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 나라 망하게 하는 민주주의

  • 기사입력 2023.11.08 15:46
  • 기자명 김석수 칼럼니스트
김석수 직접민주주의 원장 
김석수 직접민주주의 원장 

고대 민주주의는 아테네에서 시작한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은 군대를 다녀와야 했고 세금도 내야 했다. 이들 시민은 사실 전체 인구의 10~20%였다. 다수인 노예, 해방노예, 어린이, 여성, 외국인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국방과 납세의무를 진 이들만이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이들이 모인 민회는 선출과 추첨으로 구성된다. 20세 이상 성인 남성으로서 2년 간 군사 복무를 마친 자들만 참여한다. 누구나 민회(에클레시아)에서 어떤 주제든 제안하고 찬반 토론을 거쳐 다수결로 정책을 결정했다. 공무원을 임명했고, 법을 만들었으며 정치범죄 재판을 담당했다. 오늘의 의회와 행정부를 겸한 민주체제였다. 귀족이나 왕이 아니라 시민 뜻에 바탕한 민주체제였기에 외부 침략에 옹골차게 대응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런 아테네 민주주의는 기원전 146년에 망한다. 고대 제국으로 발전한 로마가 도시국가 수준의 아테네를 복속한 것이다. 

왜 민에 바탕해서 튼튼한 안보역량을 가졌다고 배운 아테네 민주주의가 망했을까. 간단하다. 내부 민주주의만 찬양하다가 망했다. 남들 커가는 데 혼자 멈춰 있었다. 수평적 민주주의만 있고, 수직적 위계질서가 없는 아테네는 로마처럼 나라 규모를 키우지 못했다. 같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해 여전히 도시국가에 머문 아테네를 집어삼킨 것이다. 격투기 선수와 어린아이 싸움의 끝과 같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대령 측이 해병대사령관이 유임된 이번 국방부 인사를 두고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의제설정 능력있는 언론이 이를 전하고 국민은 심란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생각난다. 채상병 죽음사건의 박정훈 대령 뉴스는 군의 인권과 민주화만 떠올린다.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굴복하지 않은 참군인 박정훈 현상’은 일부 해병대 전우들이 무리지어 지지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아네테 민주주의 함정에 빠진 면은 없는지 헤아려볼 일이다. 군의 수평적 민주화와 더불어 수직적 위계질서가 무너지면 나라안보가 약화된다. 부하가 상관을 들이받는 민주화만 찬양하면 군간부들의 지휘통솔 능력은 위축되고 약화된다. 그 끝은 당연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의 위축과 소심함이다. 주변국 환경과 관계없는 자기들만의 민주주의 과잉은 아테네처럼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한다. 학생인권조례만 일방통행한 학교현장은 학교가 무너지고 교사들 자살로 이어졌다. 무도한 학부모와 학생들이 왕이 되는 판을 만들었다. 매주 국회 앞에 수만명이 교사들이 모여 균형잃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바로 잡아달라는 피울음 행진으로 돌아왔다. 

박정훈 대령의 항명시비는 87년 체제가 낳은 시민의식의 결핍으로 볼수 있다. 권리와 의무에 따르는 민주시민 자세를 점검할 것을 말해준다. 채상병 죽음은 애초 해병대수사단 수사대상이 아니다. 작년에 군인죽음 사건은 군수사기관이 아니라 경찰이 하라는 군사법원법 개정이 있었다.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수사 협조차원에서 간단한 조사를 할수는 있으나, 그 조사도 굳이 따지자면 할 필요도 없다. 채상병 죽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어차피 경찰이 수사하게 되어 있 다. 경찰이 협조를 요청하면 그때 초동조사 내용을 이첩하면 된다. 사건 본질은 간단하다. 박 단장이 경찰에 이첩한 조사보고서가 ‘혐의를 적시’함으로써 수사성격을 띠고 있으니 이를 보류하라는 것이 상부의 명령이었고, 이 명령을 거부하고 경찰에 이첩해버린 것이 박 단장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다. 반면, 상급부대와 국방부, 심지어 대통령실이 수사를 조작하려 했다는 박 단장의 폭로는 개인 주장이다. 사실과 주장을 섞으면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박 단장 주장은 상부의 수사조작 의도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군사법원법을 바로 시행하려는 상부의 정당한 명령으로도 볼수 있다. 그 결과는 법원이 판단해줄 것이다. 

문제는 다른데 있다. 87년민주화 이후 군의 민주화 물결도 드셌다. 일선 부대장들은 장병들 인권과 민주화요구로 지휘통솔능력이 위축되고 무력화되는 것을 호소해왔다. 마치 학생인권조례만 일방적으로 강조되면서 교사들 교권이 무너지고 학교현장이 엉망이 되는 것과 같은 일이 국민이 못보는 군내부에서 일어었다. 군 사기저하는 군간부 양성기관인 사관학교에서 중도 자퇴 생도들이 1년에 100명이 넘는 사태로도 확인된다. 학교현장뿐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체계와 기강과 질서가 무너지는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박정훈 대령의 항명시비는 채상병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훈 단장의 폭로와 주장이란 ‘코끼리’만 보도됨으로써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 기초질서와 기강이 무너지는 다른 측면이 무시되고 있다. 허구헌날 누군가 잡아다 곤장을 쳤다는 이순신이 난중일기 기록은 부하와 백성위에 군림한 장수임을 스스로 밝힌 글이 아니다. 유사시 목숨 내놓고 명령에 따를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강확립과정이다. 권리와 의무에 따른 민주시민의식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방종으로 착각하는 풍조가 나라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면을 함께 봐야 한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자기들 민주주의만 숭배함으로써 로마의 융성이란 또 다른 진실에 눈감은 탓에 망했다. 일방통행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를 무너뜨렸다. 양쪽을 두루 보는 균형감 없는 민주화가 민주체제를 지키는 군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자유가 자유체제를 멸망시키는 자유마저 허용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관념모순은, 그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의 자유마저 앗아간다는 역사적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고 보도하는 언론풍조에 코끼리 이외의 모든 것을 잃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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