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를(가명, 16세 여) 만난 것은 여름방학이 막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지영이는 현재 잦은 결석으로 수업 출석일이 모자라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지영이의 상담이 진행되었다.
지영이의 아버지는 지난해 사기죄로 연류돼 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엄마는 유방암 수술 후 치료 중이었다. 큰오빠, 작은오빠가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빠듯하게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3년 전 부모님이 이혼한 후 지영이와 오빠들은 아빠와 살다 아빠의 교도소 수감 후 엄마와 지냈다. 지영이는 아빠가 교도소에 수감될 즈음 노는 애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며 가출을 하고 학교를 빠지면서 비행, 일탈행동을 보였다. 더욱이 작년 여름 외사촌에게 성폭력을 당할 위험을 경험하며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너무 힘들어요. 집도 엉망이고. 나도 엉망이고 모든 게 엉망이에요. 학교 오면 애들도 나를 이상하게 보고... 선생님, 도와주세요.”
고등학교도 가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가족 모두 너무 힘든 상황이라 뭐라고 말할 수도 없고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들이 지영이를 심리적으로 고립시키고 있었다.
“왜 이제야 말해? 얼마나 힘들었어?”…‘긍정대화법’ 의 시작
지영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 상담을 진행했다. 욕구를 탐색하고 핵심 신념, 감정 자각, 부정적 감정의 표출, 삶의 목표설정, 긍정적 자아상 확립의 과정을 통해 지영이의 변화를 유도했다.
지영이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족과의 소통을 권하자 엄마와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지영이의 마음과 생각, (혹시 준비가 되었다면) 작년 여름 위험스러웠던 외사촌과 관련한 경험까지도 말할 수 있기를 권했다. 서로가 상처 입지 않게 마음을 전하는 긍정대화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지영이의 말을 들은 엄마는 ’왜 이제야 말해? 얼마나 힘들었어?‘ 아빠, 엄마 일로 너가 많이 힘들꺼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까지 겪고 엄마 힘들까 봐 말도 못하고... 모든 게 너무 미안해’ 라며 지영이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지영이는 자기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우리 가족은 내편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영이는 이후에도 엄마와 지속적으로 대화했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오빠들에게도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지영이는 자기의 미래가 아직은 겁나고 걱정되지만 이제는 ‘해볼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며 ‘유니세프 기부, 홀트아동복지회 아기 돌보기, 부모님과 오빠에게 보답하기, 나와 같은 가난한 애들에게 용기의 메시지 강의하기, 꿈 이루기’를 구체적인 목표로 말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지영이의 예쁜 마음이 무척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내편이구나”
위태로운 상황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가족들이기에 힘든 마음 한번 표현할 수 없었던 지영이가 유일하게 마음 부칠 수 있었던 곳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서 공감대를 같이하는 위기 청소년들이었다.
지영이는 다행히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상담에 참여하며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상처를 말하고 희망하는 미래와 소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가난하고 힘든 환경이지만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삶의 소망을 발견한 지영이의 말과 행동에 너무나 큰 변화가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 복합적인 여러 문제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이 많다. 특히, 청소년 시기는 가족과 상호작용의 기회가 줄어들고 초등학교 때와는 다른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과 보살핌이 중요한 시기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전국청소년상담복지센터 및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6백21만3930건으로 이중 청소년들이 호소하는 주요 문제는 대인관계 1백48만8241건, 정신건강 1백32만7213건, 학업 진로 73만1780건, 컴퓨터 및 인터넷 과몰입 65만9913건, 일탈 및 비행 59만4046건, 가정문제 51만8360건 순으로 나타났다.
지영이는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권유로 상담자를 만났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상처뿐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이제는 ‘해 볼만하지 않을까?’ 라는 긍정적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엄마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가족은 내편’ 이라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청소년 전화 1388·청소년통합지원체계 등 활용 권장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다양한 문제로 꽃 같은 청소년기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거나(17.1%),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서(29.6%),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40.7%) 해결한다고 한다(통계청, 2024).
엄마,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고민을 해결하는 청소년들의 통계치가 높기는 하지만 혼자 고민하며 방법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청소년들도 꽤 높은 편이다. 대화할 마땅한 대상이 없다면 청소년을 위한 대표 상담 채널인 ‘청소년 전화 1388’을 권한다.
1388은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님, 보호자 등 모두 이용 가능하며, 전화 및 모바일, 사이버 매체를 통해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청소년들의 일상적인 고민부터 학업 중단,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학교폭력, 성폭력, 가출 등 긴급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이 개입해 상담과 함께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 또한 각 지역의 학교 및 청소년 관련 기관, 보건소, 경찰서 등 다양한 기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위기 청소년들을 발굴하고 보호, 지원하는 청소년 안전망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준비된 전문가 조력자들이 많다. 혹시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 부모님이 계시면 용기 내어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기를 당부한다.
경기대 겸임교수, 하음심리상담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