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 내년 대구시장 선거는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라 도시의 생존 전략을 가늠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한때 대구는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었다. 기술과 관료, 기업이 힘을 모아 산업단지를 세우고 ‘근면·실용’의 정신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제조업 정체, 인구 감소, 청년 유출이 겹치면서 활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과거처럼 강한 추진력을 앞세운 ‘투사형 리더’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은 갈등을 조정하고 예산·정책을 현실적으로 설계하며, 중앙·광역·기초·민간을 연결할 수 있는 ‘조정형 리더십’이다. 정치적 명성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특히 산업 리더십의 부재는 대구의 취약점이다. 중소 제조업 기반 혁신, 산업·문화 융합, 기술창업 생태계, 광역교통·물류 인프라 확충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 전략이어야 한다. 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가 도시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이 점검해야 할 것은 “누가 시장이 될 것인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도시를 이끌 것인가”이다.
대구의 성장 DNA는 산업이었다. 방직·기계에서 첨단의료로 이어진 산업 변천은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엇으로 먹고사는 도시인가”라는 질문 앞에 흔들리고 있다. 공장은 줄고 기업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며,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떠난다.
대구가 회복해야 할 핵심은 ‘산업 리더십’이다. 기업·대학·연구소·금융을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낼 조정력, 산업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는 ‘성장 언어’를 말할 줄 아는 리더가 필요하다. 청년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5년간 청년 순유출률 전국 1위인 대구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일자리 지원이 아니라 기회가 열리는 도시, 생활 인프라와 공정한 참여 구조를 가진 생태계다. 청년을 ‘정책 대상’이 아니라 도시의 ‘주체’로 인정하는 시각이 절실하다.
행정의 신뢰 회복도 빼놓을 수 없다. 폐쇄적 정보, 시민 참여 없는 공공사업, 결과 중심 보고 문화는 신뢰를 갉아먹는다. 정책 설계·집행·평가 전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로 민주성을 회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산업·청년·신뢰는 각각의 문제가 아니다. 세 영역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어낼 리더십이 도시 재도약의 조건이다.
지금 대구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결단보다 ‘협력의 기술’이다. 구·군, 행정·기업, 중앙·지방 간 협력 구조가 미비해 주요 사업이 병렬적으로 흩어져 있다. 신공항, 산업 전환, 인재 정책 모두 조정 중심이 약해 추진력이 떨어진다. 협력이란 단순히 회의를 여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재설계하고 공동 목표를 만드는 과정이다.
협력형 리더십은 경청, 권한 분산, 성과 공유를 특징으로 한다. 갈등을 덮기보다 드러내고 해법을 찾는 리더가 결국 신뢰를 만든다. 그러나 협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구가 놓친 또 다른 역량은 ‘실행 리더십’이다. 계획은 많았지만 마무리된 사업은 적었다.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가 적은 이유다.
실행 리더십은 △우선순위 명확화 △단계별 목표·성과지표(KPI) 공개 △현장 중심 TF 구성이 핵심이다. 도시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움직인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꾸준히 쌓아가는 리더가 신뢰를 얻는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필요한 것은 비전의 설계자보다 결과를 증명할 실행가다. 도시의 내일은 말이 아니라 변화의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