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연이어 사망, 사회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정부가 특별법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자단체와 시민사회는 정부의 특별법이 보여주기식 법안에 불과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2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주거안정 방안(이하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안정을 신속 지원하는 것이 방안의 핵심이다. 단 특별법은 제정·시행 이후 2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특별법에 따라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 심의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우선매수권, 경매 유예·정지 신청, 세제·금융 지원 등의 특례가 부여된다.
6가지 요건 모두 충족시 지원 대상 선정···거주 주택 계속 거주 지원
구체적으로 방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특별법 지원 대상은 6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6가지 요건은 ▲대항력(對抗力·이미 발생하고 있는 법률관계를 제3자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효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집행권원 포함)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세부요건 하위법령 위임)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는 경우다.
특별법 지원 대상 선정을 위해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내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설치된다. 임차인은 각 시·도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심사를 신청하고 각 시·도는 신청 접수 즉시 국토부에 통보한다. 각 시·도는 기초조사 등의 역할도 수행한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6가지 요건 전체 충족 여부를 판단, 피해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피해자 지원은 ▲거주 주택 낙찰 지원 ▲기존 임차주택의 공공임대 제공 ▲생계 지원 ▲정부 직접 지원서비스 확대 ▲경·공매 완료 임차인 지원으로 구분, 시행된다.
거주 주택 낙찰 지원에 따라 현재 경매 유예‧정지는 경매신청자만 가능하지만 앞으로 피해 임차인(전세사기 피해자)이 직접 경매 유예‧정지를 신청할 수 있다.
또한 현재는 임차주택 경매 진행시 피해 임차인은 타 채권자 등과 동일하게 최고가로 입찰하는 경우 낙찰 가능하다. 그러나 피해 임차인의 거주 주택이 경·공매될 경우 피해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이 부여되도록 개선된다.
임대인의 전체 세금체납액을 개별주택별로 안분하고, 주택 경매시 조세당국이 해당 주택의 세급체납액만 분리 환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특히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공매 낙찰시 금융‧세제를 지원할 방침이다. 즉 전세사기 피해자가 주택기금 구입자금대출(디딤돌)시 최우대요건(신혼부부와 동일 기준)을 적용하고, 거치기간도 연장(1년→3년)한다. 특례보금자리론은 금리 인하, 개선 상환조건 등으로 제공된다. 민간금융사 LTV·DSR 등 대출규제도 1년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아울러 기존 임차주택 낙찰시 취득세 면제(200만원 한도), 등록면허세 면제, 3년간 재산세 감면(전용 60㎡ 이하 50%·60㎡ 초과 25%)이 적용되고 전세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최대 1년간 지방세 납부기한 연장과 징수·고지·체납처분 유예 등도 추진된다.
기존 임차주택의 공공임대 제공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피해임차인으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해당 주택을 경·공매로 매입 후 피해 임차인에게 공공임대로 공급하는 방안이다. 이에 기존 주택에서 계속 거주가 가능하다.
생계 지원은 생계비 지원과 신용대출 지원이 추진된다. 재난·재해 등 위기상황 발생시 긴급복지 지원제도를 전세사기 피해자 가구에 적용하고 한부모·조손 가정 등 대상 3% 금리 신용대출을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지원한다.
또한 정부는 이동버스·상담부스·인력 확충을 통해 직접서비스를 확대한다. 경·공매 완료 임차인을 대상으로도 특별법상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 ▲공공임대 우선 입주 기회 ▲타 주택 구입시 금융 지원 ▲긴급복지·신용대출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단 특별법 시행 직전 2년 내 경·공매가 종료되고, 경‧공매 완료시점에서 특별법상 피해자 인정요건을 모두 충족한 임차인이 대상이다.
"피해자 지원 법안 아니라 피해자 걸러내기 위한 법안"
그러나 전세사기 피해자단체와 시민사회는 정부의 특별법에 부정적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피해자·시민사회대책위)'는 27일 논평을 통해 "정부·여당의 전세사기 특별법안은 피해자들의 현실과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보여주기식 법안"이라면서 "일단 특별법안은 지원 대상이 협소할 뿐만 아니라 피해 대상 심사와 인정 절차조차 매우 까다롭고 장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피해자·시민사회대책위는 "정부는 특별법 지원 대상으로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피해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비판했다.
피해자·시민사회대책위는 "만약 지원 대상이 협소하게 적용된다면 경매 완료, 전출, 동시 진행 등 불가피 이유로 대항력을 상실한 피해자들은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면서 "1000채가 넘는 피해주택의 순차적인 경공매 진행, 임대인의 상속 문제 미해결 등으로 경매진행이 늦어지는 경우 지원이 늦어지거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시민사회대책위는 "'다수의 피해자 발생 우려 시', '보증금의 상당액 미반환이 우려되는 경우'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기준을 통해 피해자에게 혼선을 주거나 선별하려는 태도는 부당하다"며 "수사가 개시되지 않더라도 현재 전세사기피해확인서 발급 기준을 확대 적용해 경매가 개시되거나, 임대인이 1개월 이상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거나, 임대기간은 남았지만 임대인이 무리한 갭투기로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 피해자 범위에 모두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시민사회대책위는 "무엇보다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채권매입방안이 빠졌다"면서 "정부와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마치 채권매입방안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처럼 여론을 왜곡하고 있지만, 이미 여러 전문가들과 언론이 확인한 것처럼 이후 충분히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특별법에 담은 우선매수권 부여도 실제 경매꾼들의 경매 참여로 경락가격이 높게 형성, 정작 피해자들이 주택을 우선매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고 매입임대도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서 실제 피해주택 중 얼마나 많은 주택을 매입할 수 있을지도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채권매입방안도 빠지면 결국 법안이 통과돼도 정작 지원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매우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 전세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피해자 가구가 많고 아직도 본인이 피해자인지 인지도 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은 만큼 법 시행 후 2년 유효 기간도 지나치게 짧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특별법 밀어붙이기를 단호히 반대한다.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실태와 현황 조사를 제대로 진행,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안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피해자·시민사회대책위는 지난 26일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보증금 채권매입 활용 방안의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