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변을 보는 아이와 ‘유분증’ 상담

  • 기사입력 2025.02.11 08:56
  • 기자명 양지원 사회복지학 박사
▲동우의 이상행동, 유분증의 원인을 살펴보니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정체성 유형에 속하는 증상으로 동우의 심리·행동수정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다. 필자 제공
▲동우의 이상행동, 유분증의 원인을 살펴보니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정체성 유형에 속하는 증상으로 동우의 심리·행동수정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다. 필자 제공

동우(가명, 6세 남) 고모가 다급하게 상담실을 방문했다. 고모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동생 가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생(40대 후반)은 지적장애, 언어장애가 있는데 몇 년 전 베트남 결혼정보업체 소개로 동우 엄마(30대 초반, 베트남 여성)를 만나 결혼했다. 몇 년 정도 시댁에서 살다가 동우엄마랑 시어머니 사이가 안 좋아져서 화성에 있는 집으로 동우네를 내보내게 되었다.

동생의 첫째 아들인 동우는 장손이라 본가에 두고 갓 태어난 둘째 아이만 데리고 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동우와 가족은 떨어져 살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 번 본가에 와서 동우를 잠깐 보고 가는 정도다.

동우 엄마는 전부터 동우를 싫어하는 것 같았고 동우가 또래에 비해 말을 잘 못한다고 바보라며 애가 옆에 오면 밀어내고 또 동우가 엄마 보고 싶다고 가끔 동우 큰아빠가 화성에 있는 동우네로 데리고 가면 몇 시간 못 되어 귀찮은 듯 빨리 동우를 데리고 가라고 한다고 했다.

자기 자식을 그렇게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것을 보면 이상하기도 하고 동우가 불쌍하다고 했다. 평소 동우를 예뻐하는 큰아빠가 동우를 자기 호적으로 올려 아들 삼고 싶다고 해서 동우네도 친정 부모님도 모두 괜찮을 것 같다고 하는데 고모의 생각은 좀 다르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동우가 나중에 커서 알면 속상할 것 같아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던 중 동우가 갑자기 변을 화장실에서 보지 않고 다른 곳에서 보거나 변기에 앉히면 화를 내면서 선 채로 보기를 두 달 넘게 하다 보니 걱정이 돼 동우와 가족이 상담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 방문하게 되었다.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정체성 유형에 주목

동우는 나이에 비해 키가 작고 말이 어눌했다. 동우의 감정탐색을 위해 동우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려보도록 했다. 동우의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감정표출에 가까웠다. 연필로 도화지를 반복해서 찍고 심하게 낙서를 했다. 도화지 한 장을 다시 건네자 똑같이 연필 찍기와 낙서만을 반복했다. 마치 답답한 마음을 표출이라도 한 듯 신나 보였다.

다음 주 동우엄마와의 상담을 진행했다. 동우엄마는 동우가 아빠를 닮아 머리가 나쁘고 무엇보다 동우가 자기 아빠를 닮은 것 같아 싫은 것이 많다고 했다. 동우 아빠는 자기보다 15살이 많고 말도 잘 못하고 화나면 자기를 때리는 폭력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이 동우에게 투사되는 것으로 보이었다.

동우는 엄마와 함께 상담실에 오는 것이 무척 좋은 듯했다. 엄마에게 안기고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에서 동우가 얼마나 엄마를 좋아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동우엄마에게 ‘동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동우 엄마는 ‘왜 사랑하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동우는 엄마가 생각한 것처럼 바보도 언어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장애가 있는 아빠,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엄마의 자녀이다 보니 또래보다 말이나 성장발달이 조금 늦을 수 있음을 설명했다.

두 달 전부터 생긴 서서 변을 보거나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 변을 보는 ‘유분증’과 같은 증상은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므로 상담을 통해 찾아보도록 했다. 이후 동우네와의 상담이 진행되었다.

동우 엄마는 이제껏 어디서도 말하지 못했던 한국 생활의 어려움과 시댁과 남편에 대한 두려움, 동우에 대한 진심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동우는 자신을 거부하고 밀어내던 엄마, 자기만을 본가에 남기고 떠난 가족에 대한 심각한 애정결핍과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우의 이상행동, 유분증의 원인을 살펴보니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비정체성 유형에 속하는 증상으로 동우의 심리·행동수정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동우 엄마는 상담을 받으며 차츰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받으며 동우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동우 엄마는 상담을 시작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시댁에 와 동우와 함께 자고 다음날 집으로 갔다. 이전에는 그날 바로 돌아갔었다.

또 시댁에 올 때는 동우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오고, 동우가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에 맞춰 밖에서 기다리다 동우 손을 잡고 집에 들어오고 동우가 화장실에 갈 때는 따라가 ’우리 동우 잘하고 있어. 할 수 있어‘라고 칭찬하며 변기에 앉아 변을 볼 수 있도록 다독였다. 상담 종결을 앞둔 어느 날 동우 엄마는 동우가 이제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변을 본다며 놀라워했다.

상담 중 동우는 도화지에 커다란 분홍색 하트를 그리고 ‘우리 엄마 좋아’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엄마를 와락 안았다. 동우 엄마도 동우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밝게 웃었다.

필자는 동우 엄마에게 당부했다. 호적을 옮기는 것은 동우 입장에서 생각해 결정해야 하며 무엇보다 동우가 엄마, 아빠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도록 엄마, 아빠의 마음을 평소 잘 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동우의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감정표출에 가까웠다. 연필로 도화지를 반복해서 찍고 심하게 낙서를 했다. 필자 제공
▲동우의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감정표출에 가까웠다. 연필로 도화지를 반복해서 찍고 심하게 낙서를 했다. 필자 제공

아이 말에 귀 기울이고 애정 표현과 칭찬은 필수

상담 종결 2주 후 동우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동우는 정상적으로 변을 잘 보고 있으며 동우 호적은 안 옮기기로 했고, 동우와 엄마가 다문화센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동우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한대서 오는 애정결핍과 가족과의 분리로 인한 불안함을 공격적인 모습과 이상행동(비정체성 유형의 유분증)으로 드러났던 것으로 보인다. 동우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엄마의 변화는 동우의 심리적·행동적 문제 개선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부모의 양육 방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되며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몸과 맘이 건강한 자녀의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 읽기가 중요하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경청하고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 표현, 칭찬은 필수임을 기억해야 한다.

▲양지원 경기대 겸임교수, 하음심리상담센터 소장
▲양지원 경기대 겸임교수, 하음심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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