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약속한 ‘일주일에 한 끼 식사당번’

  • 기사입력 2023.09.15 22:10
  • 최종수정 2023.09.15 22:13
  • 기자명 이석복 칼럼니스트
​▲​공파 이석복(수필가, 화랑대문인회 회장)​​
​▲​공파 이석복(수필가, 화랑대문인회 회장)​​

매주 일요일 아침 8시에 나는 맥도널드 햄버거 매장에 가서 ‘맥모닝세트’, 정확한 영어명칭은 ‘Sausage Egg McMuffin Set’를 사오고 있는지도 어언 10여 년이 됐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맥모닝세트’를 집식구들이 정말 맛있게 먹으면서 심지어 “이 한 끼로 일주일이 행복해진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감사해 하기도 한다. 일 주일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식사준비를 하지 않고 느긋하게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고 있는 미국 여자프로골프대회(LPGA) 등 TV를 보면서 내가 사온 ‘맥모닝세트’를 먹는 것에 대해 조그만 행복을 느끼는 표정이 역력해 보이는 아침이다.

  과거 우리 가족들은 미국생활을 몇 년 했던 경험들이 있어 미국 패스트푸드(fastfood)가 낯설지 않고, 미국 내 여행을 할 때 자주 이용하기도 했었기에 전혀 거북해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사실 나는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고, 우리 세대의 남자들은 나 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이 그랬다. 그래서 결혼해서도 밥짓는 것을 돕기는커녕 설거지마저도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결혼하자마자 진해에 있던 육군대학(육군에서 소령급 장교가 대부대 참모 및 지휘관이 되기 위한 1년간 교육과정)에 갔을 때 하루 세끼를 집(학생관사)에서 먹는데 갓 시집 온 아내가 하루 종일 식사준비에 매달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그 당시(1973년) 점심 정도는 학교에서 취식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마저도 학교 당국은 형편이 안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한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나중에 군에서 전역하면 일주일에 한 끼 정도는 내가 식사당번을 하겠다.”고 호기(豪氣)있게 약속해준 바가 있었다. 그리고나서 군복무 시절 나는 그 약속을 천연덕스럽게 잊고 살았다.

  군에서 지휘관 할 때 직접 조리를 하지 않았지만 부하들을 잘 먹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휘관의 당연한 책무 중 하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나라가 가난하였기에 군의 식사도 소위 1식 3찬으로 보리밥과 국 그리고 반찬 2가지였는데 그나마도 질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토요일에 제공되는 라면이 제일 인기 있는 메뉴였다. 그래서 각급 지휘관들은 부대주둔지의 공터에 밭을 일구어 들깨, 상추, 호박 등을 심어 정상적인 급식 외에 쌈 또는 장아찌를 별식으로 제공하여 부하장병들의 입맛을 돋우는데 도움을 주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한 번은 장병들의 소원수리(겪고있는 어려움을 무기명으로 적어 호소하는 제도)를 받았는데 부대 급식을 개인별 간(짠 정도) 또는 기호에 맞춰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식탁에 간장, 된장, 고춧가루 등을 상시 비치해주었는데 며칠 못 가서 식탁에 갖다 놓은 것들이 전부 소진되어 두어 번 더 해보다 결국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기도 했다. 

  장병들의 급식상태 향상을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지휘관이 예하부대 방문 시 가끔 병사들과 식사를 같이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대대장과 연대장 시절, 겨울에 먹을 김치를 준비하기 위해 김장을 할 때 간부들 가족들과 병사들의 어머님들을 초청해 병사들과 함께 정성스럽고 흥겹게 김장을 담궜던 기억은 아직도 흐뭇하게 떠오른다. 사단장 시절에는 예하 지휘관들의 급식에 대한 관심과 취사병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대대별 취사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36년 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내는 슬며시 ‘일주일에 한 번 식사당번 약속을 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아내는 잊지 않고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식사당번 얘기를 들었을 때 23년 전 결혼 직후 육군대학 다닐 때 했던 약속이 또렷이 떠올라 나도 사실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솔직히 아무런 준비가 안된터라 약속을 당장 이행하겠다고 할 형편이 아닌 것은 아내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엉겁결에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때가 되면 약속을 어김없이 실천하겠다고 큰소리치며 얼버무렸었다.

  그리고선 내심 진지하게 궁리를 했다. 밥 짓는 것은 전기밥솥이 있으니 별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밑반찬은 아내가 준비해둔 것을 이용하면 되는데 적어도 국이나 찌개와 요리 하나, 둘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생기지가 않았고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요리학원을 다녀야 하나? 어떤 요리를 배워야 하지? 혹시 배우지 않고도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법은 없을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직 결심을 하지 못하고 가끔 외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던 차에 대전에 있는 한국조폐공사의 감사로 발령을 받게 되어 약속은 일단 미뤄지게 되었다. 

  조폐공사 3년 임기 만료 후에도 이핑계 저핑계 대가며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스마트폰 앱에 소개된 식당에서 외식을 하거나 또는 주변에서 배달로 약속을 얼버무리며 작전상 지연전술(遲延戰術)을 폈다. 어느 눈 오던 날 배달로 시켜 먹은 맥도널드 ‘맥모닝세트’에 대하여 후한 평가를 하는 소리에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드디어 매주 일요일 아침을 내가 맥도널드 매장에서 사오는 ‘소시지 에그 먹핀 세트’가 일주일에 식사당번 약속을 이행하는 것으로 아내의 양해를 얻게 된 것이다. ‘맥모닝 세트’를 함께 먹으며  흡족해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것은 행복이다. 더욱이 평생 고민스럽던 식사당번과 설거지를 해결한 점도 만족스러웠다. 인생에서 행복은 큰 것이 아니라 조그만 배려에서 오는 것임이 확실하다. 우리 아이들은 어느 틈에 제법 요리를 할 줄 아니 우리 세대와는 다른 가정문화의 변천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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