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蓮이 연못에 초록빛 수를 놓았다.
창덕궁 후원을 거닐다가 애련지愛蓮池에 발길을 멈추었다. 불로문을 지나면 바로 왼편에 있는 ‘연꽃을 사랑하는 연못’이다.
연잎 사이로 하얀 연꽃이 고개를 내민다. 지나가는 길손에게 인사라도 나눌 참이던가. 다소곳한 매무새에 은근한 미소를 머금으니 그 자태가 학처럼 고고하다. 저 멀리서 보일 듯 말 듯한 연꽃은 수줍은 탓에 얼굴빛이 발갛게 물들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청아한 애련정愛蓮亭이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서 있다. 연꽃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윽하다. 구름도 연못에 내려앉아 흐르고, 새들은 수면 위로 날씬한 제 몸매를 비추며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마침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잔잔한 연못에 동심원이 그려진다. 물방울 크기에 따라 크고 작은 원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큰 빗방울이 떨어질 때면 겹겹이 쌓인 동심원이 멀리까지 나아가고, 작은 방울은 한두 개의 조그만 원을 그리다가 물결 속에 숨어든다. 비 내리는 연못은 사생 대회에 나온 어린이들의 그림 연습장 같기도 하고, 수학 시간 도화지에 도형 그리기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리는 빗방울에도 마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머금은 구름 조각들이 자기 무게를 못 이겨 대지로 내려온다. 한 방울 빗물이 되어 세상 구경하려고 허공을 가로질러 머나먼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행선지는 숙명처럼 정해진다.
산속의 솔잎이나 시골 기와지붕에도, 마당에서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 머리에도 떨어진다. 단비를 반기는 농부의 주름진 얼굴에도, 산행 중인 등산객 어깨 위로도, 된장 고추장 담은 시골집 장독에도, 팔짱 낀 연인들의 우산 위에도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중에 으뜸인 것은 이곳 창덕궁 애련지의 빗방울이 아니런가. 애련지는 오랜 세월 온갖 영욕을 함께 해온 역사의 현장이다. 모든 것을 품에 안고 묵묵히 지켜내다 이제는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옛 정취만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더없이 평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빗방울들은 무슨 사연 있길래 크고 작은 원을 그려 연못에다 자신들의 흔적으로 가득 채우려는가. 손가락 마디 적실 만큼의 작은 이슬방울도 자기 몸의 수백수천 배나 되는 크기의 원을 그려낸다. 그러다 금세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 올림픽 오륜기 흉내를 내 보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올수록 동심원은 촘촘하고 바쁘게 그려진다. 자기들끼리 얽히고설키며 장난질도 곧잘 한다.
동심원이란 중심이 같은 원의 집합이다. 주변에 있는 동심원들과 같은 마음인 ‘동심同心’을 간직하거나, 어린아이처럼 때 묻지 않은 ‘동심童心’도 함께 가졌다. 물방울이 떨어지면 그 중력으로 아래에 있는 물이 밀려 주변으로 주름이 진다. 이 주름이 바깥으로 원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물방울은 떨어져 동심원을 그리고 나서 자신은 물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적멸寂滅의 순간이다.
물 위로 퍼져가는 동심원은 거침이 없다. 주변에 그려진 다른 동심원들과 언제 어디서든 화합하고 연결한다. 큰 물방울이 떨어지면 굵은 선을 만들고 작은 물방울에는 고요한 잔주름만 인다. 흐르는 물이 자연의 순리를 지켜나가듯 동심원도 지극히 정직하고 성실하다. 연못 위의 동심원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는 건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우주의 섭리에 연유한 것이 아니던가.
빗방울 하나의 힘이 위대하듯 삶의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살아가면서 단 하나의 결심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거나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빗방울이 그리는 동심원의 생애는 내 삶의 한 단면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중심 잡고 사노라면 힘을 얻어 이웃에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변의 모든 것과 그 중심을 함께 공유할 때 삶에 안정감을 가지고 크고 작은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잠결에 추적거리는 가랑비 소리를 들었다. 깨어보니 하염없이 내리는 빗방울이 온 누리를 적시고 있었다. 빗방울은 밤을 새워 세상 어느 곳이든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렸을 것이다. 세상과 어우러져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라 하면서.
나도 이제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하얀 도화지 위에 동심원 하나 그려 본다.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