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자 정부·여당이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자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여당의 특별법에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를 선별하고, 보증금 채권 매입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이에 '선구제 후회수' 방안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이하 피해자 대책위·시민사회대책위)는 16일 오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제대로 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하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참석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월 2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주거안정 방안(이하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안정을 신속 지원하는 것이 방안의 핵심이다.
특별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 심의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우선매수권, 경매 유예·정지 신청, 세제·금융 지원 등의 특례가 부여된다.
다만 특별법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려면 6가지 요건이 필수다. 6가지 요건은 ▲대항력(對抗力·이미 발생하고 있는 법률관계를 제3자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효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집행권원 포함)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세부요건 하위법령 위임)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다.
특히 정부·여당은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부정적이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이 채권을 매입, 세입자에게 피해 금액을 먼저 보상한 뒤 경매·공매·매각절차 등을 통해 투입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기 피해를 국가가 떠안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사기 범죄를 국가가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며 "(보증금 반환 채권을) 얼마를 주고 사면 피해자가 만족하겠느냐. 이는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을 유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피해자 대책위·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여당의 특별법이 피해자 감별법이면서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정부·여당의 특별법이 피해자를 지원하는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피해자 대책위가 429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7.5%만이 정부의 피해자 요구 요건에서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대항력, 확정일자, 임차권등기 요건 동시 충족 피해자도 35.9%에 그쳤다.
정부 제시 보증금 규모(수도권 3억원 이하) 이상 총족 피해자는 17.5%에 달했다. 보증금 미반환 요건, 임대인 수사와 기망 여부 등은 대부분 피해자가 요건을 충족했지만 소수의 피해자는 해당되지 않았다.
또한 80% 정도의 피해자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피해자 대책위·시민사회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설문을 통해 정부·여당의 특별법이 '피해자 감별법'이라는 주장이 더욱 분명해졌다"며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 조건에 따르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대책위·시민사회대책위는 "만약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정부가 말하는 우선매수권은 고사하고 조세채권 안분이나 기본적인 대출지원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 문제를 도저히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면서 "생색만 내는 특별법이 아닌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특별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누더기 특별법' 반대와 제대로 된 특별법 촉구 서명에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며 "국토소위(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피해자 범위를 확대하고,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포함된 법안이 처리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전세사기 희생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특별법을 조속하게 처리하되, 반드시 피해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야는 국토소위에서 특별법 제정 합의 이후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특별법을 의결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