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 "지금이 반부패 개혁의 적기"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비리 폭로했던 전 육군 중위 이지문과의 대담
"국민권익위 위상과 역할 강화하는 등 지금이 반부패 개혁의 적기입니다"

  • 기사입력 2025.09.06 08:29
  • 최종수정 2025.09.06 10:50
  • 기자명 이영일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만난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은 지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반부패 개혁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영일 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만난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은 지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반부패 개혁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영일 기자]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공익제보자를 조직 부적응자 또는 업무 태만자, 불평 불만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왔습니다. 조직의 배신자라며 왕따를 시키면서 잘못된 일을 고치기는커녕 공익제보자를 탄압하고 조직에서 쫒아내려 해 왔죠. 공익제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낮고도 강한 용기입니다. 그것이 배신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힘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 민주주의는 한층 더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에서 만난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은 지금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반부패 개혁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새 정부에서 5대 국정목표 아래 제시된 ‘국민권익을 실현하는 반부패 개혁’을 통해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부패의 상징'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말하는 반부패 개혁은 무엇일까.

한 육군 중위의 양심선언으로 바뀐 군대 내 '부정선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천만 관객을 모은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에서는 경찰로부터 고문을 받는 대학생들을 치료하는 군의관이 나온다. 끔찍한 고문을 직접 목격한 군의관 중위는 대학생들의 법정에서 폭로하다 헌병에게 체포된다. 이 실제 모델이 됐던 인물이 바로 당시 육군 중위 이지문이다.

▲군부재자투표 부정선거를 고발중인 이지문 중위. [경실련]
▲군부재자투표 부정선거를 고발중인 이지문 중위. [경실련]

ROTC 출신 젊은 육군 장교 이지문 중위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인 1992년 3월에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군대 내의 부정선거를 고발한 우리 사회 1세대 양심선언자이자 공익제보자다.

군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일어난 선거부정을 목격한 이지문 중위는 1992년 3월 22일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찾아 양심선언을 한다. 그의 고발 이후 군 부재자 투표는 영외에서 하도록 선거법이 바뀌었다.

군 출신들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엔 '군인들 표는 여당 표'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당시 군인들은 중앙선거위원회 참관 하에 투표하는 게 아니라 군 부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기표소를 마련해서 군인들끼리 부대 투표를 했다.

이 고문은 "투표하기 전에 간부들이 여당을 찍게끔 강압적으로 정신교육을 하는 것은 양반이고 아예 중대장이 보는 앞에서 '야 너 여당 찍어' 이런 것이 공공연하게 자행됐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의 양심선언으로 그 해 대통령 선거부터는 군인들이 외부로 나가서 투표하는 영외투표로 법이 바뀌고 부정선거 시비가 차단됐지만 이 고문은 한동안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지문 전 육군 중위가 말하는 반부패 개혁의 적기라는 이유는...

“내란을 수습하고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그동안 윤석열 정부에서 행해진 정권의 비리와 사회 곳곳의 적폐를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총을 들고 국회를 침탈한 계엄군을 맨손으로 막아낸 시민의 힘은 탄핵과 조기 대선을 이끌어냈고 그 방향은 반부패 개혁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는거죠”

▲이지문 고문은 반부패 정책을 강도높게 수행할 국가기관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일 기자]
▲이지문 고문은 반부패 정책을 강도높게 수행할 국가기관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일 기자]

이 고문은 단호하게 지금이 반부패 개혁의 적기라고 강조한다. 국민이 주인임을 표방한 ‘국민주권정부’ 이재명 정부는 시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펼쳐야 하고 국민발안제, 시민의회, 숙의형 공론장 등 시민이 입법과 정책 결정 과정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

“윤석열 정부가 자멸한 것은 공정과 상식을 무시한 권력형 비리를 스스로 막지 못하고 권력에 취해 국민을 배신 한 것에서 연유합니다. 정권의 꼭대기가 부패하니 공직사회가 제대로 돌아갔을리 만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부패 정책을 강도높게 수행할 국가기관의 위상도 함께 다시 세워야 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독립적 반부패 청렴 총괄기구 개편해 위상 강화해야"

이 고문은 지난해 8월 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김 모 부패방지국장의 사례를 소개하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김 국장은 반부패, 공익제보자 보호 활동을 전개하는 이 고문과 10여년 넘게 인연을 맺어 왔다.

▲국민권익위원회 김 모 부패방지국장이 이지문 고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의 일부. [본인 제공]
▲국민권익위원회 김 모 부패방지국장이 이지문 고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의 일부. [본인 제공]

김 국장은 권익위가 김 여사 사건을 종결 처분한 뒤인 지난해 6월 27일과 8월 6일 이 고문과 전화 통화, 카카오톡을 통해 “권익위 수뇌부가 내 생각과 다르게 종결 처분을 밀어 붙였다. 송구하다.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이 고문은 밝혔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의혹을 국민권익위에서 사실상 덮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패방지국장의 죽음 뒤에는 정권의 압력이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반부패 담당 국장은 권력의 압력에 직면한 상태에서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고 그것은 사실상 권력이 그를 죽음으로 내 몬 것입니다"

이 고문은 지금의 권익위가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공익신고 접수, 신고 보호 보상 등을 제외하곤 조사권도 없고 특별히 권한이 없어 국가 반부패 청렴기관으로 기능과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직속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를 통합하면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격하한 권익위를 독립적 반부패 청렴 총괄기구로 개편하고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다시 위상을 강화해야 합니다. 대통령 소속으로 위상을 강화하면서 감사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보다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권익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문은 권익위가 국무총리 소속으로는 행정부를 넘어 지방의회와 국회, 사법부, 공직 유관 단체 및 공기업,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등에 해당하는 사립학교 및 사학재단, 언론사까지 다 포괄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 고문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대통령 소속으로 위상을 강화하면서 감사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보다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권익위원회]
▲이 고문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대통령 소속으로 위상을 강화하면서 감사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보다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민권익위원회]

권익위에 부패·공익신고 조사권이 없음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신고 및 보호 주무 기관이긴 하지만 접수받은 신고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관련 기관에 이첩하게 되어 있어 사건 처리 지연이나 신고자 인적사항 노출 등의 불이익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은 조사권이 있습니다. 홍콩 염정공서,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말레이시아 반부패청 등 동남아 국가들의 반부패 기구도 수사 권한을 갖고 있죠. 접수된 비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제한적 계좌추적권과 부정이 발생한 국가기관 등에 대한 문서제출요구권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직 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지문 고문과의 인터뷰 대담을 위해 섭외를 할 때 이 고문은 장소를 도산공원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안창호 선생이 창립한 흥사단의 투명사회운동본부 정책실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고문은 “안창호 선생의 정직 정신이 지금 매우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 1월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64점으로 180개 조사 대상국 중 30위를 기록했어요. 부끄러운 수치입니다. 20위권 도약과 사회가 전반적으로 투명한 상태인 70점대 진입을 해야 정직한 사회, 투명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나부터 시작하는 정신입니다”

이 고문은 우리 사회가 정직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펼쳐야 할 많은 일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권력형 비리를 없애기 위해 공익 제보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부패 신고 보호와 공익 신고 보호로 나뉜 법을 통합해 단일한 공익제보자보호법을 만들어 보호와 보상 수준을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정책실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고문은 “안창호 선생의 정직 정신이 지금 매우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영일 기자]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정책실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고문은 “안창호 선생의 정직 정신이 지금 매우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영일 기자]

“무엇보다도 비실명 대리신고제를 확대해야 합니다. 현행법은 인적 사항을 밝히고 실명으로 신고하는 걸 원칙으로 하는데, 권익위 신고 시에만 변호사를 통한 대리 신고를 인정할 것이 아니라 신고가 가능한 다른 기관으로도 확대해야 합니다”

이 고문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렴 교육 강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공익 제보 교육을 학교나 청소년기관에서 강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청렴연수원을 국가 최고 청렴 연수기관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운동권 출신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고 또 군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 즉 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는 바로 이 정직, 청렴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그런 시민사회를 만들고, 그런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권익위 같은 곳에서 제 능력을 펼쳐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평생을 반부패운동, 청렴운동, 공익제보운동을 펼쳐오고 있는 이지문 고문은 다시한 번 지금이 반부패 개혁의 '적기'라 강조했다.

정직이라는 단어가 그저 한낮 구호가 아니라 나부터 실천해 다함께 공정과 상식의 행복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임을 이 고문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너무 잊고 지내온 정직과 청렴의 가치를 일깨워 준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고문께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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