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가슴 저미는 울림 '엄마의 눈물'

  • 기사입력 2025.11.23 19:53
  • 기자명 김국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그 어머니의 눈물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환자 가족의 분노와 절망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의 눈물이었다. 이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적 비극의 상징이기도 했다. 필자 제공
▲그 어머니의 눈물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환자 가족의 분노와 절망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의 눈물이었다. 이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적 비극의 상징이기도 했다. 필자 제공

“살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린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중심축을 이루는 이 두 문장은, 단지 의학적 사명감을 넘어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 작품은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의학 드라마이지만, 그 안에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얽힌 삶의 절박함과 존재의 의미가 짙게 배어 있다.

2016년부터 방영된 이 시리즈는 시청률을 넘어선 힘을 지녔다. 지방의 한 작은 병원을 무대로,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부조리한 현실과 그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려는 이들의 고투를 조명한다. 특히 돈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세태 속에서 자기 양심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진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 드라마는 작은 실천을 통해 세상이 변하고, 그 변화가 점차 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양한 층위의 서사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드라마에는 환자 어머니들의 눈물 장면이 자주 나온다. 군대에서 구타당하다 죽은 병사 어머니의 눈물과 취객에게 머리를 맞아 뇌출혈로 사망한 119 구조 대원 어머니의 통곡은 가슴을 엔다. 그중에도 기억에 오래 남은 장면이 있다. 젊은 의사의 어머니가, 아들의 과실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환자 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다. 병원 측의 압박으로 인해 아들이 응급 처치 순서를 조정했고, 그 결과 환자는 수술조차 받지 못한 채 숨졌다. 그 어머니는 흐느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게 다 제가 잘못해서 그랬나 봅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아들의 손을 끌어다 타일렀다.

“얼른 사죄드려. 너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데. 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그 의사의 아버지 또한 과거,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어떤 고위층 인사에게 수술 순서가 밀려 끝내 치료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소년이었던 그는 “우리가 먼저 왔잖아!”라고 외치며 병원 집기를 부수고 오열했다. 분노와 상처는 그를 의사로 만들었고, 역설적으로 그는 다시 같은 가해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어머니의 눈물은 단지 슬픔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환자 가족의 분노와 절망을 함께 짊어지는, 연대의 눈물이었다. 이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적 비극의 상징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이 장면을 통해 개인의 감정이 아닌, 부조리한 제도와 신념이 충돌할 때 비로소 태어나는 ‘정의의 감정’을 보여준다. 그 눈물을 계기로 아들은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고자 한다.

작품은 시청자의 눈물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 자신은 과연 진실 앞에서 떳떳했는가. 사회의 불합리를 나와 무관하다며 기피한 적은 없었는가. 내게 주어진 작은 권력이 누군가에게 억울함이 되지 않았는가. 소외와 불의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는 종종 방관자의 위치에 서 있다. 사회 부조리를 내 일이 아니라며 무심히 넘긴 순간, 진실은 멀어지고 우리는 결국 소중한 것을 잃는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도 비슷한 울림이 있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배달 중, 수녀원에 갇혀 학대받는 소녀를 발견하고는 과감히 구출하는 행동에 나선다. 오랜 관습처럼 여겨진 사회악을 들춰냄으로써 기존 질서에 저항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가져야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병원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 안에 담긴 윤리적 통찰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 통용된다. 우리의 일상은 선택과 외면, 타협과 침묵의 연속이다. 때론 그 사소한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는 순간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야. 우리가 외면하고 모른 척할수록 그런 악순환은 되풀이될 거고.”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격려다. 용서와 회복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지만, 그것은 ‘눈물’처럼 뜨겁고 진실해야 한다.

엄마의 눈물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아니, 그런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