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다시 3고(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그 세 가지가 달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순환 구조다. 그 출발점이 어디일까? 과도한 재정지출과 확대되는 재정적자다. 위기 극복을 위해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40년 전 미국도 상황이 비슷했다. 레이건 정부는 감세와 군비 확대로 인해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적자를 기록했었다. 당시 미국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었던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은 정부 내부에서 거의 유일하게 재정적자의 위험을 경고한 인물이었다. 그는 재정적자가 단순한 빚이 아니라 환율 물가 금리를 조종하는 핵심 변수라고 파악했다. 특히 재정적자가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고, 구조적으로 금리 인하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한국 경제 현실을 보면 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고환율은 단순한 외부 충격 때문이 아니다. 재정 지출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가 외국인에게 ‘리스크’ 증폭 신호를 보내면서, 원화 가치의 구조적 약세로 이어지는 것이다. 국채 공급이 늘면 금리가 오르지만, 위험회피적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건 수익률보다 ‘안정성’일 수도 있다. 그 나라의 재정 안정성이 흔들리는데 한국 국채 주식 등을 매도하지 않을 외국인은 바보 빼곤 없다. 그러한 자본유출이 환율을 끌어올리고, 그에 따라 에너지 포함 모든 수입물가가 상승해 고물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는데 금리를 내릴 순 없다. 한국은행 역시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다. 금리를 내리면 환율상승과 물가상승이 더 부채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펠드스타인이 경고했던 그 메커니즘과 똑같다. 재정상태가 불안정한 국가는 통화정책을 펼칠 전략공간이 좁아진다. 즉, 재정지출 확대가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고, 고금리는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이 겪는 3고현상의 배경이다.
정부는 경기회복, 민생 안정 등의 명분 아래 재정지출을 거침없이 확대해왔다. 한국의 재정적자 폭은 역대급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성장잠재력을 높일 구조개혁이 후퇴했다는 것이다. 단기적 인기영합적 현금성 재정지출이 크게 늘어도 그 정책효과는 크지 못하다. 재정정책이 국제금융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결과 3고현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안은 재정지출을 줄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펠드스타인이 강조했던 것처럼, 재정상태가 안정되어야 금리를 내릴 수 있고, 금리를 내릴 수 있어야 비로소 성장 활력도 돌아올 수 있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통화정책을 주관할 한국은행은 허수아비가 된다. 그에 따라 국가 경제는 더 큰 변동성에 노출되는데 그게 환율폭등인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건 재정지출을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아울러 국채 발행 규모를 통제하며, 중장기적 재정건전화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먼저 재정긴축 의지를 보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리스크를 낮게 평가할 것이다. 그 경우 원화가치는 안정되고 물가도 진정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한국은행이 금리 정상화를 위해 통화정책의 전략 공간을 겨우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금 한국경제가 겪는 3고 현상은 단순한 경기순환 현상이 아니라, 재정정책의 신뢰가 흔들린 결과다. 1980년대 미국에서 펠드스타인이 했던 경고는 2020년대 한국에도 적용된다. 재정이 흔들리면 환율이 흔들리고, 환율이 흔들리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 금리는 묶인다. 이 악순환을 끊는 첫번째가 바로 재정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건 새로운 예산 항목이 아니라, 새로운 재정철학이다. 성장과 안정을 원한다면, 재정건전화밖에 없다. 이는 미래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