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형극, 세상 따뜻함 전하는 ‘문화의 전령사’ 되고 파

  • 기사입력 2025.11.23 19:34
  • 기자명 조승현 인형극작가
▲필자(두번째 뒷줄 왼쪽)가 연극교실 워크숍 공연을 마친 제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필자
▲필자(두번째 뒷줄 왼쪽)가 연극교실 워크숍 공연을 마친 제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필자

손인형극 무대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작은 손이 인형을 잡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통로를 찾는다. 인형은 아이들의 분신이자 친구가 되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게 만든다.

나는 35년 전부터 소극장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연극교실을 열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찾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말이 적고, 낯선 사람 앞에서 말 한마디 꺼내기조차 어려운 소극적인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손인형극을 도입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나는 먼저 아이들 앞에서 손인형극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인형의 말에 반응하며 웃고, 이야기에 몰입했다.

인형을 손에 쥐여주는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토록 작고 조용했던 아이들이 인형을 매개로 세상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목소리를 변조하며, 인형을 통해 자신을 표현했다.

나는 손인형극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상상력을 존중했다.

아이들 스스로 극을 창작하고 손인형극을 선보이게 하자, 무대 위에서의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수줍고 부끄러워 나서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며, 심지어 오버를 할 정도로 즐겁게 공연을 했다.

워크숍 공연 때는 아이들의 가족들을 초대했다. 부모들은 “설마 우리 아이가 무대에 서겠어?”라는 마음으로 오셨다가, 무대 위에서 당당히 대사를 외치며 연기하는 자녀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 눈물에는 놀라움과 감동, 그리고 ‘우리 아이가 이렇게 성장했구나’ 하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은 성장했다.

그중에는 애니메이션 작가, 뮤지컬 배우, 가수,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어릴 적 인형을 통해 마음을 열고 세상과 소통했던 경험이 그들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 손인형극 무대는 단순한 놀이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삶의 무대’였다.

더 놀라운 일도 있었다.

그때 무대에 섰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서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할 때 나를 주례로 초대한 것이다.

주례석에 서 있던 나는 “무대 위에서 만나 인형을 통해 웃던 아이들이 이렇게 한 가정을 이루다니…” 하며 감격스러웠다.

양가 부모님들도 “우리 아이들의 연극 선생님이 주례라니, 이보다 더 뜻깊을 수 없다”며 기뻐하셨다.

그 후로도 몇몇 제자들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손인형극의 인연’을 마음 깊이 느꼈다.

시간이 더 흐르자 그 제자들이 부모가 되었고, 제자들의 엄마였던 분들이 할머니가 되어, 손주를 데리고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저희 아이들이 어릴 때 연극 교실 다녔던 거 기억하시죠? 우리 손주들도 제 엄마 아빠가 연극교실에 다녔던 것처럼 자신감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무개야, 너희 엄마 아빠도 여기 선생님한테서 연극 수업을 받으며 무대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단다.”

34년 전엔 제자였던 아이의 엄마였고, 이제는 손주의 손을 잡은 할머니가 되어, 옛 추억을 떠올리며 나와 함께 웃었다. 이렇게 세대를 넘어 다시 이어지는 손인형극의 인연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에는 언제나 인형이 있었다.

그들은 인형을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자신의 또 다른 나’로 바라보았다.

손인형극 속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아이들은 손을 움켜쥐며 함께 걱정했고, 인형이 어려움을 극복하면 자신이 해낸 듯 기뻐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손인형극이 가진 힘을 새삼 느꼈다.

인형 하나가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고, 협동심을 길러주며, 때로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손인형극을 놓지 못한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인형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속에는 ‘변화의 씨앗’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인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손인형극은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

손인형극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고, 치유이며, 사람을 이어주는 따뜻한 언어다.

NGO 현장과 교육 현장에서 손인형극이 차지하는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말로 다가가기 어려운 아이, 소통이 단절된 사람, 마음의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인형은 또 하나의 친구이자 위로의 통로가 된다.

각박하고 단절된 사회 속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마음을 감추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나는 오늘도 손인형을 들고 무대에 선다.

작은 인형 하나가 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내 건강이 허락되는 그 날까지, 나는 손인형극으로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는 ‘문화의 전령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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