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수 구축함의 전도(顚倒) 사고는 무리한 ‘속도전’이 낳은 참사다.

김정은, ‘속도전’의 최고사령관인 당신이 누구를 처벌하겠다는 것인가?

  • 기사입력 2025.05.25 21:09
  • 기자명 유판덕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수석부원장
▲ = 북한이 지난 4월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수식을 한 5000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모습. 5월 21일 함북 청진조선소에서 진수식 도중 사고가 발생한 구축함은 최현급 2호함으로 추정된다. [사진=조선중앙통신]
▲ = 북한이 지난 4월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수식을 한 5000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의 모습. 5월 21일 함북 청진조선소에서 진수식 도중 사고가 발생한 구축함은 최현급 2호함으로 추정된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또 평양의 상공에 공포의 붉은 피 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5월 21일 북한 청진항에서 있었던 진수식 도중 구축함이 전도되는 어처구니없는 참사 때문이다. 이번 사고함은 지난 4월 25일 서해 남포조선소에서 진수한 ‘최현’급에 이은 두 번째 5천톤급 구축함으로써 김정은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김정은 시대의 인민군 현대화’ 노선의 산물이었다.

특히 그는 4대 예비 수령인 딸 김주애와 친근한 모습을 연출하며 많은 장병과 인민들, 그리고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현장에서 당한 날벼락이라 “도저히 있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심각한 사고”로 규정하고 “우리 국가의 존위와 자존심을 한순간에 추락시켰다”라며 격분했다. 김정은이 받았을 창피함과 충격이 어느 정도 일지 짐작된다.

이번 사고는 북한의 전매특허인 ‘속도전’이 낳은 예견된 참사라 할 수 있다. 특히 속도전은 건설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얼마 전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 세워진 53층 고층 아파트 붕괴 우려 기사가 이슈화된 바 있었다. 이 아파트는 2015년 김정은의 지시로 53층 규모 아파트를 9개월 만에 완공한 것이다. 또 2014년 5월 평양 평천구역의 23층 아파트 붕괴로 400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평양 락낭구역에서 건설 중이던 38층 아파트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역점사업인 《지방발전 20×10 정책》에서도 속도전의 부작용이 크게 대두되었다. 이 정책은 북한식 국가 균형발전정책으로 수도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 간의 심각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매년 20개 시·군에 공업공장을 건설하여 지방 주민들의 초보적 물질·문화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을 정책목표로 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지난 2월까지 1차 연도 계획 대상인 20개 시·군의 공장건설 준공식을 가졌고, 4월에는 평양에서 이들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품평을 열어 김정은 치적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정은은 이들 공장건설을 위해 인민군대 내에 124연대라는 20개의 건설전담 부대를 신편하고 이들에게 당 중앙군사위원장(김정은) 친필 명령서와 군기까지 전달하며 경쟁을 부추겨 독려한 바 있다. 

김정은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정책을 발표한 후 11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20일 평안남도 성천군에서 첫 번째 준공식을 가졌다. 그는 준공식 연설에서 1차 연도 정책 집행과정에서 드러난 중대 문제점으로 공사의 질 문제를 지적하며 “건설에서는 속도 보다 질이 우선이고 질 제고가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같은 연설의 앞부분에서는 “관건은 조건 여하를 막론하고 매해 무조건 분명한 실체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말을 같은 연설에서도 뒤집을 정도로 헷갈리게 하지만, 그의 속내는 분명 속도에 방점을 두고 있다.

김정은은 올 1월 당중앙위 비서국 확대회의를 갖고 지방발전 정책의 1차 연도에 발생한 문제들의 재발 방지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전가성 문책을 단행했다. 1차 연도 정책대상 지역인 자강도 우시군(반인민적범죄행위)과 남포시 온천군(당규률 위반 특대사건)의 지방 당 관료들에 대한 ‘시범식 숙청’이 그것이다. 핵 개발로 인한 국제제재 상황과 파탄지경의 경제 여건하에서 자신의 치적 쌓기 정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여 발생한 김정은 자신에 의한 문제이자 수령 만기친람형 계획경제 체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방 당료들의 탈선과 부조리 행위로 덮어 은폐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노동당 창건 80주년(10월 10일), 노동당 중앙위 제8기 마지막 해가 되는 올해 ‘빛나는 자랑찬 업적’이 필요한 김정은으로서는 마음이 매우 급할 것이다. 이번 구축함 전도사고는 이런 김정은의 조급한 마음에 불을 지른 형국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7월 신의주 일대의 대형 수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관련자들을 집단 총살한 바 있다.

지금도 ‘격노한 김정은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고 빠른 성과물 창출을 다그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김정은은 이번 ‘사고조사 그룹빠(그룹)’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 원인과 그에 책임 있는 당사자들을 조사 적발할 것”을 지시했다. 근본적으로 김정은 자기 자신의 치적을 위해, 자기 자신의 지시에 의해 발생한 사고인데 누구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가. 형식적 구호 일지라도 “죽음도 삶도 수령을 위해”를 암송하는 주민들의 삶이 참으로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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