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한국 정치

  • 기사입력 2023.10.04 22:36
  • 최종수정 2023.10.04 22:43
  • 기자명 황도수 객원논설위원
▲경실련 전 상임집행위원장 황도수 박사
▲경실련 전 상임집행위원장 황도수 박사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쟁점을 만든다. 국민의 관심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홍범도 흉상을 철거할 것인지, 대한민국 수립의 기준이 상해임시정부냐, 이승만 정부냐를 다툰다. 법무부장관이 정치인이냐고 말싸움한다. 야당 대표는 느닷없이 단식을 감행해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매스컴은 이들이 만든 쟁점을 두고 북치고, 장구 친다.

이들 정치인과 매스컴이 불붙이는 쟁점에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느냐다. 그러니 상대방 정치와 정치인들을 흠집 내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만든다. 때로는 가짜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일단 흠집을 내면,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때는 모두 지나간 일이라는 투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다음 정권 창출이고, 그것에 빌붙어서 한자리하는 것뿐이다. 이들은 그 목적 달성에 필요한 쟁점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전문가’들이다.

이런 정치 전문가들의 행태를 보면서, 국민은 의아해한다. 원래 정치가 이런 건가 의문을 품는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느낌, 그 생각, 그 의문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와 지성인은 다르다. 전문가는 누군가 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광화문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경찰은 전문가를 부른다. 심리학 전문가에게 시위자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묻는 식이다. 

반면에, 진정한 지성인은 전문가와는 다른 차원이다. 문제를 푸는 수준을 넘어선다. 진정한 지성인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쟁점으로 제기하는 능력이다. 국민이 당면한 문제로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나라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제기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풀어야 할지를 설정하는 것은,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문제가 잘못 제기되면, 귀중한 시간과 자원을 엉뚱한 데 허비하게 된다. 미중전쟁이 일촉즉발의 사태로 진전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 국민이 고민해야 쟁점은 홍범도, 건국일, 친일 반일, 장관의 정치행태, 이념 논쟁이 아니다. 그 논쟁이 해결된다고 해서 우리 국민의 앞길이 당장 밝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쟁점은 헌법이 이미 일찌감치 해결한 것들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국민이 정치인과 매스컴의 관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들이 지성인으로 행동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들은 우리 국민에게 제대로 된 쟁점을 제기하고 있는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쟁점을 국민에게 제대로 제시하고 있는가? 국제적으로 현재 진행되는 미중전쟁 속에서 대한국민이 살아갈 방법을 쟁점으로 제기하고 토론하고 있는가? 민생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현재 가장 중요한 민생 문제가 무엇인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어떤 문제가 왜 가장 시급한지를 논증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 복안은 가지고 있는가?

정치의 본질은 정치인들의 자기 욕심 채우기가 아니다. 국민의 정신세계를 헷갈리게 해서 표를 얻는 기술 구사도 아니다. 5천만 국민 전체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제기하고, 그것에 관한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다. 쟁점 설정이 잘못되면 배는 산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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