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뒤에 가려진 K-손인형극

  • 기사입력 2025.06.08 11:20
  • 기자명 조승현 인형극 작가
▲손인형극을 준비하는 조승현 작가. 필자 제공
▲손인형극을 준비하는 조승현 작가. 필자 제공

2025년, 한국-미얀마 수교 50주년을 맞아 우리 단체(주최/주관: 색동문화예술원-서울지회)는 서울특별시의 민간국제문화교류활성화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전통시장, 풀문데이에서 장을 열다’라는 주제로 국제문화교류 행사를 개최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미얀마 청년들은 한국에서 온 K-POP 가수들의 노래와 댄스에 맞춰 함께 노래 부르며 열렬히 환호했다. 행사장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친근한 관심으로 가득했고, 그 열기 속에서 나는 예기치 않은 감정과 마주했다.

“이렇게 K-POP이 세계를 사로잡았다면, K-인형극도 세계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 텐데...”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나의 오랜 동반자였던 ‘손인형극’은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 않아서.”

한국 문화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을 실감하면서도 그만큼 아쉬움도 컸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과 미얀마는 모두 전통 인형극 문화를 가진 나라다. 이 공통점은 단순한 문화적 흥밋거리를 넘어, 진정한 예술 교류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인형극은 언어를 초월해 감정을 전달하고, 공동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K-POP의 압도적인 파급력과 대중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이 한국 문화를 대표해야 하는가? 우리 문화는 ‘대중성’ 하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깊이와 결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 민속 손인형극이다. 손인형극은 거창하지 않다. 조명도, 음향도, 화려한 군무도 없다. 하지만 그 작은 무대 위에는 오랜 세월을 건너온 민중의 지혜, 공동체의 정서,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 살아 숨 쉰다.

다만 손인형극의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 않아서 민간국제문화교류행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 현장에 서 있으니 오래전 한 장면이 떠올랐다.

30년 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모 인형극단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나는 손인형극셋트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간 적이 있었다. 일본인형극단이 공연을 마친 뒤, 내 순서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녹음된 음성에 손만 까딱이는 인형극이 아니라, 1인 5역의 목소리를 변조하며 살아 있는 연기와 즉흥성을 갖춘 손끝의 예술로 1시간 동안 펼쳤다. 즉흥과 감정으로 만들어낸 1인극 공연에 일본 관객들은 놀라운 집중과 힘찬 박수로 응답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박수 소리에 내가 하고있는 이 손인형극이 결코 작은 예술이 아님을 실감하며 왠지 애국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라고 하나보다.

작다고, 단순하다고, 그 예술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크기와 규모의 논리에 익숙해진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눈에 띄는 것이 ‘성공적인 콘텐츠’로 간주 된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는 다양성과 깊이 속에서 성장한다.

K-POP이 한국의 얼굴이라면, 손인형극은 그 얼굴의 내면이다. 말없이도 감정을 전하고, 작지만 진하게 마음을 흔드는 예술. 그것이 바로 K-손인형극이다.

▲풀문데이 포스터. 필자 제공
▲풀문데이 포스터. 필자 제공

일본에서 공연 후, 나는 확신했다. 우리의 전통 손인형극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예술이라는 것을.

손인형극은 단순한 오락이나 교육 도구가 아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인형 하나가 힘든 아이의 눈에 눈물을 맺게 하고, 상처받은 어른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순간도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세대를 잇고, 정서를 전하며, 마음을 품는 예술의 본질 아닐까. 그런 손끝의 예술을 나는 평생 이어오고 있다.

비록 미얀마에서는 K-인형극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믿는다. 한국의 전통 민속 예술 중 손인형극만큼 소중한 문화 자산은 없다고.

그리고 나는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 않아서 뒤로 빠지는 것이 아닌, 이 손인형극이 반드시 세계 무대 위에 설 수 있음을 확신하며, 긍지와 자부심을 품고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인형 너머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 마음을 울릴 수 있으니까.

손끝에서 생명을 얻는 이 작은 예술이 다시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인형 하나하나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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