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면서 태극기와 애국가를 자주 접하니 오래전에 감동했던 성조기와 미국 국가에 얽힌 이야기가 떠올랐다. 1984년 미국 국방대학원에 유학 갔을 때 외국학생처의 추천으로 미국 국기(성조기, The Star Spangled Banner ; 별들이 빛나는 깃발)의 탄생지라는 맥헨리 요새(Fort McHenry)를 가족과 같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포트 맥헨리는 워싱턴DC에 인접한 매릴랜드(MD)주의 주도인 볼티모어(Baltimore)시 해변가 입구에 있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먼저 요새(Fort) 소개영화를 보게 되었다. 미국의 2차 독립전쟁시기인 1814년 9월 13일 영국해군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맥헨리 요새를 파괴하기 위해 밤새 포격을 하였다. 마침 포로협상차 영국 함선에 탑승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프란시스 스콧 리(Francis Scott Lee, 1779~1843) 변호사는 새벽이 밝아오자 맥헨리 요새에 성조기가 변함없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맥헨리 요새의 방어(Defense of Fort McHenry)’라는 시(詩)를 써내려갔다. 이 시가 볼티모어 신문에 발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영국의 작곡가 존 스태포드 스미스(John Stafford Smith)의 ‘축배의 노래’에서 곡을 인용하여 작사·작곡이 완성되었고, 이후 군대에서 불리게 되었다가 1931년 후버대통령의 요청으로 공식국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방문자센터에서 성조기가 끝내 휘날리도록 분전한 요새장병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재연한 소개영화가 끝나자 옆 벽면을 가리고 있던 커튼이 활짝 열리면서 대형 국기게양대에 성조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시야에 확 들어와 순간 감동치(感動値)가 최고조에 달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국가는 5절까지 있는데 노래가사가 매우 길고 곡조도 어려운 편이어서 미군들의 행사에서 통상 1절만 부른다. 1절의 가사를 소개하면 “오, 그대는 보이는가 / 새벽의 여명 속으로 / 황혼의 미광 속에서 /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환호하며 맞았던 / 치열한 전투 가운데 넓은 줄무늬와 밝은 별들이 / 저기 성벽 넘어 당당히 나부끼고 있는 것이? / 로켓의 붉은 섬광과 창공에서 작열하는 포탄은 / 밤새 우리의 깃발이 그곳을 지켰음을 증명할지니 / 자유의 땅(Land of the Free)이자 용기있는 자들의 고향(Home of the Brave)에서”이다.
미식 축구 결승전 중계를 보면 유명 가수가 나와 국가를 부를 때 특히 마지막 구절을 부를 때 전 관중이 환호하는 모습이 인상 깊고 부럽기까지 했다. 이런 가사 내용의 국가를 국민이 부를 때 요새를 지키고, 성조기가 휘날리게 했던 자유의 땅 미국의 용기있는 군인들을 찬양하고 애국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하니 미국이 세계 패권국이 된 것이 당연해 보인다. 미국 국가의 탄생배경과 그 가사내용을 알고 난 뒤 우리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직업군인으로서 솔직히 뭔가 2%가 모자란 듯 아쉬운 감정이 스며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외 다른 나라 국가는 어떤지 궁금증이 솟아났다. 먼저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 프랑스의 국가를 알아보았다.
프랑스 국가는 프랑스 혁명(1789년) 직후인 1792년 4월 독일 등 연합군이 프랑스를 침공하려 했을 때 알사스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 공병대위가 작사작곡한 행진곡이라고 한다. 마르세이유에서 올라온 의용군 대대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라 마르세예즈’라는 이름이 붙었고, 1795년 7월 14일 국가가 되었다.
가사내용을 소개하면 “일어나라 조국의 자녀들이여 / 영광의 날이 이르렀도다 / 우리에 맞서 저 폭군의 / 피묻은 깃발이 펄럭이도다 /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 고함치는 사나운 적들의 함성이 / 적들이 네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다 / 내 아들아 여인들의 목을 베기위해! (후렴)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 대열을 정비하라 / 앞으로! 앞으로! / 적들의 더러운 피가 /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게 하라”이다.
이처럼 프랑스 국가는 미국 국가보다 더 군사적이고 공격적이다. 프랑스는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국가의 가사는 매우 살벌할 정도다. 이 프랑스 군가는 그 내용도 논란이 있어 국가로써 중단되었다가 1879년에 다시 국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국가가 있어서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했었고, 드골 장군이 나왔으며 많은 식민지를 두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겼던 인접국 중국의 국가도 알아보았다. 중국의 국가도 군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1949년 건국과 동시에 국가로 지정하였다. ‘의용행진곡’은 1932년 텐한(田漢)이 작사하고, 데얼(隔耳)이 작곡한 것으로 내용이 다음과 같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길 원치않는 사람들이여! / 우리의 혈육으로 새로운 장성(長城)을 쌓아가자 / 지금 중화민족은 가장 위급한 상태 / 억압받는 사람은 최후의 함성을 외친다 /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 우리 모두 하나같은 마음으로 / 적의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하자! / 적의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하자! / 전진! 전진! 전진!”으로 작사되어있다.
이 노래를 살펴볼 때 중공군이 국부군과 내전을 치르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한 초기에 생겨난 국가이다. 이 군가는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중국의 호전성과 선동성이 물씬 풍겨온다. 중국의 시진핑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및 1, 2도련선(島鏈線)전략은 물론 우리나라와 관련하여 동북공정, 사드배치시 경제보복, 전랑(戰狼)외교, 방공식별구역침범 등이 이 노래에 또 오버랩되면서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제 우리나라 애국가(愛國歌)를 살펴보자. 우리 애국가 가사는 일본제국의 한반도 침략이 시작된 이후 1907년경에 작성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나라의 영속(永續)을 염원하는 내용으로서 국민을 강렬하게 일어서게하는 감성(感性)이 부족한 것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애국가 가사는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이 있고, 해방후 애국가를 바꾸고자 했으나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주장으로 애국가로 채택이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애국가 가사를 자세히 음미해보니 통상 부르던 1절보다 4절의 가사에서 비교적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내용이 있어 부를 때마다 필자를 감동케하고 있다.
“이 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후렴)”로써 2절의 키워드인 ‘굳건한 기상(氣像)’과 3절의 키워드인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모두 담고 그 위에 ‘충성심과 애국심’을 더 하였으니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민족정신으로 하고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다 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애국가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내고자 한 것이 아닌가? 애국가는 국민들이 부르면서 나라에 대한 사랑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국가는 국민과 강한 일체성으로 국제행사에서 연주가 될 때 감격에 겨워 노래를 부르면 울기도 하고,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존재감을 대표하는 감동의 노래이다.
필자가 몸담고있는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의례 시 애국가 4절만 부르던가 아니면 1절과 4절을 부르고 있는데 모든 회원들이 좋아한다. 국가적 행사이든, 시민단체 집회이든, 또는 군대나 학교든가 애국가를 부르는 목적이 국민의 마음에서 애국심이 우러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1절과 4절’ 또는 차라리 ‘4절만’을 제창하도록 조언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