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에선?

"수령(김정은)의 참모부인 노동당의 중·하층 조직이 반당, 반혁명, 반체제 현상에 오염...당 조직의 밑둥부터 썩어가고 있어" 

  • 기사입력 2025.02.01 17:41
  • 기자명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수석부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한 김정은은 지난 1월 27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0차 비서국 확대회의를 주관하고 반당(反黨), 반인민(反人民), 반제도(反制度)의 ‘특대사건’ 두 건을 공개 비판하며 “우리 당이 제일 경멸하는 당내 부패와 온갖 규율위반행위”들에 대한 《저격전》 《추격전》 《수색전》 《소탄전》을 강력히 전개할 것임을 천명했다.

첫 번째 사건은 남포시 온천군의 군당위원회 당간부 40여 명이 봉사 기관(유흥음식점)에서 음주접대를 받은 사건이다. 김정은은 이 사건의 성격을 ‘엄중한 당규율위반 및 당의 도덕·문화 문란죄, 당 규율건설 노선에 대한 공개적 부정’이라고 간주했다. 이른바 반당, 반혁명·반체제 사건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회의에서는 온천군당위원회 해산 및 가담자들을 엄정 처리했다.

두 번째 사건은 자강도 우시군의 군농업감찰기관원들이 권한과 법을 악용해 북한 주민들의 “권익을 난폭하게 침해한 사건”이다. 김정은은 이 사건을 “지방의 세도군(특권 세력), 관료배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당과 인민 사이의 성스러운 단결의 성새(‘당과 인민의 일심단결’)를 허무는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우리 제도와 우리 법권에 있어서 추호도 용서할 수 없는 특대형 범죄 사건”이라고 단정했다. 즉, 반체제·반국가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한 회의에서는 우시군농업감찰기관 해산 및 우시군당책임비서와 농업감찰기관 감찰원에 대한 엄정 처리안을 가결했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노동당 비서국의 역할과 참석대상들을 살펴보면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먼저 노동당 비서국은 총비서인 김정은의 비서 그룹으로서 당의 주요 이념과 인사, 조직, 재정, 외교 및 대남 관계 등 당의 업무를 총괄 집행하며, 산하에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간부부, 경공업부, 경제부, 군수공업부, 군정지도부, 규율조사부, 근로단체부, 농업부, 민방위부, 법무부, 재정경리부, 총무부 등 20여 개의 전문부서로 이뤄져 있다. 북한에서 수령이 ‘뇌’라면 노동당 비서국은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번 비서국 확대회의 참석대상인데, 김정은을 비롯해 “비서국 성원들(현재 7명의 비서)”이 참가했으며, 도·시·군당위원회와 연합기업소 당위원회 책임비서들, 성(내각)·중앙기관 당위원회 책임일군들, 당중앙위원회 부장·제1부부장들,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규율조사부 해당 일군들이 참석했다. 노동당의 뇌(총비서), 심장(비서들), 혈관 및 신경망(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규율조사부)을 망라한 지방의 중·고위급 간부들(“전당의 지도간부들”)까지 모두 참석(“방청”)한 것이다. 

두 사건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김정은은 새해 벽두부터 외부에 알려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가장 아픈 치부(恥部)를 스스로 공개했을까. 두 개의 ‘특대사건’ 공개 배경을 유추해 보면 지금 북한 내부에서 어떤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형식적 배경이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두 사건이 “우리 당의 창건 80돌을 맞게 되는 2025년 벽두에 당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 보다 주력해야 할 필요성을 현실적으로 재 각성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올해는 노동당 창립 80년이 되는 해이자 제8차 당대회 회기와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이다. 김정은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당대회 연설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총적방향은 경제발전의 중심고리에 역량을 집중하여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고 인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구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정은으로선 올해 안에 무조건 “인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제적인 변화와 혁신을 이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핵무력 고도화와 주민 생활 개선은 대척(對蹠)에 있는 것이므로 경제적인 성과물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두 개의 ‘특대사건’ 공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당료들의 기강 확립 및 성과를 독려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이면적인 것으로 김정은이 정말 숨기고 싶지만 숨기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심각한 문제로 인해 공개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노동신문은 두 사건을 “당규율위반행위, 반인민적 행위들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가장 선차적인 문제”이며, 가담자들을 “지도 간부로서의 초보적인 자격도 없는 썩어빠진 무리, 방자한 오합지졸의 무리”라고 밝혔다. 그리고 김정은 역시 이번 사건을 “이것은 우리 당 강화의 초석을 허물고 나라의 200분의 1을 차지하는 한 개 지역을 비당화, 비정치화, 비사회주의화의 함정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엄중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일군의 직급을 남용하여 인민들 이상의 특전을 챙기려 드는 특권계층이 형성될 수 있음을 직감케 하는 위험한 신호”라고 했다. 

그렇다! 그들이 자백한 것처럼 수령(김정은)의 참모부인 노동당의 중·하층 조직이 반당, 반혁명, 반체제 현상에 오염되어 당 조직의 밑둥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범위 역시 김정은이 말한 것처럼 1/200이 아니라 지금 북한 젊은 층에서부터 일고 있는 반·비사회주의 현상 열풍처럼 지방 당과 하층 당료들에 만연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이 두 사건을 자신의 세습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가장 선차적 문제” “엄중한 사건” “위험한 신호”로 직감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 내전 상태에 있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김씨 세습·전체주의 옹호세력과 이에 직간접적으로 반대하는 저항세력 간의 내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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