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 와서 야당을 무시하고 국회의장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나가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그 모습은 윤석열 정부의 큰 몰락을 예고하는 경고음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김용범 정책실장의 행동에서도 똑같은 조짐을 봅니다. 국회를 불편하게 여기고 대립 구도를 고착화했던 정권 중에 잘된 정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김용범 실장이 보인 언행은 단순한 돌발 행동으로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가 청년 전세대출 예산을 3조 이상 축소하고 주택금융 예산 전체를 4조 가까이 줄인 문제에 대한 설명은 끝내 없었습니다. 대신 남은 것은 “우리 딸은 건드리지 말라”는 감정적 대응뿐이었습니다.
김은혜 의원이 정부 정책이 청년 주거 현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묻는 과정에서 사용한 가정법이나 역지사지의 접근은 특별할 것도, 문제가 될 것도 없는 방식이었습니다.
더구나 김용범 실장은 최근 미국의 러트닉 상무장관 등 주요 통상 관료들과 관세·통상 관련 협의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의 돌발성은 훨씬 크고, 예측이 더 어려운 상대입니다. 그 앞에서는 책상을 치고 격앙하며, 주변 손을 뿌리치며 “가만히 있어보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타국과의 협상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왜 우리 국민을 대신해 묻는 야당 의원에게만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정책 책임자로서 적절한 태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결국 김어준 씨의 방송에 쪼르르 나가 격려를 받고 무용담을 풀고 오는 모습까지 드러나면서, 도발의 의지가 더욱 명확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주거 문제는 젊은 세대에게 생존의 문제이자 국가적 신뢰의 문제입니다. 민주당 계열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약했던 분야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주거 대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예산을 줄였다는 문제 제기에는 더더욱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대통령실이 국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위험한 징후로 판단합니다. 국회는 대통령실의 감정 배출구가 아니며, 대통령실 참모의 ‘정치 훈련장’은 더더욱 아닙니다.
국민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는지, 그 정책이 젊은 세대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 묻고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정책실장이라면 그 질문에 답해야지, 질문한 사람에게 분노할 권리는 없습니다.
정책은 설명해야 설득되고, 설득해야 지지를 받습니다. 화를 내서 넘기려는 순간, 국회와 행정부의 신뢰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까지 흔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