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이도종 목사님의 씁쓸한 유해 봉안비

"남로당에 가담해서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4.3평화공원'에 누워있고...반면에 공산당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군경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초라하게 유폐" 

  • 기사입력 2024.11.28 09:51
  • 기자명 한민호 칼럼니스트/공자학원실체알리기운동본부대표
▲제주 대정교회 입구
▲제주 대정교회 입구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 대정읍에 있는 대정교회를 방문했다. 그 교회는 제주도 최초의 목사 이도종 목사님이 설립했는데, 그분은 제주 4.3사태 당시인 1948년 6월 16일, 남로당 당원들에게 붙잡혀 심한 구타를 당한 후 "예수쟁이","미군정의 스파이"라는 말을 듣고 생매장되어 향년 5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교회 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목사 이도종 기념비>가 있고, 그 옆에 <유해 봉안비>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땅에서는 죽고, 하늘에서 부활하신 이도종 목사님, 자기 목숨을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으신 제주교회 첫 순교자. 생매장 당해 순교하셨던 목사님의 유해가 화장되어서 김도전 사모와 함께 여기 이곳에 안장되시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영광의 부활로 일어서리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유해 봉안비>는 목사님을 생매장한 게 남로당이란 사실을 감추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남로당을 용서했기 때문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4.3사태 발생 시 제주 인구가 28만이었고, 남로당원이 7만이었다. 넷 중 하나는 남로당이었다. 즉, 거의 모든 집안에 남로당원이 있었다는 얘기다. 아들 서넛 가운데 하나는 공무원, 하나는 경찰관, 하나는 남로당원인 경우도 있었다. 남로당원들은 주민들 사이에 숨어 가족의 보호를 받았다. 그래서 4.3반란 진압이 어려웠고, 그래서 잔인했던 것이다.

4.3사태는 6.25의 전초전이었고 제주도에서 진행된 6.25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대한민국이 공산당의 도발을 격퇴했지만, 제주도 사람들 다수는 스스로를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이들은 복권되었다. 보상도 받았다. 남로당에 가담해서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4.3평화공원'에 누워 도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반면에 공산당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군경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초라하게 유폐되었다. 

▲ 제주 대정교회내에 설치된 이도종 목사 유해 봉안비 
▲ 제주 대정교회내에 설치된 이도종 목사 유해 봉안비 

공산당에게 생매장 당해 순교하신 이도종 목사님도 당신이 설립한 교회에 유폐되셨다. 누가 어떻게 목사님을 생매장했는지는 밝히지 못하고 그저 '순교'하셨다고만 적은 <유해 봉안비>가 더욱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4.3평화공원에는 태극기가 휘날린다는 사실이다. 인공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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