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하지만 살맛나고 보람있는 세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적지않다. 결국 긍정적이고 열심히 살아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생이었다고 스스로 느끼도록 사는게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고해’의 의미는 ‘고통의 바다‘로서 인생이 고난과 시련이 많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이 표현은 불교에서 유래한 ’사바세계(娑婆世界)‘이지만 한국의 문학과 철학에서도 자주 인용하는 시어(詩語)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인생이 잘 안풀릴 때도 기죽지 않고 스스로 기를 돋우며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잘 사는 것 같다. 오죽하면 ‘쇠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이 있겠나?
찜통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열심히 잘 살고있는 옛부하들과 함께하는 단체 카톡방에다 ‘재미난 건배사’를 소개해 보라는 주문을 한 적이 있다. 기분이 꿀꿀할 때 친구들이나 친한 지인들과 한 잔하며 기분을 돋우는 건배사는 분위기를 개운하게 해줄 때도 있고 새로운 다짐도 하는 계기가 된다. 더구나 내 경우는 옛부하들과 즐거운 건배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나아지는 좀 특이한 성향이 있어서인지 불쑥 그런 주문을 했었나보다.
대대장 시절의 부하들과 가끔 만날 때(45년간 일 년에 서너 번)마다 우리의 기본 건배사는 군대에서 늘 하던 ‘위하여’가 아니라 건배사를 제의하는 사람이 “시그마(Ʃ ; 모든 것의 합)”하면 모두 다같이 “순간 승리”를 외치는 전통적 건배사가 있었다. 이런 건배사를 창안한 첫째 이유는 내가 포병대대장이었기 때문에 포병은 전포(화포와 탄약을 운용하는 주특기), 관측(표적을 보고 사격요청하는 주특기), 사격지휘(사격제원을 산출하는 주특기), 측지(표적과 포진지의 좌표를 산출하는 주특기), 수송(차량 또는 궤도차를 운전하는 주특기) 등의 전 요원들이 제대로 정확하게 제 역할을 다할 때만이 포탄이 표적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때그때 모든 순간을 제대로 할 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겨있었다. 포병대대장으로서는 부하들과 회식을 할 때도 이런 대대정신을 강조하고 다짐하는 모습을 볼 때 흐믓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덕분인지 우리 대대는 최우수대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정말 그때 나는 이런 부하들과 전투를 하면 적과 싸워 항상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으니 국가와 국민에게도 충성을 제대로 한 것 같다. 이런 점은 지금도 만나도 옛부하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이들과는 아직도 이런 건배사를 외치며 전우애를 되새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요새는 이 맛으로만 지낼 수 없어서인지 가끔 다른 맛이 나는 건배사들도 한다. 단톡방에 올려준 다양한 건배사를 소개해 본다.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갈매기(갈수록 매력적이고 기운차게), 이멤버(this member) 리멤버(remember), 이기자(이런 기회를 자주 갖자), 비행기(비전을 갖고 행동하면 기적을 만든다), 마돈나(마지막 온 사람이 돈내고 나와), 적반하장(적당한 반주는 하나님도 장려한다), 노발대발(노인이 발기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무한도전(무조건 도와주고, 한없이 도와주고, 도와달라기 전에 도와주고, 전화하기 전에 도와주자)외에도 다양한 건배사가 있을 것이다.
내가 외국인들과 술자리를 같이 한 경험이 좀 있다보니 외국인의 건배사를 아는대로 몇 가지 소개를 하고자한다. 미국인은 ‘히어, 히어(here, here)’ 또는 ‘치어스(Cheers)’, 일본은 ‘간빠이(乾杯)’, 중국은 ‘간베이(干杯)’, 프랑스는 ‘쌍떼(Sante, 건강)’, 이탈리아는 ‘살루테(Salute, 건강)’, 독일은 ‘프로스트(Prost, 건배)’, 핀란드는 ‘키피스(Kippis, 건배)’, 폴란드는 ‘나즈드로비에(nazdrowie, 건강)’, 러시아는 ‘나즈드로비예(nazdorovye, 건강)’ 등이 있다. 외국인의 건배사는 주로 ‘건강을 위해’, ‘잔을 비우자’ 등으로 비교적 단조로운 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위하여’,‘건배’ 등의 주건배사가 있지만 다양하고 창조적이기까지도한 건배사들이 애용돼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안에 가장 빈곤했던 나라가 중진국이 되었고, 이제는 선진국대열에 들어가는 나라가 되었나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다같이 “노발! 대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