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반도는 ‘新 3국 시대’인가?

  • 기사입력 2024.08.16 10:23
  • 기자명 유판덕 칼럼니스트
▲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수석부원장/대한민국예비역장교연합회 편집국장
▲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수석부원장/대한민국예비역장교연합회 편집국장

올 79주년 ‘광복절’은 기쁨과 희망의 날이 아닌 참담함과 비통함의 날이었다. 자유대한민국이 ‘심리적 쪼개짐에서 가시적 쪼개짐’으로 표출된 슬픈 날이기도 했다.

기념행사는 국민의 손으로 구성해준 합법 정부가 주관한 공식행사와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공공단체 일부 인원과 야당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한 행사로 나뉘어 벌어졌다. 비유컨대 한 조상을 두고 후손들이 두 패로 나뉘어 제사를 지낸 셈이다. 두 행사 참석자들이 올린 묵념의 대상들은 누구였을까? 나라의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국체 수호를 위해 ‘무한 희생’하신 순국선열들께서는 어느 쪽 묵념을 받으셨을까? 아마 이 기막힌 작태를 보시고 통탄의 피눈물을 또 흘리셨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 전 어느 조사에서 양분된 국민 의식의 충격적 실상을 보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사회통합실태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 2023-37)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33.0%가 함께 술 마실 수 없다,’ ‘58.2%가 연애 및 결혼할 수 없다,’ ‘71.4%가 함께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정도면 한국민·한민족이 아닌 타국민·타민족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반도는 물리적으로 분단된 ‘남북 두 국가’를 넘어 남쪽이 심리적으로 양분된 ‘新 3국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광복절 행사가 양분된 이유는 일상화된 ‘망국적인 좌·우 이념 갈등에 친일 문제의 혼합,’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문제’ 때문이다. 즉,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단체 소속의 인물을 정부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것과 8.15를 건국절 행사로, 또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빌미로 ‘심리적으로 양분된 남한의 두 세력’ 간 충돌 때문이다. ‘독립기념관장 임명 문제’는 본인의 부인 등 사실 여부 확인이 어려운 상태이므로, ‘건국일과 건국 대통령(國父) 추진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역사적 사실과 이론을 짚어 본다.

세계사적으로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 국권피탈)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시까지 35년간 한반도에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15일부터 한반도 통치 세력이 ‘일본제국(조선 총독)’에서 ‘38도선 이북은 소련 군정이, 그 이남은 미군정’으로 바뀐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군 주둔 시점(1945.8.10.)부터 북한 정권 수립(1948.9.9.)까지, 남쪽은 미군 주둔 시점(1945.9.9)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8.15.)까지 한반도에는 ‘국가의 3요소(영토, 국민, 주권)를 갖춘 완전한 독립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 수치스럽고 아픈 부분이지만 이 모두를 전제로 할 때 1948년 8월 15일에 ‘국가의 3요소’를 갖춘 완전한 독립 국가가 한반도에 건국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또 이러한 사실로 인해 자유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이승만이 그의 공과(功過)를 떠나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초대) 대통령이라는 것 역시 역사적 사실이 된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향후 또 발생할지도 모를 ‘양분된 광복절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책임 있는 단체와 필자를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질문과 자문을 해 본다. 

첫째, ‘광복회’ 일부 회원들에게 묻는다. 먼저 일제 35년간 빼앗긴 ‘조선과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정 국호)’을 되찾기 위한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의 무한 희생’을 숭상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1950년 6월 25일까지 약 3년간 좌·우를 비롯한 각종 정파가 난립해 ‘무주공산(無主空山)’과 같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지켜낸 세력들의 노력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6.25 동족상잔 속에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전몰자(戰歿者)들과 그들 가족의 무한 희생’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리고 1953년 7월 23일 정전협정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3,121회의 각종 도발(2022 국방백서)을 비롯한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희생자들과 그들 가족의 무한 희생’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지금도 전후방과 세계의 분쟁 지역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만들기 위해’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50여만 명의 국군과 수백만 예비역의 ‘무한 희생’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광복회’는 오늘날 ‘자유대한민국 탄생과 존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광복회’는 이처럼 다양한 세력들의 희생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자유대한민국 국체(國體)와 운영방식에 있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특별한 해석 권한과 대표성을 가진 유일한 단체가 아니다. 오히려 일제의 탄압 하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유지를 받들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는 숭고한 사명과 책임을 가장 많이 져야 할 단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행복한 삶이 보장된 강한 자유대한민국의 영속(永續)이 ‘선열들의 유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두 개의 광복절 행사 판에 숟가락을 걸쳐 놓고 ‘덩덕개’ 노릇까지 한 정치꾼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눈과 귀에는 물리적 두 동강도 모자라 심리적 분열까지 세 동강 난 우리 민족의 참담한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또 자유대한민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 시민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가짜와 음모로 핏대 세워 선동하고 싸움질만을 일삼는 정치꾼들을 볼 때면, 마치 선동질에 속아 갈라선 양편 국민의 충돌로 솟구치는 유혈을 즐기는 흡혈귀가 연상된다. 이제 그 ‘저주의 분열 굿판’을 멈추라.

셋째, 필자를 비롯한 국민께 자문한다. 앞서 국민 의식 조사에서 언급한 ‘정치 성향이 다른 반대쪽의 사람’은 우리 모두의 가족, 친인척, 친구, 동료, 더 나아가 목청 터쳐라 함께 외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들을 거의 ‘적(敵)’처럼 취급해야 하는가? 이 같은 현상이 수령과 함께 공생하는 핵심 노동당 간부들의 선전·선동에 우민화된 ‘북한 주민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지금과 같이 정치꾼들의 감언과 선동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은 정치적 다양성과 신념도 철학도 아니다. 왜 선량한 국민이 ‘거짓, 날조, 선동, 음모만을 일삼는 저급한 정치꾼들’의 농간에 춤을 춰야 하나? 이젠 우리가 맹목이 아닌 이성과 분별의 ‘진짜 여론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자신의 권력욕과 정파의 이익에만 함몰된 정치꾼들에게 ‘회초리 힘’의 무서움과 위대함을 보여 줘야 한다. 정치권이 벌이는 망국의 분열 굿판을 멈출 유일한 힘은 오직 ‘정직한 국민(이성과 분별력을 가진 국민)’에게만 있다.

서글픈 광복절 날 창공에 축 늘어진 태극기를 바라보며 힘을 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쳐 본다. 또 하느님이 이 나라를 보호하시길 두 손도 모아 본다. 이 땅에서 저급한 정치꾼들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정직한 민심의 물결이 노도처럼 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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