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대표이사 이창재·박성수)이 전국 380여 병·의원에 신약 처방을 유도하며 금품·향응을 제공한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이 뒤늦게 재수사에 나섰다. 당초 일선 경찰서는 “회당 10만원 이하 식사 접대는 약사법 위반이 아니다”며 사건을 ‘불입건’으로 종결했지만, 공익신고자와 시민사회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경찰은 사건을 상급 기관으로 이관하며 본격 재조사에 착수했다. (한국NGO신문 6월 25일 기획보도)
이번 의혹은 JTBC가 대웅제약 내부 ‘리베이트 영업 보고서’를 단독 입수하며 급물살을 탔다. 보고서에는 신약 ‘펙수클루’ 처방 확대를 조건으로 학회 지원, 장비 교체, 병원 인테리어 비용 제공 등의 사실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의료윤리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라며 전면 수사를 요구했다.
“펙수클루 도입 조건으로 2억원 지원”…내부 보고서에 명시
JTBC는 대웅제약 영업사원들이 2022년부터 2년간 학회비 명목으로 수억원을 지원한 뒤, 신약 ‘펙수클루’의 도입을 요청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강남 소재 한 대학병원 A교수는 영업사원에게 학회 지원을 요청했고, 영업팀은 이를 수락하며 “확실히 처방을 넣어달라”고 주문한 사실이 내부 문서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한 문건에는 국제학술대회 ‘다이아몬드 등급’ 후원 명목으로 약 2억원이 집행된 내역도 포함돼 있다. 수도권 일부 개인병원에는 장비 교체비나 인테리어 비용까지 지원됐다는 정황이 담겨 있어, 리베이트 제공 방식이 단순 금품을 넘어선 구조적 형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불입건? 인력 없다?”…일선 경찰의 책임 회피
해당 사건은 2023년 4월, 대웅제약 내부 관계자로 알려진 공익신고자 A씨가 국민권익위에 약 70쪽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보고서에는 대웅제약 영업사원 130여 명이 전국 병·의원 380곳을 상대로 신약 처방을 유도한 내역이 포함돼 있었다.
권익위는 이를 경찰청에 이첩했고, 사건은 성남중원경찰서로 배당됐다. 그러나 경찰은 관내 15개 병원만 조사한 후 “식사 접대 회당 10만원 이하”라는 이유로 2025년 4월 불입건 처리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공익신고자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고, 전국 단위 조사는 인력이 부족해 어렵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내부 문건이라는 명백한 물증이 있음에도 손을 놓은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솜방망이 안 된다”…경기남부청, 사건 광역수사단으로 이관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경찰은 결국 사건을 상급기관인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관하고, 광역수사단 산하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재배당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자료만 존재해 도경과 일선서 중 어느 쪽이 적합한지 판단이 어려웠다”며 “결과적으로 아쉬운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제약·의료 유착구조 뿌리 뽑아야”
시민단체들은 “의료정의를 파괴한 중대한 범죄’라며 대대적인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신약 도입을 조건으로 한 학회 지원은 명백한 대가성 거래”라며, 보건복지부와 검찰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약사회 관계자는 “영업사원과 병원 간 문자, 카카오톡 대화만 봐도 대가성은 명확하다”며 “리베이트 쌍벌제를 적용해 제약사와 의료인 모두를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수사가 구조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리베이트는 관행”이라는 인식이 여전하지만, 이번 사건은 공익신고자에 의한 구체적인 문서 증거와 함께, 제약업계의 관행과 경찰 수사의 안일함이 모두 드러난 전형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공익신고자 A씨는 “내부 고발까지 했는데도 수사기관은 외면했다”며 “이제라도 광역수사단이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는 단순히 한 제약사의 리베이트 관행을 넘어서, 한국 의료영업의 투명성과 구조적 병폐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10만원 룰'에 숨어 있는 제도의 구멍을 봉합할 수 있을지, 경찰의 실질적 수사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