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1월 18일 드디어 ‘한국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SNS를 통해 발표(10월 29일) 한지 20일 만이고, 필자가 본지에 “트럼프의 한국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 발표에 북한이 침묵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칼럼(11월 12일)을 쓴지 꼭 6일 만이다.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특히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를 승인해 준 것은 조선반도 지역을 초월하여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군사 안전 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전 지구적 범위에서 핵 통제 불능의 상황을 초래하는 엄중한 사태 발전”이며,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는 지역에서의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하고 보다 치열한 군비 경쟁을 유발하게 되어 있다.”는 억지 논리로 한미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글에서는 북한이 적반하장격 논리를 펴며 흥분하는 이유와 향후 전개될 ‘남북한 핵추진잠수함 보유 경쟁’ 양상을 전망해 본다.
먼저 북한이 흥분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결단에 대한 충격과 실망 때문일 것이다. 미북 양측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좋은 관계’를 공개적으로 흘리면서 물밑 협상을 진행 중이었고, 북한지도부는 미북 정상회담 재개 이전에 트럼프가 이런 충격적인 결정을 하리라고 거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정리 시간이 길어졌고 따라서 공식적 반응도 그만큼 늦어진 것 같다.
선대수령의 유훈‧업적과 국가 차원의 대전략인 ‘공산주의식 하나의 조선반도’를 포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운 김정은의 숨겨둔 책략은 한미와 국제 사회를 대상으로 ‘핵 억제력’을 지렛대 삼아 세습체제를 유지 및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트럼프의 ‘한국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은 이 지렛대를 반쯤 부러뜨려 놓은 것으로 김정은과 북한지도부가 받았을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 지가 충분히 짐작된다.
그럼 향후 한국이 갖게 될 핵추진잠수함(이하 ‘한국 또는 북한 핵잠수함’)은 남북한, 그리고 미국에 어떤 의미가 될까?
김정은이 북한의 자원과 재원을 쏟아부어 만든 ‘핵 억지력’은 미국에 대한 한반도 문제 개입을 억제하고, 실패 시 보복하는 ‘제1 사명’과 남한에 대한 핵 공격을 의미하는 ‘제2 사명’을 갖고 있다. 이 핵무력의 사명을 온전히 보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핵잠수함이다. 북한이 지난 3월 8일 공개한 건조 중인 핵잠수함(“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이 진수하게 되면 핵 탄도미사일을 탑재하고 태평양 심해를 누비며 미국을 위협할 것이고, 한국에 대해서도 협박과 함께 실전에서 사용할 것이다. 또 이런 핵무력의 사명은 기울어져 가는 남북한의 국력 격차로 인한 남한으로의 흡수통일 위험을 감소시키면서 세습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과 수단이 될 것이다.
반면, 한국 핵잠수함은 동‧서해의 길목에서, 또 태평양 심해에서 북한의 핵잠수함 추적 감시를 통해 ‘핵무력 사명’을 무력화 또는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다. 북한지도부로선 수십 년 동안 ‘인민의 희생’의 대가로 갖게 된 ‘만능보검 핵무력’의 쪼그라들 효능과 효과를 생각하면 기가 막힐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전제로 향후 북한은 “치열한 군비 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는 논평처럼 핵잠수함 조기 건조 및 전력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핵잠수함 건조 기술 및 운용에 들어갈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이다.
일반적으로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기술은 소형원자로 설계‧제작, 원자로 안전관리 및 냉각계통 제작, 잠수함용 고강도 강재 및 저소음 추진체계, 정밀 가공 설비, SLBM 발사관과 미사일 통합 등이다. 북한의 경우 일부 기술은 갖추고 있으나, 핵심 기술인 잠수함용 소형원자로 설계‧제작 및 각종 정밀 제작 능력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이 문제해결을 위해 러시아에 파병의 대가로 핵심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비용 문제로 통상 핵잠수함(핵추진 공격잠수함, SSN) 1척 건조 비용이 미화 약 20~50억 달러(한화 2.9조~7.3조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잠수함의 지속 작전능력 유지를 위해서는 3척(작전 1, 대기/훈련 1, 정비 1)이 필요한데 3척 건조비만 약 60~150억 달러(8.8~22조 원)가 소요된다. 여기에 연간 수천만 달러에서 수억 달러가 들어가는 한 척당 운용비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
물론 수령 유일 지도 체제하에서 김정은이 지시하면 핵잠수함 성능의 높고 낮음을 떠나 건조를 못 할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인민의 내핍 생활 인내심의 임계점’이 김정은과 지도부가 원하는 시간까지 기다려 줄지와 현재의 북한 경제력이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한의 사정은 어떤가? 먼저 미국과 세부적인 추가 협의가 남았지만, 트럼프의 결정으로 가장 큰 외교적 문제는 해결되었다. 국내적으로도 북한 핵 위협에 시달려 온 국민 여론은 매우 호의적이고, 보수정권이 아닌 진보정권에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별다른 정치적 문제도 없을 듯하다. 또 핵연료를 제외하면 핵잠수함 건조 및 운용능력, 경제력 등 전반적으로 북한보다 좋은 환경이다. 단, 법‧제도 정비, 범정부 차원의 핵잠수함 건조기구 결성 등 조기확보를 위한 권력자의 의지만 남았다.
현재 불붙고 있는 ‘남북한 핵잠수함 보유 경쟁’은 과거 소련이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 경쟁으로 몰락했듯이 80년간 끌어온 남북 분단의 긴 질곡을 끊고 통일의 서막을 여는 마지막 고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역사적 흐름의 향배는 우리 모두의 선택이 좌우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