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으로 새긴 금혼(金婚)의 행복

  • 기사입력 2023.11.22 20:55
  • 기자명 이석복 칼럼니스트
▲이석복 수필가, 화랑대문인회 회장
▲이석복 수필가, 화랑대문인회 회장

2023년 계묘년은 나에게 퍽이나 의미있는 해이다. 먼저 결혼한 지 50주년이 되는 금혼(金婚)의 해이다. 그동안 두 아들을 낳아 건강하고 바르게 키웠다.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헌신적인 내조의 음덕으로 군(軍)생활 35년을 보람있게 마칠 수 있었다. 전역 후 27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비교적 건강을 유지하고 나라가 잘되기를 애쓰면서 무탈하게 살아왔으니 축복받은 인생인 셈이다.

특히 육사총동창회에서 금년도 개교 기념식 날(4월 28일)에 ‘자랑스러운 육사인상(賞)’을 받았으니 너무 영광스럽다. 그러나 이 상은 평생 절차탁마한 동료들, 그리고 그 동안 도와주셨고 따라주었던 분들의 덕분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니 보은(報恩)에 소홀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도 되새기는 해이다.

또 한 가지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만 80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환갑, 고희 지나 팔순이 되었으니 오래 산 편이지만 요새 기준으론 장수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하지만 넘기 힘든 보리고개가 있었던 세계 최빈국에서 중진국으로,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150여 개국 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에 오르기까지 모두 경험했으니 대단한 세대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5월 초 나는 물론 집사람에게도 의미있는 올해를 어떻게 자축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부부가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도 오래되었고 작은 아들이 캐나다로 이주한 지 3년여가 되었는데도 코로나 팬데믹(Corona Pandemic) 등으로 가보지 못해 마음에 걸려 하는 집사람이 떠올랐다. 미국은 군사유학으로 1년씩 2번이나 살아본 적이 있었고, 여러 차례 방문 및 여행도 했는데 지척인 캐나다는 큰 여동생 가족이 있는데도 어쩌다보니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겸사겸사해서 캐나다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답인 것 같았다. 소위 금혼(金婚)여행으로 말이다.

아내도 내 제의를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며칠 후 캐나다의 작은 아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왔을 때 넌지시 의향을 물었더니 뛸 듯이 기뻐하며 금년 여름에 오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바쁜 일정이 별로 없는 7월 초반에 약 보름 정도 여행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소식을 들은 큰아들은 동행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일이 꽤 커지기는 했지만 두 아들이 상의해서 여행 계획을 짜고 수속을 밟으니 우리는 지침만 주는 정도여서 아주 편하고 의미가 배가되는 여행이 되고 있었다.

결국 일정은 6월 30일 출발해서 7월 15일 귀국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인천 국제공항을 떠나 캐나다 서부 관문인 벤쿠버(Vancouver)공항에 도착하여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앨버타(Alberta)주의 캘거리(Calgary)로 가서 마중 나온 작은 아들과 큰 여동생 가족까지 상봉하는 기쁨을 나누었다. 숙소는 로키산맥의 세계적 유명 관광지인 밴프(Banff)국립공원 방향으로 한 시간 정도 가서 로키산맥이 한 눈에 들어오는 ‘에어 비엔비(Air B&B)’로 예약한 방 3개 달린 단독주택(Cabin)에 짐을 풀었다. 

저녁 10시경에 도착했는데 그때서야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니 위도 상 51도쯤 되어 서울의 37.5도보다 상당히 북쪽인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 중국 만주의 최북단,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의 스보보드니(자유시)와 비슷한 위도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캘거리와 밴프, 재스퍼(Jasper) 국립공원 간의 2천 내지 3천 9백 미터의 고지군으로 이어진 장대한 로키산맥을 거쳐 앨버타주의 수도로 작은 아들이 정착한 에드몬턴(Edmonton)시 등 캐나다 서부 지역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리고 캐나다 중부 제일의 도시인 토론토(Toronto), 미국과의 국경지대인 오대호와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 등을 거쳐 캐나다 동부,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퀘벡(Quebec)주의 몬트리올(Montreal)과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했던 퀘백시까지를 일주일에 완주하는 다소 무리한 여행이었다. 한 마디로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순간순간 승리하는 탐험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캐나다는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2번째로 큰 국토(998㎢, 남한의 100배)를 갖고 있다는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점차 동토(凍土)가 쓸모 있는 땅으로 변하고 있고 희귀 광물도 풍부하여 우리나라가 ‘6.25 전쟁 때 같이 싸워준 고마운 나라’ 정도가 아니라 미래 차원에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는 이제 겨우 4천만 명 정도인데 특히 인도인(190만 명)과 중국인(170만명)들의 이민이 압도적이다. 캐나다는 인종 차별이 심하지 않지만 인도인들(한 가정 당 평균 6명의 아이들을 출산)의 무감각한 공중도덕에 불편해하는 캐나다인들이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반면에 한국교포들은 24만 명 수준인데 존경받는 이민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력 신장이 끼친 영향도 적지않은 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독일에서 먼저 생산했지만 이제는 날씨 덕분에 캐나다가 주산지가 되고있는 아이스 와인(Ice Wine) 현장도 보았다.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땅을 내려다보니 온통 유채꽃의 노랑 물감으로 대지를 덮고 있는데 캐나다가 유채꽃기름인 카놀라유의 최대 산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로키산맥의 백두산보다 높은 고지군과 빙하 개천으로 둘러싸인 골프장에서 성공한 교포 기업가의 초대로 라운딩을 할 때에는 꼭 신선놀음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한편 수백 미터 얼음 두께로 이루어진 아사배스카(Athabasca) 빙하 위를 걷는데, 녹아서 흐르는 물에 빙하가 파여 실개천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체험했다.

여행 마무리 단계에서 들린 퀘벡시의 세인트 로렌스강 어귀에 있는 프롱트낙(Frontenac) 요새에서 한국 드라마 ‘도깨비’ 덕분에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는 즐거운 비명을 들으며 대단한 K-컬처의 힘도 실감했다. 큰아들 내외는 직장 관계로 아쉽지만 서부 지역관광을 마치고 뉴욕을 거쳐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끝까지 여행을 안내한 작은 아들도 캐나다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내년부터 2년간 온타리오(Ontario)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쉽지는 않겠지만 발전적인 모습을 보게 되어서 대견했다. 꿈같은 보름간의 캐나다 금혼여행은 인생의 마침표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노년의 출발 여행이 되었고 두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준 너무나 감사한 금혼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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