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연극으로 한 우물만 팠다고나 할까.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것은 할 줄을 몰라 40여 년 전부터 지방에 작은 소극장을 차려놓고 연극만 수십여 년을 해왔다. 한 우물만 고집하다 보니 수없이 좌절하고 넘어진 적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무척 행복한 삶이었다.
다만, 오랜시간 내가 운영하는 소극장에서 원 없이 행복한 연극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는 소홀했던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든다. 힘들었던 소극장 운영이었지만,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다시 일어서듯이, 어느 날 나에게도 인생을 역전할 만한 기회가 찾아왔다.
30년 전인가. 한 남성이 우리 소극장을 대관해서 손인형극 공연을 하는데, 관람하러 온 어린이들의 반응이 상당한 것이었다. 처음 본 그 남자의 공연은 실로 대단했는데, 혼자서 여러 개의 인형을 바꾸어가며 다양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의 라이브 공연을 본 순간 나는 손인형극에 한 눈에 매료되었고 혼자 무대를 꽉 채우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날부터 혼자 손인형극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슨 용기였는지 주변에 있는 어린이, 유아 대상 기관에 손인형극을 알리는 홍보를 했고 감사하게도 다섯 곳에서 방문공연을 초청해 주었다.
내 무모한 도전에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인형극을 단시간에 연습해서 공연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터무니없는 실력임에도 어디에서 알량한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를 불러준 마음이 감사해서 최선을 다해 공연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공연하는 곳마다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어떤 곳에서는 돈 한 푼 받지 못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체면을 구긴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인형극을 시작했나, 시간 낭비만 한 것은 아닐까?’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던데..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거듭된 고민 끝에 내 인생에 ‘포기’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포기’는 ‘실패’가 아니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그래, 한 평생 연극만이 내 인생의 전부였는데, 인형극이라고 못 해낼 것이 없다. 그때부터 나는 손인형극이 단순 볼거리를 넘어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교육의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인형극의 틀을 허물고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인형극의 기조를 ‘소통’으로 잡고 첫 공연을 가던 날, 어찌나 떨렸는지 모르겠다, 또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웃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나를 휘감았다.
공연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결말이 무엇인지.
아이들은 자신이 공연에 참여하는 듯한 경험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기존 공연과는 다르게 함께 만들어가는 소통의 인형극은 큰 호응을 이끌었다. 물론 원장님들께도.
나의 새로운 도전과 열정이 아이들에게도 가닿은 것 같아 무척이나 행복했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순발력은 생각만큼 대단했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인형극은 기존 이야기와는 다른 반전을 이끌어 내곤 했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은 배우로서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어주었고 이제 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서 배운 열린 사고였고 인형극 통해서 만난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올해도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