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최근 보여준 일련의 행정 혼란은 단순한 ‘일시적 소통 부재’가 아니다. 시장 부재로 인한 리더십 공백이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와 행정편의주의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시민 신뢰의 붕괴로 확산되고 있다. 달서구청장의 출입 저지, 언론사 취재 제한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들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10월 중순, 대구시청 동인청사 앞에서 벌어진 ‘현직 구청장 출입 차단’ 사태는 행정조직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공직자들은 “내부 지침”을 이유로 언론과 민선 자치단체장의 접근을 막았고, 이에 대한 해명은 책임 있는 설명보다 형식적인 공문 수준에 그쳤다.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서는 “대구시의 주인이 공무원인가”라는 냉소가 터져 나왔다.
행정의 주체가 사라진 도시
홍준표 전 시장 퇴임 이후 대구시는 사실상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였다. 시장 부재 속에서 행정조직은 방향을 잃었고, 공무원 사회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 행정’에 매몰되고 있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관료 조직은 결단 대신 보신(保身)을 택하고, 책임 대신 규정에 숨어든다. 이번 ‘출입 저지 사태’는 그 전형적 결과다.
행정편의주의는 시민과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비판을 차단하려는 본능적 방어기제로 변질된다. 결국 ‘시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공무원을 위한 행정’으로 기울게 된다.
언론을 통제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비판을 막는 일은, 공공기관이 시민의 기관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대구의 주인은 공무원이 아닌 시민
이번 사건을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대구시의 주인이 시민인지, 공무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시청의 문은 권력의 문이 아니라 시민의 뜻과 비판이 드나드는 통로다. 그 문을 “방호지침”이라는 명분으로 닫았다면, 행정은 이미 시민으로부터 멀어졌다.
‘보안’이라는 단어는 시민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패가 돼서는 안 된다. 민주적 행정의 본질은 비판을 견디는 힘에 있다.
차기 대구시장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리더십
이번 사태는 대구시가 차기 시장을 통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과제를 선명히 드러냈다.
첫째,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이다. 행정조직 내부뿐 아니라 구·군 단체장, 언론, 시민사회와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복원해야 한다. 리더가 부재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신뢰의 회로’임을 이번 사태가 증명했다.
둘째, 책임과 투명성의 리더십이다. 정책 결정 과정이 시민의 눈높이에서 공개되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정 운영이 필요하다. 내부 지침 뒤에 숨는 행정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셋째, 비전과 결단의 리더십이다. 대구의 구조적 침체와 청년 인구 유출, 산업 정체 문제는 단기 이벤트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공무원 조직은 그 비전을 실천하는 파트너로 서야 한다.
“대구만 보는 시장”이 필요한 이유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은 중앙 정치의 파견 시장이 아니라, 대구만을 바라보는 시장”이라고.
차기 시장에게 시민들은 네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대구를 잘 아는 인물,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 실질적 행정 능력을 갖춘 실용형 인물, 변화 대응력과 실행력이 있는 젊은 리더십이다.
대구시청의 출입 봉쇄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관리형 시장’ 시대의 한계를 드러낸 경고이며, 시민 중심 행정을 되찾으라는 신호다.
대구의 미래는 누가 더 강한 권력을 쥐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신뢰를 얻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