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겐 한계라는 건 없다

  • 기사입력 2025.04.20 08:58
  • 기자명 조승현 인형극 작가
▲장애는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한 것뿐이지, 병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게 손인형극이며, 또한 정년이 필요 없는 평생 직업이다. 사진은 인형극과 함께하는 융복합극 장면. 필자
▲장애는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한 것뿐이지, 병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게 손인형극이며, 또한 정년이 필요 없는 평생 직업이다. 사진은 인형극과 함께하는 융복합극 장면. 필자

30년 전 우리 소극장에 회원으로 등록하고 공연 때마다 빠짐없이 관람 왔던 아가씨가 있었다. 그 뒤, 4년 동안 소식이 없어서 궁금했던 참이었는데 어느 날 아가씨였던 그녀가 결혼해서 남편과 어린 딸을 데리고 공연을 보러 왔다. 4년 동안의 공백은 있어서도 나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봤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자리를 함께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고 나와 마주 앉도록 챙긴 뒤 손수 물까지 떠다가 그녀의 손에 쥐여 주는 등 무척 자상했다. 어떤 좋은 말을 해도 다 표현을 못 할 만큼 “정말 훌륭한 남편이구나!”하고 감탄하는 순간, 그녀가 내게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건넸다.

“죄송해요, 제가 앞이 보이질 않아서요.”

“...?”

“제가 원래 시력이 좋지 않았거든요. 4년 전까지만 해도 시력이 조금은 살아있어서 연극관람을 자주 했었는데 결혼 후 임신 중독증으로 아이를 낳고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미소까지 지으며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극광이었던 그녀는 오늘 관람한 연극도 눈으로 볼 순 없지만 배우 목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는 대뜸 내게 “실명했어도 나이가 젊다 보니 뭔가를 하고 싶다”라고 했다.

▲아이들만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듯이, 꿈꾸는 자에게 나이는 없다. 좌측 통나무 집 창문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필자. 조승현 제공
▲아이들만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듯이, 꿈꾸는 자에게 나이는 없다. 좌측 통나무 집 창문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필자. 조승현 제공

아이들이 좋아하는 톤이 높고 가락이 있는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긍정적이고 활달한 성격에 결혼 전부터 우리 소극장을 자주 왕래하며 나와 배우들에게 무척 친근감 있게 대했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난 그녀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이며,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되물었다.

“어릴 때부터 제 꿈이 연극배우였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하기싫은 걸 할 수도 없고... 혹시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반문하는 그녀에게 나는 대뜸 손인형극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손인형극이요...?” 그녀는 자신의 장애에 비관보다 오히려 장애를 인지하고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손인형극을 할 수 있냐?”며 크게 웃었다.

예전부터 소극장에 단체 관람을 온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혼자서 손인형극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무척 매력 있는 직업 같아 보였다며 자신도 손인형극에 도전해 볼까 하다가 장애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결혼 전 그녀는 멋진 배우도 되고 싶었고, 또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버는 게 꿈이었는데 시력을 잃고 보니 배우의 꿈은 접어야 했고, 돈도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며 자신이 잘하는 무언가를 통해 누군가와 더불어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해서 남편을 앞세워 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장애는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한 것뿐이지, 병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게 손인형극이며, 또한 정년이 필요 없는 평생 직업이다.

▲주변에서 언제까지 손인형극을 할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특정 나이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한계를 정하는 순간 나의 발전이 멈추기 때문이다. 사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조승현 제공
▲주변에서 언제까지 손인형극을 할 거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특정 나이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한계를 정하는 순간 나의 발전이 멈추기 때문이다. 사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조승현 제공

아이들이 좋아하는 톤과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것도 그녀에겐 타고난 재능이기에 난 그녀에게 자신의 뛰어난 재능에 감사하고 그 재능을 잘 활용하여 손인형극에 집중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했다. 재능을 발전시켜나가는 여정이 때로는 힘들고 험난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과 보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자신감 갖고 내게 손인형극을 배우던 어느 날, 그녀는 상장을 들고 찾아왔다. 기독교를 믿는 그녀는 신앙 간증대회에 출전해 손인형극을 통해 장애를 딛고 일어서서 사회에 필요한 예술인으로 성장하겠다는 희망찬 간증으로 3등을 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녀의 포부와 열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대한 노력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주변에서 내게 “언제까지 손인형극을 할 거냐?”고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특정 나이까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한계를 정하는 순간 나의 발전이 멈추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든 어른도 꿈을 꿀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듯이, 꿈꾸는 자에게 나이는 없다. 꿈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 또한 삶에 의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그 꿈이 내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녀와 연락이 끊겼지만 난 그녀가 꿈꾸는 아이들 앞에서 자신도 손인형극을 통해 끊임없이 꿈을 꾸며 발전시켜나가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정말 내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장애의 벽이나 나이와 상관없이 그 일에 충분히 노력하고 유능해지자! 좋아하는 일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돈을 벌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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