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을 69%로 동결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부동산 가격공시 정책 개선 공청회'를 개최한 데 이어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를 개최, '2026년 부동산 가격 공시 추진안'을 심의·의결했다.
'2026년 부동산 가격 공시 추진안' 심의·의결 결과 2026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적용 현실화율은 현재 수준의 69%가 유지된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여야 합의로 부동산공시법이 개정,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수립됐다. 2020년부터 2035년까지 토지와 주택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2023년부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의 69%로 회귀시켰다. 다만 부동산가격공시법에 따라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목표는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2026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69%로 동결할 방침이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14일 "공시지가·공시가격은 보유세뿐만 아니라 60여 개 부담금 산정 등에 활용되는 중요 정책 결정 기준인 만큼 명확성, 투명성, 공정성을 최우선에 둬야 한다"면서 "그러나 모호한 법률조항과 불투명한 관리로 인해 과세 기준이 되는 가치의 개념이 무엇인지 근본 부분부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심지어 역대 정부는 입맛에 따라 공시가격을 제멋대로 조정했고 국민의 불신과 시장의 혼란을 야기했다"며 "조세기준이 왜곡, 국민에게 불신되는 상황을 방치한 채 세금만 많이 거둬간다면 강한 조세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경실련은 "최근 소위 '똘똘한 한 채'라 불리는 한강벨트의 초고가 1주택 집중 현상이 자산격차를 키우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세기준이 되는 공시제도가 바로 서야 한다. 가치 기준이 명확해야 자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시지가·공시가격 정상화는 법률 개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며 "이재명 정부는 세금 기준부터 바로 세운 다음 적정 세부담과 세율 등은 국회가 세법 개정 논의를 통해 결정하도록 일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 우리 국민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초양극화된 대한민국 사회를 마주하고 있다"면서 "조세 형평성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양극화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국회와 힘을 모아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시제도를 기초로 합리적인 부동산 조세체계를 구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13일 "이재명 정부는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을 올해와 동일한 69%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며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공시법에 따라 수립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기하고, 2020년 수준에서 4년째 동결하는 것으로 법률이 정한 목표 달성 의무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공시가격 후퇴가 최근 이재명 정부의 공정과세 훼손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라면서 "정부가 자산소득 과세를 약화시키는 한편, 부동산 보유세의 기초가 되는 공시가격까지 후퇴시키면 조세체계는 필연적으로 자산가들에게 유리해진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재명 정부는 69% 동결이 마치 중립적인 선택인 것처럼 밝혔지만 실제 현실화율은 지난 4년간 계속 하락했다"며 "2023년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19.8% 하락했지만 실거래가는 36.9% 상승했다. 서울 역시 공시가격이 19.4% 떨어지는 동안 실거래가는 9.3% 올랐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공동주택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2020년 67.5%에서 2024년 61%까지 떨어졌다"면서 "공시가격이 시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고가·고자산 계층일수록 감세 효과가 커졌고 공정과세 원칙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재명 정부는 내년에도 현실화율을 유지하겠다며 사실상 추가 후퇴를 방치하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서울·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으로 대출·투기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정작 부동산 과세 기준은 바로잡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더욱이 윤석열 정부가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하까지 추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방치된 고가 부동산에 대한 과소 과세와 왜곡된 조세 형평성을 바로잡기 위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이라도 인상하는 안을 내놓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최소한의 조치도 없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은 부자감세 기조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라면서 "이재명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 방침을 즉각 철회하고, 부동산 가격이 적정하게 과세될 수 있도록 현실화율을 높이고 부동산 유형·가격대별·지역별 형평성 문제를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