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모, 깊은 수심에 찬 진숙씨(가명, 여 48세)를 만났다. 진숙씨는 병원, 철학관, 상담소 등 어디로 가면 좋을지 고민하다 언니의 권유로 본 필자를 만나게 되었다. TV에서 그림으로 심리를 보는 것을 보았다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여 그림으로 자기의 심리를 볼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래 뭔지 모를 불안과 답답함으로 잠도 잘 못 자고 몸도 자주 아파 아픈 원인이나 고칠 방법 등을 알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상담소에서 진행하는 내용들을 간단히 설명하고 진숙씨의 요청에 따라 몇 가지 심리검사와 KHTP(동적 집나무사람)그림투사를 시작했다. KHTP 그림투사는 집나무사람 그림과 그 외 추가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내담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분석한다.
진숙씨는 한적한 숲속 집에서 가족들이 마당에 나와 함께 식사를 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을 그렸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다만 집에서 문으로 나가는 길이 다른 방향으로 잘못 그려진 것 같다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외 검사에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남자의 폭력성, 능력 있는 남자에 대한 로망, 미래 불안감, 자녀 관계의 어려움 등이 나타났다.
다양한 검사를 통해 실제 진숙씨의 삶이 그림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숙씨는 폭력성이 있는 남편과 9년 전 이혼했으며, 딸은 친정엄마가 키우는 중이었다. 실제 딸과 함께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편이다. 혼자 이런저런 일을 하며 힘들게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남편과 딸과 함께 잘 사는 것처럼 말하고 행복한 척, 돈 많은 척하며 실제 명품 옷이나 좋은 차를 탄다고 했다.
사실은 그림처럼 자기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실제 삶은 전혀 그렇지 않고 또 주변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하게 잘 사는 줄 알고 거짓 모습을 진짜로 알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고 답답하다고 했다.
“무엇이 달라지면 진숙씨의 삶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실까요?”
고민하던 진숙씨는 주변 사람들이 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를 원했다. 더 이상 거짓으로 꾸미지 않은 진짜 자기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랬다.
“용기내어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그동안 거짓말만 했던 나를 사람들이 받아줄까요? 나 같아도 힘들 것 같아요.”
지금 진숙씨에게는 누구보다 그의 말을 이해하고 변화에 확신을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진짜 나의 모습을 진실되게 전하려 노력한다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진숙씨를 이해하고 응원할 날이 올 것 이라고 생각해요.”
진숙씨의 그림투사에는 진숙씨가 바라는 삶의 모습(즐겁게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과 더 이상 거짓이 아닌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은 소망(통유리 창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쉼이 되어주고 싶은 나무 주변의 의자),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 길(울타리로 연결된 돌다리 길)에 대한 표현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었다.
진숙씨의 내적 소망, 당면한 문제, 착하고 예쁜 마음 등이 강점으로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음을 설명했다.
“선생님, 상담을 계기로 이제는 진짜 나로 살도록 노력해 볼께요. 저는 사실 봉사활동도 하면서 어려운 사람도 돕고 우리 딸과도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사실 답답해서 점이라도 볼까, 병원에 가서 약이라도 처방받을까 했는데 상담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또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가 되니 마음이 가볍고 기대감도 생겨요. 지금은 용기가 분명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움주셔서 감사해요.”
분석심리학자 칼융은 많은 사람들이 ‘페르소나(연극에서의 가면을 의미)’를 쓰고 진정한 자기가 아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가짜 자기를 진짜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살고 있지만 두꺼운 페르소나를 쓸수록 사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정신건강, 이유 모를 신체증상(두통이나 위염 등)등 다양한 형태로 힘듦을 호소한다.
자기에 대한 이해 없이 산다는 건 자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삶에 대한 정리가 안 돼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 가치 또한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융은 삶의 완성은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으로 진정한 내가 되는 것, 진정한 나를 실현해 가는 것이 인생의 주요 과업임을 강조했다.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진짜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현실과 타협하며 애써 만든 페르소나가 혹여 나와 가족, 주변을 도리어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솔직하고 진실한 진짜 나를 실현해 가기를 바란다. (경기대 겸임교수, 하음심리상담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