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에센시(市)에 촐페라인이라는 지역이 있다. 석탄이 풍부하여 경제와 공업의 중심지였으나, 20세기 후반 석탄산업이 쇠락하면서 1986년에 탄광이 문을 닫았다. 경제가 무너지고 실업자가 늘어났다.
이후 채탄시설과 공장을 허물고 새로 짓자는 얘기가 나왔으나, 주정부가 1990년대에 기존의 건물을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을 해서 박물관, 공연장, 디자인센터 등 문화시설로 바꾸었다. 이 건물들은 운영 당시 이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이란 평가를 받았고,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원래 건축적 완성도가 높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후 촐페라인은 성공적인 도시재생으로 “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였으며, 연간 15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레드닷디자인賞 시상식, 루르트리엔날레 등 세계적인 행사와 축제도 많이 열린다. 문화를 테마로 한 도시재생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촐페라인을 꿈꾸는 도시가 있다. 강원도 태백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장으로 유명해진 삼탄아트마인은 전시, 체험 공간이다. 철암탄광역사촌은 1980년대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철암역의 선탄 시설은 2002년 근대산업유산으로는 처음으로 등록문화재 21호가 되었다. 정부도 태백시를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 수백억원을 지원한다.
그동안 많은 건축가, 예술가, 지역 활동가들이 태백의 산업유산을 살려서 도시를 재생하기 위해 수많은 토론과 시도를 거듭했다. 그런데 도시가 재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기대학교 안창모 교수는 한국일보에 기고한 “태백 산업유산의 오늘과 도시재생의 미래”(2016. 7.31) 제하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이 태백을 루르와 다르게 만든 것일까? 석탄 산업이 쇠락한 자리를 역사와 문화로 되살리겠다는 의지는 같았는데. 현지의 오랜 친구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지역 재생을 표방했지만 지역 주민은 한 번 이상 찾지 않는다.’ 태백의 현실을 잘 표현해준 말이다. 주민이 없는 산업유산이 생명력을 갖고 외지인을 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외형상 유사한 조건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경제의 중요성을 놓쳤다. 문화가, 혹은 도시재생사업이 촐페라인을 재생시킨 게 아니다. 촐페라인이 위치한 배후지역의 경제력이 촐페라인의 문화, 그리고 도시를 재생시킨 것이다. 우리는 거꾸로 이해하고 있었다. 촐페라인이 위치한 에센시는 인구가 62만 5000명이고, 철강·화학·기계·섬유 등 공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다. 에센이 속해있는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인구가 1,800만 명으로, 독일의 16개 주 중 가장 많다. 그 유명한 라인강의 기적이 일어났던 곳이며, 지금도 독일의 가장 큰 80개의 도시들이 각종 산업으로 번창하고 있다. 경제와 인구가 촐페라인을 살렸다. "1,0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운운하는 것은 안쓰럽게 들린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다. 정(睛)은 눈동자란 뜻이다. 눈(眼)이 아니라, 점 하나로 표현되는 눈동자이다. 용(龍)의 그림에서 눈동자가 빠져도 알아볼 사람이 몇 안 된다. 나는 문화가 화룡점정이라 본다. 점(點)이다. 용 전체를 활기차고 멋지게 그려야 나중에 눈에 점 하나 찍는 게 의미가 있다. 도시재생 한답시고 예산을 풀면 당장은 도움이 되겠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눈먼 돈 서로 먼저 챙기느라 민심만 사나워진다. 문화로 경제를 살린다는 건 사기다. 경제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해야 한다. 도시재생 하려면 우선 최저임금제, 주52시간 근로제부터 폐지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