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3년..."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한다"

"미국 놈 믿지말고 소련 놈 속지 말자"

  • 기사입력 2025.02.24 11:26
  • 기자명 김승동 대표기자
▲이승만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로 3년이 됐다. 이 전쟁은 이제  6.25 한국 전쟁 3년 1개월 2일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종전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6.25 전쟁 보다 더 긴 전쟁이 된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지원과 응원속에 국제 사회가 모두 놀랄 정도로 잘 싸워온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게 싸워온 우크라이나 전쟁의 의미가 미국 대통령직에 다사 돌아온 트럼프에 의해 통채로 부인.퇴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지만 의지하고 싶은 인근 유럽연합국가들도 미국의 관세와 방위비 압박에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 상황은 미국과 러시아의 주도로 종전 협상이 시작됐으나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패싱한 채 푸틴과 직거래를 하면서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운명은 트럼프와 푸틴의 브로맨스에 맞겨야 될 것 같다. 아니 국제사회의 투캅스가 더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 유엔이 마련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미국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미국은 오히려 뒤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부정하며 양국의 '분쟁'이라고 축소하는 독자 결의안을 냈다.

현실을 직감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의 안보 동맹인 나토 가입이 이뤄진다면 대통령직을 내려놓겠다며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지만 미국은 나토 가입 논의 자체가 러시아에 위협이 됐다며 이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나토의 이익을 위해 즉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의 현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재정 지원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요구해온 광물 협정의 타결이 임박해 보이는 것이다.

양국 간 경제협력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강화한다는 이 구상은 우크라이나도 원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5천억달러(약 720조원)라는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절실한 안보 보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며 맹비난했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협상을 계속하며 합의를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뉴욕타임스(NYT)가 확보해 23일 보도한 협정문 초안에는 우크라이나가 광물, 가스, 원유 등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항만과 다른 기반 시설에서 창출하는 수입의 절반을 미국에 넘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1일자로 작성한 이 초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자원 수입은 미국이 100% 지분을 갖게 되는 기금에 투입되며, 우크라이나는 기금액이 5천억달러(약 720조원)에 달할 때까지 계속 돈을 넣어야 한다.

미국은 그간의 전쟁 비용 지원과 안전 보장을 대가로 우크라이나 지하자원인 희토류 개발 지분도 요구하고 있다. 약탈적 협상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서도 양국은 광물 협정 타결에 근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전임 대통령인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이 결코 공짜일수 없겠지만 전란에 빠진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를 구해주면서 시장 장사꾼처럼 흥정하는 것은 국제경찰을 자처하는 우방 국가로서의 태도는 아닐 것 같다.

특히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그간 많은 국제적 지지를 끌어내면서 지금까지 어렵게 버텨온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호국의 영웅, 자유세계의 가치 수호자에서 한 순간에  '무능한 독재자'로 폄하되고 있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힘 없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과연 어떤 심정일까. 이 장면을 보면서 구한말 미.소.중.일에 둘러싸여 금광.은광 등 각종 개발권을 빼앗긴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약소국의 설움이 어떤 것인지.

특히 6.25 전쟁 전후 미국과의 협상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의 초석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 업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시대상황과 전쟁 발발 원인 등이 다른 두 전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UN, 특히 미군의 파병을 이끌었고 정전 협상과정에서 반공포로 석방 등의 결단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

당시 대한민국은 지금의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한 약소국이자 빈국이었지만 전쟁의 의미를 부정당하거나 외교적 패싱을 당하지도 않았다. 이때 쟁취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안보 체제의 기본구조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미국과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거져 얻은것이 아니라 미국의 반대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쟁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정을 기술하면, 6.25 전쟁이 발발 후 3년 정도 된 상황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경질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본토에서는 많은 미국 국민들이 시위를 했는데 무의미한 전쟁, 질질 끌지 말고 휴전협정 맺고 빨리 끝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 분위기 속에서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1953년 6월 17일 당시 미국 브릭스 대사와의 회동에서 휴전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해외에 간섭을 자제하는 고립주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제2의 필리핀이 될 거라며 상호방위조약을 거의 기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방위조약 등의 방어수단 없이 휴전이 이루어지면 언제든 다시 북한이 침략해올 것을 우려한 이승만은 6월 18일 약 25,000명의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미국 몰래 독단적으로 일으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 조치에 크게 놀란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약속 위반자'라고 비난했고 이승만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의안이 나와 비밀리에 '에버레디'라는 이 계획을 구체화하여 실행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을 주도한 이승만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전작권을 환수하고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또 그러면서 동시에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한다는 한반도 교두보론을 내세우며 상호방위조약에 비관적이었던 미국 정가를 설득해 결국 미국은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에 응할 것을 제시해 1953년 7월 휴전협상이 체결되었던 것이다.

이후 1953년 8월 3일 미국과의 협상을 시작했으나 이승만은 이러한 과정에서도 정치회담이 결렬될 경우 무력통일을 추진하겠다고 협박하며 압박을 이어나간 끝에 8월 8일 조약의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됐고,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델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조인했으며, 이후 삽입조항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가 심하여 시간을 끌다가 1년 후인 1954년 11월 18일에 정식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었던 것이다.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가(假)조인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가조인식에 서명하는 변영태 대한민국 외무장관(왼쪽)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가(假)조인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가조인식에 서명하는 변영태 대한민국 외무장관(왼쪽)과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이런 산고끝에 탄생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조약으로 이승만의 최대 업적들로 평가될 뿐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휴전 이후 전쟁을 다시 재개하지 않았다.한미상호방위 조약에 따른 미군의 자동 참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여러 국가와 맺은 동맹관계는 여러 형태이나 대표적으로 회원국의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하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있고  또 조약국 중 전쟁에는 자동 참여하는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는  그리 많지가 않다. 대한민국, 일본,필리핀,호주,뉴질랜드,브라질,아르헨티나, 콜롬비아가 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가 처한 형국을 보면서 미국이 탐내는 희토류도 곡물도 없으면서 '거지의 나라' 대한민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故 이승만 대통령님에 대해 다시 한번 경외와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해방과 6.25 전쟁 전후 항간에 떠돌던 "미국 놈 믿지말고 소련 놈 속지 말자"던 선현들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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