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인형극 지도사 민간자격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연세가 있으신 동요 작곡가 여성분이 내게 손인형극을 배우러 오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그 작곡가님은 열심히 배우며 꾸준히 노력한 끝에 실력도 나날이 향상되었다.
드디어 손인형극 지도사 1급 자격증을 받으시던 날, 작곡가님은 내게 인형극 주제곡으로 동요 노랫말(가사)을 부탁하셨다. 밤톨이 인형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극을 이끌어가는 손인형극이기에 아이들의 화법에 맞게 밤톨이 노랫말을 써 드렸다.
동요 작곡가님은 노랫말이 맘에 드셨는지 “모 방송에서 창작동요대회 노랫말 공모를 하니 밤토리에 얹힌 노랫말을 응모해 보라”고 권유하셨다. 평생 단 한 번도 동요 노랫말을 써본 적이 없는 내가 막상 기본도 안되어있는 노랫말을 제출하려니 그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작곡가님은 응모했냐며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차 연락을 주셨다.
동요야말로 절로 아이다워져야 하고 또 순수해야 하고, 세상을 맑은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노랫말이어야 하는데...
어디 그뿐이랴. 형식과 틀, 그리고 노랫말 마디마디에 담긴 꾸밈이 없는 진실성이 있어야 하는데 동요 노랫말은 전혀 써보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응모를 하나 싶어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작곡가님은 이런 내 속마음도 모른 채, 접수 마감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더욱 재촉하셨다.
“손인형극 주제곡 가사 하나를 그냥 편한 마음으로 써드렸을 뿐이고, 응모해봤자 떨어질 게 뻔한데 왜 자꾸 창피를 주시려고 하지?”
이런저런 푸념 속에 애초에 이 노랫말을 쓰게 동기를 잠시 떠올려 봤다. 작년 가을, 주말마다 부모를 따라 주말농장에 오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부모의 바쁜 일손에 비해 어린 소년은 산자락에 있는 밤나무 밑에서 평화롭게 밤송이를 줍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해맑게 웃으며 부모 곁으로 달려와서 입이 벌어진 가시 밤송이를 내밀었다.
“이건 아빠 밤! 이건 엄마 밤~! 이건 내 밤!”하며 깔깔 웃는 모습에 어린 소년의 부모도 내게 밤송이를 보여 주며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재밌게도 제대로 입 벌린 가시 밤송이 안에 알밤 세 개가 올망졸망 나란히 붙어 있었다.
보름달 닮은 커다란 아빠 밤! 그리고 밤과 밤사이 가운데에 반쪽 끼어있는, 반달을 닮은 엄마 밤! 끝에 살이 차오르려는 듯한 쭉정이 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시 밤송이 안에 알밤이 세 송이가 들어있는 것을 처음 본 건 아니지만 그 알밤 세 개가 곧 자신의 가족임을 표현한 어린아이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상상력에 우리 어른들은 많은 감동과 가족의 소중함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또 해맑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에 힘들고 고단한 일까지 모두 훨훨 날려 버릴 수 있어서 아이들은 정말 천사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천사의 덕에 착상을 얻은 나는 주제넘게 인형극 주제가 노랫말을 써서 작곡가님께 드렸는데 그 노랫말이 재밌었는지 계속 응모를 해보라고 난리다.
이미 오래전에 동심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그것이 내 안에 있었는지조차 의심되는 속에서 생각지 않게 노랫말을 쓴 걸 보면 ‘아직도 나에게 순수한 유년의 동심이 남아있었나?’ 하는 착각 속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