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육사교정에 있는 홍범도,김좌진,이범석,이회영,지청천 등 5명의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옮긴다는 소식이다.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당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다. 대신 한미동맹 공원을 만들고 백선엽과 맥아더 동상 등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발했다. 소련 공산당원인 홍범도 장군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이 건국훈장을 줬고 우리 해군에 이미 홍범도함이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윤석열 정부가 철 지난 이념논쟁을 지피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따져보면 그 출발은 문재인 정부의 성급한 홍범도 유해 모시기 기획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좌우를 불문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예우했다. 국민토론을 거치거나 여론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특히 홍범도 유해송환이 문제였다. 당시에도 부적절한 사업이란 지적이 있었다. 홍범도가 소련공산당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군이 궤멸당한 자유시 참변사건에 책임이 있다. 1921년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인근에 독립군들이 모였다. 상해임시정부 주도로 독립군을 통합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내전 중이던 레닌의 볼셰비키가 상해임시정부측 대한의용군총사령부를 강제 진압했다. 통합된 한국 독립군을 러시아혁명 내전에 활용하고자 했는데, 무장해제하고 자유시로 들어오라는 볼셰비키요구를 대한의용군총사령부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적군 29연대와 코사크 기병 600여명, 그리고 독립군 통합 주도권 다툼 벌이던 고려혁명군 등이 대한의용군을 무차별 공격했다. 1시간여 만에 전사자 272명, 익사자 31명, 행방불명 250여명, 포로 917명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홍범도는 독립군 통합논의 초기에 대한의용군총사령부를 지지했다가 태도를 바꿔 고려혁명군 주도권을 지지했다. 이어 대한의용군이 살육당한 참변을, 최소한 방조했고, 이어진 재판에 위원으로 참여해 진압당한 독립군들을 유죄 판결했다. 당시 자유시 주변에 모인 독립군은 2000명이 넘었는데 그중에 절반을 잃어버렸다. 참변 이후 항일 무장독립군은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 곳곳에서 사살 혹은 체포당하거나 강제노역에 끌려갔다. 홍범도는 이듬해인 1922년 2월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 주최로 열린 극동제민족대회가 끝난 뒤 레닌과 단독면담했다. 레닌은 홍범도에게 '혁명정권에 협조해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면서 금화 100루블, 군복 한 벌, 홍범도의 이름이 새겨진 모젤 권총을 하사했다.
자유시참변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졌고,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무장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홍범도,김좌진의 봉오동과 청산리 승전이 있었다. 2천명 넘게 불어난 독립군이 자유시참변으로 절반이 사라졌다. 주도권을 잡은 고려혁명군은 러시아내전에서 레닌의 볼셰비키군에 통합되었다가 스탈린의 조선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로 소멸된다.
해방 당시 임시정부 광복군은 564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 중 일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신인 OSS요원으로 활동하다 해방을 맞았다. 즉 광복군이 미군 하급부대격으로 해방을 맞았고, 임시정부는 개인자격으로 귀국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자유시참변으로 독립군이 궤멸되면서 정식 군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홍범도에게 자유시참변책임을 묻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 그런 나라에 임시정부측 독립군인 대한의용군총사령부가 궤멸된 자유시참변에 책임있는 홍범도를 기리는 것은 어색하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이 이념체제를 달리하면서 대립하고 있다. 소련 공산당원인 홍범도를 영웅으로 기리는 것은 시기상조다. 말하자면 통일전 신라가 대야성 전투 등에서 자신들을 도륙한 백제 장군을 통일영웅으로 기리는 것과 같은 부자연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30여 년의 탈냉전이 끝나고 신냉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공산세력을 퇴치할 군 간부 육성하는 육사교정에 홍범도 흉상이 있다는 것도 어색한 일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성급하고도 도발적인 홍범도 유해송환이 문제의 발단이라 할 수 있다. 국민여론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인 역사인식이 분란의 씨앗이다.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 핵위협, 중국의 공개적인 대만침공 운운으로 우리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는 노무현 정부 안보관과 같이 대륙세력 북·중·러에 대응한 한·미·일 해양세력 협력이 우리 생존을 보장해준다. 따라서 좌우를 따지지 않는 독립영웅 모시기는 당장의 안보위기 앞에서는 한가한 발상일 수 있다. 남북통일 후에나 논의해볼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역사 인식이 시대상황에 걸맞지 않게 인위적으로 집행되었던 과거가 지금의 국론분열을 만들고 있다. 국방부가 이들 흉상을 완전 철거가 아니라 독립기념관으로 옮기겠다는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