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수교 30년을 넘어선 한국과 중국, 양국은 지난 2015년 이후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논의되면서 외교 갈등으로 치달았고, 또 다른 악재인 팬데믹이 덮치면서 관계는 소원해져만 갔다. 현재는 양국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되어 가는 기미를 보이고는 있으나, 아직도 존재하는 한한령(限韓令) 등 외교상의 난제를 해결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국가 간 외교를 수행하는 방법으로는 국가 간의 공식적인 외교 채널로부터 지방 정부 간의 소통이나 민간 주도의 외교까지 다양한 통로가 있다. 물론 국가 간의 외교를 책임지는 1차적 책임은 국가 주도의 공식 외교이지만, 국가 간 외교가 교착되고 파행을 맞이할 때는 비공식 민간 외교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의 왕이(王毅) 중앙정치국 위원도 이 문제를 제기했다. 왕이 위원은 작년 7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열린 ‘한·중·일 3국 협력 국제포럼(IFTC)'에서 우리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에게 지금의 외교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간 교류가 절실함을 언급했다. 특히, 중국은 현재의 미중 관계가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민간 외교 대표단을 금년 2월, 12일간의 일정으로 미국에 보냈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SCMP 보도). 이러한 사례를 통해 중국도 공식 외교의 난제를 민간 외교에서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요즘의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래로 가장 원만하지 못한 시기로 볼 수 있다. 국가 간의 외교도 그렇지만 풀뿌리 외교인 민간 외교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적 교역량 감소는 물론이고 양국 국민의 상대국 언어 습득률 저하, 유학생의 급락, 관광객의 감소, 국민감정의 악화 등 실로 여러 분야의 지표가 양국 관계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 관계의 특수성에서부터 지리적 위치까지 서로 협력만 잘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가 냉랭한 이 시기에는 민간 외교에서 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양국의 민간 관계가 돈독해지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를 배척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더 나아가 정치적인 고차원의 문제도 풀어낼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또 민간 외교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협력 사업들은 차후 중앙 정부의 정책으로 반영되어 양국 관계 해결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는 경제 교류는 물론이고, 문화나 스포츠 교류, 그리고 소소한 인적, 물적 교류 등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양국이 이런 민간 교류를 통해서 민간 외교를 강화하다 보면 상호의 핵심 이익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은 절충되거나 양보도 가능해 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한중 관계 개선의 상책(上策)은 민간 외교를 활성화하여 서로 더 많이 만나고 교류하여 정치 및 외교 분야까지도 견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의 대표적인 민간 교류의 예로 동남아시아에 일고 있는 축구 열풍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축구 감독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우리 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韓流)를 견인하고 있다. 또 한 예로는 최근 한중 국민의 마음을 이어준 ‘판다 열풍’을 들 수 있다. 푸바오(福寶)라 불리는 이 판다는 한국에서 태어나 살다가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한중 국민 사이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때 한국 국민의 푸파오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대해서 중국 국민은 물론이고 중국 외교부에서조차 한국민에 감사를 표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민간 외교이자 소프트 파워 외교의 전형이다.
역사적으로도 한중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상호 교류의 대상이었다. 전쟁에서 상호 지원 사례는 물론이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민간 외교가 진행되어 양국 문화와 경제에 공헌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통일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은 스스로 당(唐)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합격하고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작성하여 ‘황소의 난(중국, 黃巢之乱)’을 평정하는 데 명성을 떨쳤다. 그리고 문화사적으로도 유불선(儒佛仙)의 문화로 고대 한·중·일의 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최치원의 노력에 힘입어 동아시아 삼국은 지금까지 문화적인 일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최치원 기념관을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시에 설립했고, 시진핑(习近平) 주석도 2013년 한국을 방문해서 최치원의 업적을 언급했다.
현대는 한류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 근대사는 중국과의 교류를 제외하고 논할 수 없다. 청·일 전쟁(중국, 甲午战争)을 기점으로 청 상인들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면서 신문물이 급속도로 전수되었다. 이때 지금까지도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 중화요리가 시작되었고,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전파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문명의 이기인 전기를 전기(중국, 电气)라 부르고, 차를 카(car)가 아닌 차(중국, 车)로, 학교를 스쿨(school)이 아닌 학교(중국, 学校)로 부른다. 나라의 명칭도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미국을 米國(일본식 표현)이 아닌 美国(중국식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기타 여러 나라의 명칭도 중국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양국의 민간 외교는 그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으로 이전의 왕성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의 민간 외교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민간 단체로 한중우호연합총회(총회장 우수근)가 조직되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단체는 중국 대사관(대사 邢海明)과 공조로 한중 양국 국민의 우호를 다지고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각 도별로 분회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또 다른 단체의 활동으로 한중 민간 외교의 지평이 확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민간 외교 차원의 한중 행사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개최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인 다문화가정 행사가 바로 그것인데, 이 행사는 코로나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열렸던 행사이다. 이 행사가 작년 6월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되었다. 이러한 노력이 하나둘 합해지면 민간 외교의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이웃은 가까이 있기에 부딪히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는 것이지만 결국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돕는 존재이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라는 한국의 속담이 그렇고, ‘친구 한 명이 늘어나면 길 하나가 생긴다(多一个朋友, 多一条路)’라는 중국의 속담이 그렇다. 두 속담 모두 다 이웃의 중요함을 언급하는 것으로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양국이 외교적으로 난제에 봉착한 이 시기에 양국 국민이 예전처럼 서로 교류하며 차곡차곡 우의를 쌓아 나간다면, 양국은 그 어떤 정치적 어려움도 극복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