체제는 둘이 아니라, 몇 가지로 나뉜다.
1. 소유권을 부인하는 체제다. 이 체제는 시장거래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2.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시장거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체제다. 이 체제는 시장거래를 제한하려는 모든 형태의 사회정책을 무조건 나쁘다고 평가한다. 근대국가가 추구했던 자유방임주의 체제가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쉽지만, 이런 자유 체제는 시장의 '나쁜' 독과점을 피할 수 없다. 당연히 현실은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로 귀결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체제라고 해서 시장거래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됐던 것도 아니다. 사기, 폭력거래는 금지되었다(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어떤 자유시장 체제이든 일정한 형태의 규제는 피할 수 없다는 점, 그러므로 시장규제는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3. 소유권을 인정하면서 시장거래 중 "나쁜 독과점"거래는 규제하는 체제다. 이 체제에서는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국토계획법, 약관규제법 등 '나쁜 독과점'을 금지하기 위한 시장거래 규제 정책이 시행되고, 또한 시장의 독과점으로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건강보험, 교육정책, 주택정책 등 사회적 약자 지원의 사회정책이 시행되는 체제다.
이처럼 소유권과 시장거래라는 두 요소를 기준으로 경우의 수를 논리 전개해 보기만 해도,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이분법 이론이 부당함을 알 수 있다.
둘째, 논리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이분법 이론은 비현실적이다. 오늘날 일부 국민(자본가들)이 아니라, 대체로 모든 국민이 잘 산다고 평가되는 국가들, 예를 들어, 독일,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등의 국가체제를 살펴보면, 이들 국가는 모두 소유권을 인정하지만, 시장을 규제하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사회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국가가 아니다. 이들 국가는 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면서, 사회정책을 펼치는 중용의 국가이고, 중도의 국가다. 이들 국가의 예산이 전체 GDP의 30~40%가 된다는 것은, 이들 국가가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무간섭'으로 남아있지 않음을 잘 말하고 있은 것 아닌가? 국가가 GDP의 30~40%나 되는 돈을 어디에다 쓰겠는가?
셋째, 세계 역사를 구분할 때 근현대로 대충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가치 있는 기준이다. 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할 때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의 근본적 전환을 주목하듯이, 근대와 현대를 구분할 때도 그 핵심적 변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 근대 자유시장 체제가 현대에 들어오면서 단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만 경험한 건 아니었다. 사회주의 체제는 근대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하나'의 방법론이었을 뿐이었다(필자는 '잘못된 방법론'이었다고 평가한다).
그 외에도 소위 수정자본주의 체제가 있었다.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근대혁명, 즉 영국의 1689년 명예혁명, 프랑스의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마치고 들어선 국민국가에서 선거권, 피선거권이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에 인정되었을까? 깜짝 놀라겠지만, 단지 0.5%~1%이었다(우리나라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재산을 가진 자본가, 지주들에게만 인정됐었다. 근대국가는 국민 전체를 위한 국가가 아니었다. 자본가들을 위한, 자본가들에 의한, 자본가들의 국가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국가체제가 자유방임주의 체제, 자유시장 체제, 야경국가 체제이었다. 이런 체제가 빈익빈 부익부 사회 양극화가 초래할 수밖에 없는 체제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는 국가체제는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들이 모두 함께 존중받는 체제,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는 국가체제다.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헌법 전문)’하는 체제다.
우리 헌법이 바라는 체제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이분법을 들이댄 뒤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일까? 근대 이후 인류가 겪은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변화에 대해서 그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인류의 다양한 시도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문제는 아닌가?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 이성의 인식이 시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하게 대화하고 토론할 뿐이다. 이분법을 전제로 확정한 뒤, 다른 의견, 다른 생각을 '무지'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단순히 이분법 이론을 들이대는 것은 어리석은 패거리 정치인들이 자기 세력을 모으기 위해서 중우정치, 붕당정치를 시도할 때나 써먹는 '나쁜 수단'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