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금지법’이 국회를 통과(2024.1.9) 한지도 한참 지난 요즘 정계와 언론계에선 ‘개타령’이 한창이다. 이른바 ‘검찰 애완견’ ‘정치권 사냥개’ 타령이 그것이다.
이 호칭(呼稱)은 거대 야당 대표와 언론 전문학자가 ‘언론계를 개판’으로 만든 ‘두 기자와 일부 언론’에 부여한 ‘명예로운 칭호(稱號)’다.
‘검찰 애완견 호칭’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현재 진행 중인 자신의 재판과 관련하여 자신에게 부정적인 내용만 기사화한다며 ‘대한민국의 기자들’에게 붙여준 ‘자랑스러운 칭호’다. 그리고 ‘특정 정치 세력의 사냥개 호칭’은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께서 ‘대선개입을 목적으로 여론 조작을 위한 허위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김만배·신학림’(구속)과 이들의 보도 내용을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일부 언론에 붙여준 ‘영광스러운 칭호’다.
필자도 학위논문을 비롯해 다수의 논문 발표, 수십 편의 칼럼 기고, 월간지 정기 기고 등 기자·언론인은 아니지만, 공인에 준하는 글쟁이의 한사람으로서 창피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우리의 짧은 근대국가와 민주주의 역사의 큰 그늘이겠지만 ‘권언유착(權言癒着)’의 불행한 역사는 근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이 명언에 담긴 속뜻은 ‘말과 글이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물론 총칼이 군중의 노도(怒濤)를 잠재우기도 하지만 깊은 감동을 주는 명연설이나 글이 군중의 마음을 움직여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총칼은 사람의 행위는 잠시 굴복시킬 수 있지만 의식까지는 지배할 수 없고, 말과 글은 의식의 지배를 통해 행동까지 유도하는 힘이 있다. 정치는 말과 글로써 대중의 마음을 빼앗고 행위를 지배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여론과 시류(時流)는 매스미디어(mass media)에 의해 좌우된다. 정치인의 말과 글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이 매스미디어가 광의 개념의 언론계에 의해 통제·운영되고 있다. 즉, 정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매스미디어를 언론계가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정계(권력)에서는 언론계를 향해 때론 추파로, 때론 탄압으로 밀착을 유도하고, 어떤 이는 이를 견디지 못하기도 하고, 또 권력 지향적 언론인은 오히려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정권교체기에는 ‘권언유착’의 매혹적 향기가 진동하고, 정권교체 후에는 ‘피바람’이 따랐다. 지금도 정치를 잘 못 배운 일부 정치배(政治輩)와 ‘정치 지향형 언론견(犬)’이 합세하여 우리 사회와 국가를, 궁극적으로 자신과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을 모두 지옥의 불길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정치 지향형 언론견(犬)’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생명처럼 여겨야 할 ‘언론윤리헌장’이라는 것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알고 있다면 언제 보았는가? 당신들을 위해 몇 가지 핵심 내용을 정리해 본다.
서문 : 언론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며, 시민의 신뢰는 언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1.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사실을 부정하고 믿고 싶은 바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진실 추구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4.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한다.
5.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오로지 시민과 공익의 관점에서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판단한다.
8.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고 언론의 힘을 사적으로 남용하지 않으며 이해 상충을 경계하고 예방한다.
당신들은 ‘가장 소중한 자산과 존재 이유’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언론 권력(힘)을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주고 그로 인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남용했다.
일부 언론일지는 모르지만 다양한 세상 민심이 붙여준 ‘기레기’ ‘애완견’ ‘사냥개’라는 ‘수치와 불명예의 훈장’은 언론인 스스로가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언론인 각자가 정론(正論)을 위해 수양(修養)을 게을리한 것이 첫 번째요, 시류(時流)를 쫓는 ‘언론견(犬)’들을 단호히 쳐내지 못한 것이 두 번째요, 그리고 권력에 심취해 스스로에 대한 근신(謹愼)과 경계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언론인 여러분들의 성지(聖地)인 ‘한국프레스센터’ 건물 앞에 춘추 호시절이나 혹서·혹한에도 변함없이 서 있는 ‘순백의 펜’ 앞에 가끔 서 보길 강권(强勸)한다. 그리고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글귀의 마침표를 찍으며 꼿꼿이 서 있는 ‘정의로운 펜’ 앞에서 ‘시민을 위해 존재하며, 시민의 신뢰를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정의로운 언론’이 되길 소망한다. 결자해지는 언론인 자신들의 몫이다. ‘꼿꼿이 선 정의의 펜’처럼 언론이 바로 서야 민심이 안정되고 천하가 태평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