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이하 법안소위)가 지난 18일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의료법 개정안은 현행 시범사업의 '원격의료(비대면진료)'를 법제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하며 의료법 개정안 저지 투쟁을 예고했다.
노동·시민사회의 연대체 '의료민영화저지와무상의료실현을위한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9일 "우리는 원격의료 법제화가 국민들의 시급한 요구가 전혀 아니며 정말 시급한 것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의료 공백을 메우고 지역 의료 붕괴를 막을 공공의료 확충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원격의료 법제화는 코로나19 시기 이후 원격의료로 한 몫 잡으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민간 영리 플랫폼들의 요구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원격의료가 필요한 경우 공공 플랫폼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대안도 명확히 제시했다"고 말했다.
앞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감염병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원격의료가 한시 시범사업으로 허용된 데 이어 의료대란 사태를 계기로 현재까지 시범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의료법을 개정, 원격의료를 법제화할 방침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윤석열 정부도 하지 못했던 원격의료 법제화를 이재명 정부가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뿐만 아니라 이재명 정부는 민감한 건강보험 개인건강정보도 민간 보험사 등 민간 기업들의 수익 사업을 위해 열어주려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실손보험 도입, 규제 프리존, 첨단재생의료법 등 의료 민영화의 중요 의제들이 민주당 정부 시기에 강행돼 왔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재명 정부 역시 핵심 의료 민영화 정책인 원격의료 법제화를 밀어붙여 기존 민주당 정부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집권 6개월도 안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의료법 개정안과 원격의료 법제화의 문제점을 상세히 지적했다.
먼저 무상의료운동본부에 따르면 의료법 개정안은 공공 플랫폼을 의무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정부는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라는 공세에 부딪히자 공공 플랫폼도 수용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며 "그러나 공공 플랫폼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비대면진료지원시스템)은 '구축·운영할 수 있다'에 그칠 뿐 의무 조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공공 플랫폼을 의무적으로 구축해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재정을 투자하지 않으면 영리 플랫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면서 "그런데 이조차 임의 조항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공공 플랫폼 모양새를 취한 것은 법안 통과를 위한 기망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원격의료로 영리 플랫폼이 의료 체계에 진입하면 의료법 취지와 상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현행 의료법은 영리법인이 의료 기관을 개설할 수 없게 하는 등 의료를 통한 영리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를 금하고 있다"며 "그러나 원격의료를 통한 영리 플랫폼의 의료 체계 진입은 의료법의 취지와 완전히 상충된다. 우리 의료 체계 안에 기업이 끼어 들어와 영리 행위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 영리 플랫폼들이 지배하는 원격의료는 영리 추구를 허용하지 않는 공적 의료 영역을 망가뜨리는 공성퇴가 돼 과잉 진료, 의료비 상승, 건강보험 재정 악화, 민간 보험사 지배 등 의료 체계를 심각하게 망가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평가 부실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현행 보건의료기본법은 새로운 의료제도를 도입할 때 시범사업을 할 수 있고 '시범사업을 실시한 경우에는 그 결과를 평가하여 새로 시행될 보건의료제도에 반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정부의 원격의료 법제화는 이와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시범사업 평가라고는 지난 8월 14일 발표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통계 정도가 전부"라면서 "5년간 무제한적으로 실시한 시범사업에 대해 엄밀한 평가는 없다"고 지적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우리 의료 체계에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데도 시범사업은 무분별하게 시행됐고, 부작용이 국정감사 등을 통해 일부 드러났는데도 전체 시범사업에 대해 면밀히 평가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의료법 개정안의 법안소위 통과에는 절차적 하자가 명백히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원격의료 법제화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원격의료 중개업자 자격에는 거의 제한이 없다. 신고하고 인증받으면 그만"이라면서 "영리 플랫폼은 환자와 의료 기관 사이에 기생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거대 민간 보험사 역시 중개업자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거대 민간 보험사가 막강한 자본력으로 중개업을 장악하면 미국식 의료 체계로 가는 길이 열린다"며 "즉 민간 보험사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환자와 의료 기관 사이에서 의료 체계를 지배하며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의료인의 진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의견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영리 플랫폼 업체들을 비롯한 기업들의 의견만 듣는 정부는 국민주권정부가 아니다. 우리는 의료 민영화인 의료법 개정안을 막아낼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