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오(가명, 남 19세)는 지난해 폭력사건에 연류돼 현재 법원으로부터 수강명령을 받은 상태다. 수강명령에 따른 교육을 마친 어느날 성오가 개별상담을 요청해 왔다.
“선생님, 저는 우리 부모님이 이해가 안돼요. 아니 이해하기 싫어요. 우리 부모님은 나를 버리셨던 분들이에요.”
성오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부모님에 대해 쏟아놓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평소 성오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으며 문제가 생기면 성오의 잘못으로 돌리는 등 성오에 대한 신뢰가 없으신 듯 보였다.
중학교 진학 후 잦은 결석과 가출로 부모님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지게 되었다. 결국 중 2때 부모님은 정신 차리게 한다는 목적으로 성오를 중국으로 보냈고, 성오는 아무 상의 없이 자기를 중국으로 보낸 부모님이 미워서 유학 온 애들과 사고 치며 지내다 결국 1년쯤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니 예전과 달라진 것 없이 부모님은 매일 매일 다투고 성오를 탓하고 욕하고 때리며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성오는 다시 집을 나가 처지가 비슷한 애들과 어울리며 폭력 사건으로 보호관찰 교육을 받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모르는 남자들에게 끌려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보낼 때도 정신병원 폐쇄병동으로 넣을 때도 한 번도 자초지종을 말하거나 의견 한번 묻지 않는 부모님의 행동이 무척이나 원망스럽고 죽을 만큼 괴로웠다.
성오와의 두번째 상담이 진행되었다. 성오는 대학을 가려고 현재 검정고시 준비 중이나 생각대로 공부가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 성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성오는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며 검정고시 합격 후 의류나 의상디자인 관련 대학에 진학하고 온라인 쇼핑몰 등 의류 관련 일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이 분야에서 계속 해왔기 때문에 부모님이 조금만 도와주면 도전할 힘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의 관심과 응원이 무척 중요한 상황이었다.
몇 주 지나 성오 부모님과의 상담을 진행했다. 성오 아버지는 완고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며 어머니는 남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오의 잘못을 지적하며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모두가 부부의 잘못이라며 성오가 어릴 적 남편 사업이 잘못되면서 집에서 늘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더욱이 성오가 말썽을 자꾸 부려 주변 사람들 말에 어려서는 중국으로 커서는 정신병원으로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우선 성오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지지 않도록 성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실 것을 전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노력하는 성오의 계획을 들어보고 힘이 되어 주실 것을 당부했다. 또한 전문 가족치료를 통해 가족에 대한 이해,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강조했다.
어느날 성오로부터 반갑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오 가족은 집 근처 상담센터에서 가족치료를 시작했고 부모님이 처음으로 성오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들어주고 그동안 부모로서의 부족함을 사과했다. 또한 검정고시 합격 후 온라인 쇼핑몰 운영과 의상 관련 대학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선생님, 저 진짜 노력할거에요. 부모님이 나를 믿어주기 시작했는데 이제 배신하면 안되잖아요. 정말 감사해요.” 성오네 가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가정은 가장 밀착되고 친밀한 관계로 형성된 1차 사회집단이다. 가족원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만들어 간다. 건강한 가족일수록 정서적으로 친밀하고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의 질서와 규칙, 경계 등이 명확하다.
어린 자녀라 할지라도 가족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개방적인 소통을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역기능 가족일수록 가족관계는 폐쇄적이고 경직되며 소통에 어려움이 크다. 더욱이 부부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 안정을 위해 취약한 자녀에게 부정적 정서를 투사하며 자녀를 희생양으로 삼각관계를 만든다.
이러한 투사과정에서 자라난 자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결국은 부모와의 정서적 관계를 거부하고 단절하게 된다. 가족관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의 살아온 삶에 대한 이해와 가족 특성에 대한 이해다.
보통은 자기가 살아온 방식대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며 원가정에서의 문제를 되물림 하는 경우가 많다. 혹여 내가 역기능적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 살아온 방식대로 현재의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현재 가정에 내 어린시절 원가족의 문제가 전수되고 있는 건 아닌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