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뻐근하다. 배 근육이 땅기고 허리는 뻣뻣하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다. 허벅지와 종아리도 쑤시는 듯 아프다. 침대에서 간신히 내려왔지만, 바로 옆 세면장 가는 길이 천 리처럼 멀게 느껴진다. 정신은 또렷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며칠 전 지역 봉사단체가 가꾸는 텃밭에서 난생처음 고구마를 캤다. 여럿이 함께하는 일이라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맡은 일은 그냥 두지 못하는 성미 탓에 무리하고 말았다.
먼저 줄기를 베어내야 했다. 헝클어진 덩굴을 쳐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밑동을 움켜잡고 낫으로 자르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애상해진다. 마치 “너희들의 삶은 여기까지야”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흙 속에는 아직 덜 여문 뿌리도 있을 터, 추수가 이른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이랑을 덮은 비닐을 걷어내자 묵직한 흙더미가 드러났다. 이제부터는 호미질이다. 포기 주변을 파내자 연한 줄기들이 자태를 뽐내 보인다. 뿌리를 다치지 않게 캐내려니 온 신경이 곤두섰다.
어렵사리 하나를 캐니 알밤처럼 토실토실한 고구마가 손아귀에 쏙 잡혔다. 어떤 것은 나의 미숙한 손길 탓에 껍질이 벗겨져 하얀 속살을 드러내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가 슬며시 다가와 일러준다. “한 손으로 고구마의 자리를 더듬어 촉감으로 느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조심스레 호미질해야 해요.” 두 손이 각자의 몫을 다하면서도 서로 도와야 잘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드디어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린 포기를 뿌리째 캤다. 서툰 솜씨지만 간절함이 이루어낸 작은 성취였다.
그런데 고구마의 모양이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어른 주먹만 한 놈부터 늘씬하고 몸매가 좋은 것, 몸통에 비해 꼬리가 긴 것, 새끼 밴 듯 배가 볼록한 것, 고드름처럼 길쭉한 것, 덜 커서 조그맣고 작달막한 것…. 같은 흙에서 자랐는데 어쩌면 닮은 데가 하나도 없는지, 흙이 들려주는 작은 변주곡 모음 같았다.
똑같은 음계가 다른 선율을 이루듯, 흙도 같은 양분으로 다른 결실을 빚어냈다. 동료들 축하 속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가 캔 고구마를 포기 째 들고 기념 촬영을 했다.
텃밭은 오래 묵어 척박한 데다 아직 잔돌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 고구마는 그 속을 뚫고 자라났다. 수분이 충분하면 알차게 살이 오르고, 부족하면 길이만 늘어난다. 이렇듯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생육은 흙의 정직함을 보여준다. 작은 줄기 하나가 모래와 돌을 헤치며 뿌리를 키워내는 모습은 약한 데서 위대함을 얻는다는 삶의 진리를 일깨워준다.
추수가 끝난 밭 정리 작업도 간단치 않다. 덩굴의 작은 가지와 이파리가 흩뿌려져 있고, 크고 작은 돌들도 눈에 많이 띈다. 몸이 고단하여 쌓아둔 덩굴 위에 잠시 걸터앉았다. 수확을 마친 밭은 승전의 나팔을 울린 전쟁터 같았다. 비록 잉태와 생육의 고통으로 힘에 겨웠지만, 흙은 결국 어떤 생명체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유하고 풍성한 열매를 세상에 내어주었다.
고구마는 예로부터 백성을 살린 구황식물(救荒植物)이었다. 조선 영조 때 조엄(趙曮)이 일본 대마도에서 씨를 구해와, 변덕스러운 흙의 형질과 싸우면서 여러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끝내 재배에 성공했다. 가뭄과 기근 속에서 백성을 구한 그의 애민 정신은 흙이 품은 또 하나의 변주라 할 만하다.
추수한 고구마를 여러 개의 상자에 나누어 차에 실었다. 이제 복지기관으로 보내면 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등 불우이웃에게 전해진다. 요즘은 맛으로 먹는 간식거리지만 먹을 게 부족한 이들에게는 지금도 구휼의 의미가 있는 것이니, 조상들의 애민 정신과 구제의 전통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싶다.
서툰 솜씨 탓에 생채기가 난 고구마를 집으로 가져왔다. 집 베란다에 놓아두었더니 괜스레 자꾸 눈길이 간다. 몇 개씩 꺼내어 구워 먹고 삶아 먹노라니 옛 시절이 떠오른다.
집에서 가꾼 과수원 옆에는 강기슭을 따라 고구마밭이 있었다. 지금처럼 추수가 끝나면 못생긴 고구마들을 광에 쌓아두고 겨우내 장작불에 구워 먹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마음은 늘 여유로웠다.
텃밭은 단순히 열매를 길러내는 터전이 아니었다. 생육의 비밀을 간직한 채 같은 땅에서도 저마다 다른 모양과 맛을 내는 삶의 무대였다. 고구마는 그 땅이 연주한 선율의 한 대목이었다.
흙은 언제나 같은 음으로 시작하지만, 햇빛과 바람 그리고 땀의 분량에 따라 다양한 곡조를 빚어낸다. 그 변주의 음표와 함께 우리도 그들처럼 성장하고 서로를 나누며 삶을 이어간다.
고구마 한 알 속에는 흙의 시간과 계절의 숨결이 스며 있다. 그 작은 결실이 들려주는 선율들은 지금도 진행 중인 삶의 변주곡이다./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