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정신차려"...정중부 수염 불태우기?

  • 기사입력 2023.10.26 21:00
  • 기자명 김석수 칼럼니스트/직접민주연구원장
▲23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23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총장, 정신차려"

지난 10월 13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에게 내지른 말이다. 발단은 홍범도 흉상이전 건이었다. 안의원이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 설치가 (육사의) 대적관을 흐리게 했다고 보느냐’고 질문했고, 박총장은 “일정 부분 흐리게 한 요인”이라고 답했다. 이 실랑이 끝에 안 의원이 반말조로 내뱉은 호통이었다.  

육군 총장의 답변에는 사정이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친북정책을 펴면서 대적관을 흐리게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육사 ‘공통필수’ 과목이었던 6.25전쟁사와 군사전략, 북한 과목 등이 ‘전공필수’로 변경되었다. 공통필수 과정은 모든 생도가 수강해야 하나 전공필수 과정은 관련 전공자만 선택·수강한다. 윤석열 정부는 육사생도가 받는 교육과목이 축소돼 정신전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며 다시 3개 교과목을 공통필수로 환원했다.  

기시감일까? 안 의원이 호통치는 장면에서 고려 무신의 난을 촉발시킨 ‘정중부의 수염’이 생각난다. 왕의 측근인 내시, 다방, 견룡 등이 춤추며 놀았는데,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문신이 무신을 천대한 사건으로 이 일이 발단이 되어 무신의 난이 일어났다. 사극에선 연대가 생략되어 이 사건 직후에 정중부가 무신의 난을 일으킨 것으로 착각케 한다. 그러나 수염사건은 정중부가 초급장교인 견룡(국왕친위부대) 대정 때 일어났고, 무신의 난은 그로부터 26년 후에 일어난다. 어쨌든 이런 무신 홀대가 쌓여 고려는 무신의 난으로 100년간의 무인정권시대로 들어간다.  

대한민국은 국민이 나라주인이고 군인은 공복, 즉 국민의 종이다. 그렇다고 진짜 종으로 부리라는 말은 아니다. 기능이 그렇다는 뜻이다. 국민을 위한 공복이기에 군인은 존경받아야 한다.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킬까봐 무서워 하자는 말이 아니다. 때가 그런 때가 아니란 점은 엘리트출신 군인들도 잘 안다. 국민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을 하기 때문에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민주당 등에서 군인과 검사를 모욕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나라주인인 국민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다. 군인은 나라공동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검사는 나라질서를 유지하는 첨병이다. 그들의 일은 국민 행복과 안위와 직결된다. 다른 공직자와 달리 군인과 검사를 모욕하고 사기를 꺽는 것은 국민 행복과 안위를 위협하는 일이다. 일반공무원과 다른 특수직 공직자들이다. 그래서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들도 공히 군을 존중한다. 집단주의 사회주의 나라들은 투사보다 더 상위에 전사를 둔다. 그만큼 명예를 인정한다. 북한은 군을 앞세우는 선군정치를 내세우기도 했다. 자유주의 의회민주국가 미국은 의회에 국방위원회라는 상임위원회 말고도 재향군인위원회라는 다른 상임위원회를 두고 있다. 군이 나라의 근간이기 때문에 극도로 예우한다.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뽑기도 했다.   

군인이나 검사의 사기는 국민안위와 직결된다. 정치인들이 이들을 함부로 대하면 이들이 나라를 지켜야할 동기가 꺽인다. 최근 5년간 사관학교 중퇴자들이 545명이라고 한다. 군인 소명의식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존경과 경제적 댓가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종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안위를 지키는 종인 군인이나 검사를 홀대하는 것은 곧 국민을 홀대하는 것과 같다.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보다 권한이 크지만, 그 권한 크기가 인격의 상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출직이라고 해서 임명직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것은 주제를 넘은 짓이다. 그런 권한을 국민이 선출직에게 준 적이 없다. 문신이 무신을 하대하는 것은 국민이 이들 엘리트를 양립시킨 명령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종이다. 그 종들은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국민이 나라지키는 군인과 도둑놈 잡으라는 검사들이란 특수한 종을 사사로운 종처럼 하대해선 안된다. 국회의원도 다른 공직자를 존중하는 공직자윤리로 일해야 한다. 그러므로 안규백 의원을 국회윤리위에 회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그나마 국회권위를 세우는 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